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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감정노동, 남의 일이 아니다

한동민 대학생 자원봉사단 SUNNY 교류운영팀 에디터 기자  2013.05.21 09: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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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휴대폰 요금 청구서가 날아왔다. 보통 때는 훑어보고 처리하는 편이지만 생각보다 요금이 많이 나와 청구서를 찬찬히 살펴보는데 소액결제 항목에 2만원이 넘는 금액이 결제돼 있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산 기억이 없다. 당장 휴대폰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녹음된 음악을 수차례 반복해 들었지만 상담원과는 통화하지 못했다. 과다 청구된 핸드폰 요금과 긴 대기시간에 조금씩 짜증이 나고 결국 콜센터 직원에게 따지고 만다.

고객도 안다. 화가 나는 대상은 상담사가 아니라 고객이 '왕'이라 말하면서 고객을 '봉'으로 아는 시스템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에게 화를 낸다고 해서 일이 더 빠르게 처리되거나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결코 해결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객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콜센터 상담사 밖에 없다. 그렇기에 고객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화풀이하는 식의 불만 표출을 한다.

이런 상황은 몇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 첫 번째, 고객은 상담사와 상담하기 전부터 불쾌감을 느낀다. 일차적으로 문제 그 자체에 화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콜센터에 전화를 걸지만 통화량이 많다는 이유로 전화는 끊긴다. 말하자면, 씩씩거리고 찾아간 남의 집 대문 앞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꼴이다.

둘째, 간신히 상담원과 통화 연결이 되었지만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 않는다. 상담사는 문제와 관련된 다른 부서를 찾아 연결해 준다. 그리고 그 부서는 다른 부서의 책임이라 말한다. 전화는 다시 끊긴다. 마지막으로 다시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지만 긴 대기시간을 참고 견디다 화가 폭발한다.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할 수 없는 고객은 상담원에게 화를 퍼붓는다.

고객이 문전박대를 당하고 화가 증폭되는 이유는 구조상의 문제 때문이다. 상담원을 늘려 고객의 대기 시간을 줄이고, 한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문제의 원인을 고객이 찾아가야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아 생긴 문제다. 감정노동의 궁극적인 문제 해결은 시스템의 개선에 있지만 변화에 힘을 가하는 것은 고객과 노동자, 즉 시민의 몫이다.

지난 14일 서울시가 주최한 '여자, 노동을 말하다-감정노동' 정책 포럼에 대학생인 내가 패널로 참석해서 작은 목소리나마 보탠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대학생이지만 고객이며 예비 감정노동자다. 즉 상담사에게 화를 쏟아내는 고객인 나도 언제든지 전화기를 들고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칠 감정노동자가 될 수 있다. 감정노동은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다.

   한동민 대학생 자원봉사단 SUNNY 교류운영팀 에디터  
한동민 대학생 자원봉사단 SUNNY 교류운영팀 에디터
특히 서비스업이 발달하는 현대 사회에서 누구도 감정 노동을 피해 갈 수 없으며 이는 나만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기도 하다. 나의 감정을 전가했던 직원이 어쩌면 나의 친한 후배, 가족, 또는 친구라는 상상을 해보자.

감정노동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모두가 감정 노동자인 현대 사회에서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 전체의 관심과 참여, 공감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