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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편의점 상생방안? "구닥다리 쇼 이젠 안통해요"

전지현 기자 기자  2013.05.28 17: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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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 주 한 편의점 MD 친구의 모친상엘 다녀왔어요. 대놓고 요구한 건 아니었지만, 납품이 계약만료를 앞둔 상황이라 눈치껏 운전기사 역할하며 조의금을 내고 왔죠."- A편의점 납품 B지역 중소기업 대표

"경영에 대해 잘 모른다고 큰소리치더군요. 이 업계에 몸 담군지 15년 이상 됐는데, 이제 갓 30대 초반이나 될까하는 사람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나니 속이 참 많이 상하더라고요. 하지만 별 수 있나요. 편의점 MD가 물건 빼라면 바로 납품에 차질이 생기는데. 일순간만 참으면 되죠. 그런 게 세상살이 아니겠습니까." - C편의점 납품 D중소기업 이사
 
남양유업 '밀어내기 사태'의 불똥이 편의점업계 쪽으로도 튀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지난 주, BGF리테일(편의점 CU 운영)과 코리아세븐(편의점 세븐일레븐 운영)에서도 상생경영 강화 방안이 나왔다. 하지만 시장의 시선은 냉담하기만 하다. 왜일까.

편의점업계는 그동안 심각한 '노예계약'으로 몸살을 앓던 터였다. 편의점 구조에서 보자면, 최근 '갑을 논란' 속에서 갑은 편의점 본사이고 을은 대기업 위주의 제조사며, 대리점주와 물건의 품질로 승부하는 소규모 지역 납품업체는 속칭, '병'도 아닌 '정'만도 못한 존재다.

그러니 초두에 언급한 사례와 같이 고작해야 입사 2~3년이나 됐을법한 MD(Merchandiser, 상품개발 담당자)의 친구 모친상도 알아서 친히 모셔야 하고, 경영에 대한 훈계도 감사히 경청해야 한다.

두 달 사이 편의점주 4명이 자살했다. 이런 가운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CU본사인 BGF리테일이 지난 21일 언론사에 한 편의점주가 '지병인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는 보도자료를 위조된 사망진단서와 함께 배포한 것이다. 편의점 CU와 계약문제로 갈등을 빚던 김모씨가 본사 직원이 보는 앞에서 다량의 수면유도제를 복용한 뒤 숨진 사건 이야기다.

BGF리테일은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상생 방안을 들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언론을 통해 망자의 사망진단서를 위조할 정도의 대범함을 지닌 편의점 본사가 내놓은 상생방안이 얼마나 믿을 만 하겠느냐는 불신도 컸지만, 해결책이랍시고 들고 나온 방안의 면면을 살펴보자니 또 한숨이 나왔다.

△상생협력펀드 조성 △저리대출 △외부전문가들로 구성된 '자율 분쟁 해결센터' 마련 등 종전에 이미 꺼내놓았던 사안과 별반 다를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기내 난동을 부린 대기업 상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퍼부은 영업직원, 인턴을 성추행한 청와대 대변인까지 이른바 갑의 횡포에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진화적 의미를 담은 쇼'가 통했다. 사회적 약자의 호소보다는 가해자의 쇼가 뉴스에 더 크게 잡히는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손'(모바일) 안으로 세상 소식이 속속 들어오고 또 그 '손'으로 내가 본 사회 부조리와 약자의 억울함을 실시간으로 유통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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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련의 갑을 논란은 '손의 첨단시대' 덕을 본 측면도 크다. 이런 와중에 구태의연한 방식의 '쇼'로 국면전환을 시도해보겠다는 편의점 측의 태도는 참으로 안쓰럽다. 
 
편의점업계는 우는 애 사탕주기식의 구닥다리 쇼를 멈추고 진정으로 고개 숙인 반성과 깊은 사과로 자신들이 알게 모르게 상처를 입힌 모든 '을'에게 마땅한 보상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