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농협이 몸살을 앓고 있다. 윤종일 농협중앙회 전무이사와 김수공 농업경제대표이사, 최종현 상호금융 대표이사, 이부근 조합감사위원장 등 4명의 임원이 일괄 사퇴하면서 세간의 관심사로 다시 한 번 떠오른 상황이다.
일단 외형적으로 보면, 최근 먼저 사퇴 의사를 표시한 신동규 농협금융 회장이 전산망 사태의 책임을 모두 지는 모양새가 연출되는 것을 막고 분위기를 일신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우선 최원병 중앙회장이 건재한 상황에서 부하 임원들만 사표를 내느니 하는 식으로 문제를 무마하려는 수로 읽힌다는 우려다. 더욱이 지금 농협으로서는 산업과 금융 전반에서 임원들이 자리를 비울 만큼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MB식 물가 관리 대신 농산물 유통 근원 개선' 바라는 정부에 '어깃장' 놓은 셈
서대문 농협 본사발 줄사표 뉴스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모은 그날, 공교롭게도 재정 당국에서는 물가안정의 한 축을 농협에서 거들어 줬으면 하는 바람을 내놓은 바 있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1차관은 24일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물가안정 시기에는 단기적 대응보다 구조개선 등 중장기적 기반을 조성하는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면서 유통구조의 개선 등을 언급했다.
추 차관은 "앞으로 정부는 품목별 관리보다 구조개선·수급관리·시장감시 기능 등을 강화해 물가안정을 도모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지난 정권에서 일명 핵심 관리 품목들을 정하고 집중적인 물가 관리 의욕을 내비쳤지만 실패했던 전례가 실패했음을 간접적으로 지적한 다음, 전체적인 그림에서 이를 관리하는 톱-다운 방식의 관리지도를 택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바꿔 말하면 유통의 구조를 개선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등 '거시적, 장기적 구조개선'이 필요한 정책 어젠다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발표에서 "유통구조개선 및 경쟁촉진 등 구조개선 과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소비자단체의 원가분석과 가격정보 제공 기능을 확대해 감시기능을 활성화하겠다"고 추 차관은 덧붙였다.
그런데, 추 차관이 이날 안건인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대책'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도매시장 효율화와 농협·직거래 등 다양한 신 유통채널을 육성해 농산물 유통구조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농협을 실명 거론함으로써, 금융과 산업 양기능을 갖고 있는 농협에 대해 상당한 정책적 서포터 역할을 앞으로 당국이 주문할 뜻임을 밝힌 것이다.
추 차관의 의도대로 "비축·계약재배를 확대해 단기적으로 수급을 조절하는 동시에, 안정적 생산기반을 만들고 가격 변동성을 완화해 생산자는 제값으로 팔고 소비자는 더 싸게 사는 유통구조를 정착해야 한다"고 할 때 이 같은 업무를 하려면 농협 같은 전국 조직에서 대농민 관리 행보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지도부가 대거 사표 사태를 빚고 있으니, 당국의 구원병 역할 기대감과 달리 자신이 내부 문제로 앓아 눕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셈이다.
결국 최 회장이 지금 부하들의 용퇴로 자리 보전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대외적으로 체면이 손상되고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됨에도 자리를 보전하는 데 급급하고 정작 중요한 일에서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부정적 이미지 누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체크카드 1위 탈환 경사' 빛 바래 '앞으로 어떨지도 미지수'
아울러 수장이 이미 사의를 표명한 농협금융의 경우도 사기 저하 문제를 빨리 털고 가야 하는데 인선 문제가 제대로 처리될지 미지수라는 점이 숙제다.
자원할 사람이 없을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헤드헌팅 방식을 가미하는 등으로 금융을 맡을 회장 후보 추천 방식을 진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올 1~3월 중 체크카드 이용실적은 농협카드가 4조5150억원으로 시장점유율 22.5%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KB국민카드(시장점유율 21.1%)를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로 다시 올라선 것이다. 이어 신한카드 17.6%, 우리카드 12.9% 등이 추격 중이다. 이 중에서 내부 사정이 불안정한 금융그룹 소속 카드사나 은행계 카드는 농협, KB 정도다. 우리카드의 경우 우리금융그룹 회장 내정 문제가 매듭지어졌고, 카드사 사장 임명이 얼마 되지 않아 인사 태풍의 와중에는 비껴서 있다. 신한은 유력한 임원을 카드사 새 수장으로 내정하면서도, 현재 사장이 아예 임기를 모두 채우고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파격적인 수를 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체크쪽에서는 이처럼 선전 중이나, 신용카드 영역에서는 연이은 카드사 분사 바람에 사실상 자금이 없어 동참을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농협이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결국 은행 영업망을 활용해 당국의 정책에 부응하고는 있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카드 영업 전쟁이 재개되는 경우) 큰 비전을 세우지 못하고 고식적 경쟁에서만 당장 우수한 성적표를 받아든 데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실제로 뱅커 마인드가 모자란다느니 하는 비판에 많이 직면해 있으면서도, 영업망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농협금융은(특히 농협은행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중앙회에서 금융 파트를 쥐어짜고 인사나 영업 전략 등에서 간섭해 괴롭히기만 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이번 금융 파트 회장 돌연 사의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 기재부에서 이야기가 나온 유통망 개선 추진 등 장기를 발휘하는 문제에서 이번 사표 사태 때문에 브레이크가 걸릴 것으로 보이고, 지금까지 일각에서 나타난 일련의 성과들 역시 앞으로 지속 보장을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농협 사정은 보는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