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한일은행과 상업은행간 통합 역사 이래 가장 드라마틱한 지휘관, 혹은 지리멸렬한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비운의 사령탑이 될 수도 있는 '독이 든 성배'를 이순우 우리은행장이 받게 됐다. 이 행장이 사실상 우리금융그룹 차기 회장직에 내정됐다.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23일 명단을 확정한 뒤 청와대 보고와 내달 14일 전후가 될 주주총회를 거쳐야 공식 임명 절차가 종료되지만, 단수명단으로 추천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실상 이제 '이순우 체제'는 기정사실화된 셈이다.
이제는 안정과 번영, 민영화 등 모든 과제를 풀 수 있을까? 우리금융의 새 수장으로 이순우 우리은행장이 사실상 내정되면서 그의 역할에 우려와 함께 기대가 쏠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 회현동 우리금융 본사·우리은행 본점. = 임혜현 기자 |
◆지주 회장과 은행장 겸직, 의미는?
우리금융은 한국금융사에서 첫 금융지주제를 도입한 케이스로 눈길을 모았다. 하지만 시작 단계부터 잡음이 없지 않았다. 이 대안으로 그룹 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은행의 수장과 그룹의 수장(즉 지주사 회장)의 겸직이 대안으로 거론된 바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007년 황영기 전 회장이 두 자리를 겸직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CDS 파문으로 황 전 회장이 다른 금융그룹 회장으로 가 있던 중에 징계 타격을 입으면서, 우리금융의 겸직 문제는 다시금 부정적인 방향으로 세간에 회자(견제 기능 저하)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번에 이들을 겸직시키기로 가닥이 잡힌 것은 이런 제도의 좋은 점이 부각됐다기보다는, '민영화'라는 대업을 위해 가장 적합한 수인 '이순우 체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방법론상에서 택해졌을 공산이 크다.
즉 '이순우 체제'가 '정통 뱅커답지는 않다'는 평을 들었던 '황영기 체제'처럼 갈 바람을 (회장 임명 건과 관련해 힘을 쓸 수 있는) 집단 중에는 찾기 힘들다고 해석된다. '보스형 리더'라기 보다는 '관리형 수뇌부' 역할론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이유다.
그런 반면 민영화에 가장 적합한 상태로 조직 전반을 다스릴 책임과 역할 모델에는 강하게 방점이 찍힐 전망이다.
이런 대목에서 금융위원회가 오는 6월말까지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방안을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22일 밝힌 점은 의미심장하다.
금융 당국은 그간 늦어도 1년 안에 우리금융의 민영화 작업을 마무리짓겠다는 의지를 보여 왔으므로 굳이 은행의 수장과 그룹(지주)의 리더를 따로 선임할 필요성이 없다는 해석이 많았고, 이번에 그런 전망이 실현됐다. 그런 와중에 또 민영화에 대한 구상 발표를 당초 계획처럼 상반기 중 내놓겠다고 확인을 한 셈이다.
신속한 민영화 원칙 하에 다각적인 검토를 통해 민영화 방안을 상반기 중에 굳히는 것이 당국의 과제다. 다만, 이제 금융위는 최근 2년간 추진한 우리금융 일괄매각이라는 아이디어를 전면적으로 손질하는 문제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방법과 가능성을 열어놓고 접근하지 않으면 덩치 큰 우리금융 민영화를 매듭짓기 어렵다는 점을 그간의 학습효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국에 의해 일단 아이디어가 확정되면, '실수'없이 일을 처리해야 하는 최상의 파트너로서 차기 회장이 보조를 맞춰줘야 한다.
예를 들어,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들의 임기가 9월이므로 새로운 위원들에게 민영화 책임을 넘길 가능성이 있는 등 내년 초에나 본격적인 매각 작업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이런 장애 가능성이 등장할 경우, 당국이 최대한 빠르게 드라이브를 걸 때 방해는 물론 모멘텀이 될 수 있는 정도로 우리금융 전반이 민영화 추진 전력질주에 최적화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 다독여 반발 챙겨야…저수익시대도 문제
이에 따라 현재 금융그룹들을 괴롭히는 저수익시대 본격화를 헤쳐나가야 할 과제가 그에게 지워진다.
