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숙 기자 기자 2013.05.22 15:34:20
[프라임경제] 21일 오후 3시. 한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낙원상가는 웬일인지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로 붐볐다. 4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도 기자 두 명을 제외하고는 노인들로 꽉 찰 정도였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4층에 자리 잡은 실버극장 '허리우드클래식'. 멀티플렉스 영화관 같이 화려한 조명과 인테리어는 없지만 따뜻함이 묻어나는 공간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죠. 하지만 변화 속에서 노인문화는 사라졌어요. 그 많던 다방도 이제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들죠. 갈 곳 없는 어르신들은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에요. 이분들에게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제공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은주 허리우드클래식 대표는 인터뷰 내내 '노인들을 위한 문화' '노인의 눈높이에 맞춘 실버산업'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허리우드클래식의 관람료는 2000원. 일반 영화관 관람료의 30% 정도만 받는 단관극장이다. 하지만 저렴한 관람료 때문에 영화가 형편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랑과 영혼' '벤허' '맨발의 청춘' 등 그 시대를 들썩이게 한 명화들을 엄선해 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다.
◆300석 단관극장, 지난해 관객수 20만 돌파
충무로에서 실버극장을 운영한 경력이 있던 김 대표는 낙원상가 건물주의 제의로 2008년 종로로 오게 됐다. 이후 1년간 준비기간을 거친 뒤 실버영화관 '허리우드클래식'을 2009년 오픈했다.
2009년 1월 낙원상가 4층에 '허리우드클래식'을 오픈한 김은주 대표는 영화관이 어르신들에게 '소통의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최민지 기자 |
초반부터 잘 될 것이라는 기대 같은 건 없었다. 부모님에게도 수익사업이 아니라고 수차례 설명했다.
"실버산업은 돈을 벌려고 뛰어들면 안돼요. 2년간은 무조건 투자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흑자는 내지 못하고 있죠. 집은 모두 담보가 잡혀있고 차는 이미 다 팔았어요. 하지만 그래도 이 곳을 지켜낼 수 있어 기뻐요."
하지만 허리우드클래식은 300석 단관극장으로서 갖기 힘든 기록을 연일 세우고 있다. 2010년 12만 명이던 이 극장의 관람객수는 2011년 15만명, 지난해 20만명으로 늘었다. 객석 점유율은 2012년 기준 58.8%로 멀티플렉스 평균인 30~40%보다 훨씬 높다.
◆실버영화관 지키는 힘 '관객'
허리우드클래식은 입소문을 타고 관객점유율을 늘려 나가고 있지만 월세와 필름 저작권료를 지불하면 아직까지도 매달 적자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저작권을 사오는데 한 편당 1000만원에서 3000만원이 들고, 매달 월세도 1800만원씩 나가고 있어 관람객이 많지 않았던 영화관 오픈 초반에는 재정적으로 힘든 시기가 이어졌다.
그때마다 힘이 되어준 건 관객이었다. 실버영화관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힘이 된다는 내용의 팬레터가 배달되고, 주말에 영화를 보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오는 관객도 늘어갔다.
평일 오후 극장을 찾은 노부부가 상영작들을 살펴보고 있다. = 최민지 기자 |
실버영화관이 노인들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지만 김 대표 또한 그런 고객의 모습을 보고 힘을 얻는 것이다.
"고객들은 제 사정이 어려울까봐 가격 올리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하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손님을 유치하는 것이 사회적 기업이 지켜야할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관람료 2000원은 계속 유지할 계획이에요. 대신 좋은 서비스 제공으로 고객을 늘려야죠."
실제로 김 대표는 주변 종로 상가들과 협약을 통해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을 대상으로 식사를 할인해 주는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인증으로 직원 95% '65세 이상'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게 된 것도 큰 힘이 됐다. 극장을 후원해 줄 수 있는 기업을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인증제도로 16명의 노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현재 허리우드클래식은 극장안내, 매표소 직원, 영업, 영사기사 등 직원들 대부분이 65세 이상이다. 모두 정규직으로 매일 8시간씩 극장에서 근무하고 한 달에 100~150만원 가량을 월급으로 받는다.
허리우드클래식은 영화 관을 찾은 노인들을 위해 테이블과 의자를 마련해 놓았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 혹은 상영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최민지 기자 |
향후 그는 노인들을 위한 '음식사업' 등 다양한 방면으로 실버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당뇨 등 질환으로 음식점을 갈 수 없어 매번 식사를 싸가지고 다니는 어르신들의 불편함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마지막으로 사회적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의견도 덧붙였다.
"현재 실버산업, 사회적기업의 문제점은 아이템이 획일화돼있다는 거에요. 똑같이 가면 제살 깍기지만 다양하게 가면 협업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노인을 위해 진심을 담아 기업을 운영해야 해요. 우리 모두 나이가 드는 만큼 내 미래가 현재 노인 분들 같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아요. 미래가 외롭게 집에만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게, 아름답게 나이 들어 갈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