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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장옥정'과 농협목우촌의 만남, '졸부車 사브' 답습?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5.28 16: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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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간접노출광고, 이른바 PPL이 한국 방송계를 지배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열악한 제작 환경(이라고 쓰고 '돈 때문에'라고 읽는다)을 벌충해 줄 목적으로 규제가 완화된 이후, 상당한 드라마들이 PPL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이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PPL을 위해 드라마 설정이나 흐름을 바꾸기까지 하는 기민함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세태만 탓할 수만은 없어 보입니다. 팍팍한 세계경제 침체의 문제, 그리고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방송사와 제작사의 관계 등이 있으니 그런대로 감수하면서 보는 것이지요.

사실 드라마가 기발하고, 감동적이며 시사점을 던져준다면야 적당한 정도의(혹은 약간 선을 넘어가는) PPL을 용인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일례로 문화방송 '더 킹 투 하츠'는 수시로 등장하는 도너츠 때문에 던킨 투 하츠'라는 비아냥에 시달리면서도, 갈등과 불신의 남북 관계를 양쪽 지도층간의 결혼 문제로 풀어 제시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어 이런 PPL 비판 투정을 그야말로 투정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서울방송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경우는 좀 심했다는 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극에 아무리 PPL을 따 넣기가 어렵고, 또 그런 만큼 황공하여 무리수를 둬서라도 설정을 넣어야 했다지만, 목우촌이라는 선명한 한글 간판을 화면에 잡아준 점은 네티즌들의 안줏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농협이 이런 PPL로 오히려 피해를 입는 게 아니냐는 분석마저 나옵니다.

PPL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게만 노출돼야 하는 건 아닙니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영화에서는 산토리의 위스키 제품이 등장하는데, 이는 PPL이면서도 영화 속 대사에선 좋지 않은 산토리 평이 줄줄이 등장하는 상황으로 들어가 있지요. 하지만 어쨌든 뇌리에 잘 박혀(노이즈 마케팅이랄 수도 있겠는데) 매출에 큰 도움이 됐다는 평입니다.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목우촌 한글 간판이 등장, 지나친 PPL 논란이 불거지면서 연예매체들이 이에 대한 기사들을 생중계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미 이슈화된 상황을 보여주는 포털의 화면. ⓒ 네이트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목우촌 한글 간판이 등장, 지나친 PPL 논란이 불거지면서 연예매체들이 이에 대한 기사들을 생중계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미 이슈화된 상황을 보여주는 포털의 화면. ⓒ 네이트

문제의 PPL은 이번 목우촌처럼 "저건 뭐냐"거나 "뜬금없다"는 식으로 회자되면서 "대체 이미 개념을 상실한 저런 드라마에 왜 PPL을 넣었는가"까지 연결되는 경우입니다.

이는 촌스러운 목우촌 간판이 앵글에 잡히거나, 김태희가 예쁜 입으로 "맛없는 목우촌 푸줏간이 아니냐"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지요. 급기야 농협이 잘못했네로 이미 문제가 번진 셈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산업계에서는 PPL 요청이 들어오면, 얼씨구나 하고 집어넣는 게 아니라 협찬을 하면 제품의 이미지 개선이나 인지도 상승에 도움이 될지를 따져본다고 합니다. 심한 경우 시나리오 등을 일부 받아 혹시 기껏 협찬해 줬더니 부정적으로 나오진 않을지 점검한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이는 일례로, 서울방송 드라마 '줄리엣의 남자'에 차량을 PPL한 스웨덴 카메이커 사브의 사례에서 잘 드러납니다. 사브는 아시다시피 전투기를 만드는 회사이기도 한데요. 롤스로이스가 비행기 엔진과 차량 엔진을 같이 하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여기도 아주 뛰어난 수준의 메이커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거액을 상속받자마자 사브를 뽑았으니, 이미지가 졸부의 차로 격하(이 문제적 사례에 대해서는 모 유력 경제연구기관에서 펴내는 책자에도 실린 바 있음)되고 말았다고 하지요.

   네티즌들은 한글 간판이 그 시대에 있었는지 여부보다, 무리한 노출 시도와 어색한 설정 등에 비판의 초점을 두고 있다. 네이트 사용 네티즌들이 비판 댓글을 달고 있는 사례. ⓒ 네이트  
네티즌들은 한글 간판이 그 시대에 있었는지 여부보다, 무리한 노출 시도와 어색한 설정 등에 비판의 초점을 두고 있다. 네이트 사용 네티즌들이 비판 댓글을 달고 있는 사례. ⓒ 네이트
목우촌을 둘러싼 저 기구한 리플 논쟁들을 보노라면, 농협은 대체 왜 PPL을 한 건지 애초 잘못된 선택을 한 건지 안타깝습니다.

해명이라고 지금 나오는 게, 저 시대에는 한글 사용이 활발했으니 한글 간판도 있었을 법 하다는 것인데, 번짓수를 잘못 짚었습니다. 그야말로 목우촌을 보여주기 위한 '무리한' 설정, 그리고 장터 거리의 간판이 페인트칠을 방금 한 듯 멀끔한 '비정상적 사정'을 어떻게 이해하냐는 데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데 말이지요. 

실제로 이 드라마는 김태희가 조선시대임에도 하이힐을 신었네, 퓨전 사극을 넘어서서 한복을 입은 판타지일 뿐이네 등등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하다 못해, 이왕 PPL을 넣기로 했더라도, 평판이 저 지경이고 제작진의 위기 관리 능력이 저 정도라면 그냥 화면 노출은 안 해도 된다고 접었어야 되는 거였는지도 모릅니다.

저렇게 PPL 하나에서도 미리 '출구 전략'을 잘 짜지 못하는 것, 그런 점이 오늘날 임원 줄사표까지 이어지는 게 아닌가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