이 행장이 사실상 내정된 상황은 민영화의 또다른 문제인 내부 조직 융합에도 그가 적임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금융 회장 선출 후에 행장을 새로 선출할 경우 또다시 2,3개월을 낭비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지만, 우선 은행 노조와 그런대로 적당한 관계를 유지해 온 점이 높게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점은 그가 계열사 고위층을 정리, 분위기를 일신할 때는 다소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과제다. 이미 우리금융 13개 계열사 중 우리FIS와 우리PE·금융연구소 등은 후임 인선을 차기 회장 선출 이후로 미뤄둔 상태라 큰 문제가 없다. 차문현 우리자산운용 사장 임기도 곧 종료된다는 점에서 변수는 아니다. 정현진 우리카드 사장과 황록 우리파이낸셜 사장의 경우 계열사 사장에 인선된 시점이 한 두 달에 불과해 유임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팔성 현 회장 임기 중 선임했던 측근 인사들이 교체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런 난제의 돌출 지점으로 눈길을 끄는 예상 대목은 우리투자증권이다.
◆우리투자證 사장 교체 추진…2010년 갈등재현?
우선 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사장은 2015년까지 임기가 남아있다. 그런 만큼 그를 물러나게 몰아붙이면, 이미 사의 의사를 밝힌 이 회장 관련 인물에 대한 인사 보복이라는 해석을 낳을 수 있다. '이팔성 계열'로 몰아 그 시절에 임명한 인물을 많은 부분 몰아내겠다고 나선다 치더라도, 황 사장과 우리투자증권의 현재 사정이 단순하지 않다.
우선 당국이 계열사들을 분리해 매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경우다. 마침 당국의 특정사업 부분 분사 허용으로 증권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유진투자증권은 8일 특정사업 부분 분사(스핀 오프)를 허용함으로써 우리투자증권의 분리 매각이 가능해졌다고 분석한 바 있다. 서보익 연구원은 "증권사간 인수합병 매력이 크지 않은 영업환경에서 스핀 오프 허용은 일부 민영화가 진행 중인 금융기관의 매각 방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특히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인 우리투자증권의 민영화 방침에 영향을 줄 사안"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우리투자증권은 사업부문별 분리 매각으로 매각 가격을 극대화할 방안도 검토가 가능하다"는 전망도 곁들였다.
이런 사정에서, 차기 회장으로 들어설 공산이 큰 이 행장으로서는 황 사장을 교체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논리로, 가장 적당한 작업 환경을 조성하는 일을 새 증권사 사장에게 맡길 수도 있으나, 내부 반발 가능성이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순우 우리은행장이 노조와 계열사 등을 잘 아우르면서 민영화 준비를 할지 주목된다. 사진은 특성화고교생 취업 박람회에서 몸소 안내 데스크에 앉아 학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이 행장의 모습. = 임혜현 기자 |
2010년 6월, 우리투자증권 노사는 IT 아웃소싱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당시 노조 관계자 중 하나는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고(민영화 와중에 증권사만 분리해 매각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 지금 전산을 이렇게 손을 대겠다는 것이냐. 우리금융이 너무한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로한 바 있는데, 이런 '우리금융에 대한 서운함'이 재점화될 가능성을 굳이 미리 열 필요가 없다.
즉 섣불리 사장 교체 추진으로 반감이 차기 회장에게 쏠리는 역효과를 보는 대신, 언제 본격화될지 모르는 민영화 추진(및 스핀 오프 등 여러 가능성)을 위해, 더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악역을 대신할 가능성도 포함시켜 황 사장을 유임시킬 필요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인사 정책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문제는 남는다. '이순우 체제'는 아무래도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고려대 인맥이라는 점에서 메리트를 누려온 '이팔성 체제'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상황은 계열사를 이끄는 고위층들이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라고 차기 회장을 바라보기 보다는 같은(동급의) 계열사의 사령관 중 하나(에 명예직을 겸하는) 정도로 볼 가능성과 맞닿는다.
이런 여러 난제들에 더해 상징적인 문제지만, 우리금융그룹 세력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의 민영화를 한 인물로 평을 받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결국 이 행장이 사실상 다음 회장직을 거머쥐게 되긴 했으나, 지금으로서는 내년 3월 끝날 행장 임기에 이어 자리를 굳혔다는 점 외에는 없어 보인다. 최대한 빠르게 민영화를 매듭짓고, 그 다음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에서 그와 당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든 이 행장, 1977년 은행원 생활을 시작(상업은행에 입행)한 그의 나이는 공교롭게도 한동우 신한금융그룹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사이에 끼여 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 그가 관리자로 머물기 보다는 '내부 승진 출신 지주사 회장님'으로 족적을 남기는 데 더 욕심을 내기에 충분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