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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靈 '봉쇄소송'④] 개인은 무력해도…연대로 '레드퍼지'극복

언론인·학자, 연대단체 조직+법개정 노력 등 정치력 강화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5.21 08: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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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전략적 봉쇄소송(SLAPP)은 거액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마음에 들지 않는 고발자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데, 여기에는 물론 거금을 뿌려 유명 로펌을 동원하는 것도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패소할 경우 물게 될 금액이 주는 압박감(가압류 등으로 이미 그 타격의 일부를 한 번쯤 미리 맛보게 하는 경우가 많음)과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방 법률팀에 대응할 조언자를 구할 수 없다는 점 등에서 미리 심리적 제압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경없는 기자회'의 홈페이지에서는 심지어 "원고는 피고측보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모두 강력하다"고 SLAPP 사건 중 하나의 사정을 묘사하던 중 원고와 피고의 처지를 대조해 표현하기도 했다.

그래도 법정으로 상대를 불러내는 강력한 적은 나은 편이다. 이미 일본 언론과 노동계는 '레드 퍼지'라는 과격한 공세를 당한 전례가 있다. 우리도 그런 논란 우려 있는 역사가 없지 않다. 그런 과거는 한국과 일본의 언론과 학계가 특히 이 같은 연대 움직임을 보이거나 해외 사례에 민감히 반응할 단초가 되고 있다.

연대 못하는 자들에게 가해진 깊은 상처…'레드 퍼지'의 악몽

제국주의 일본이 패망한 이후 일본에 진주한 미군정 당국은 당초 군국주의자들을 공직에서 척결하는 점에 주안점을 두고 추방령을 집행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미국측의 일본 다루기의 방향 초점이 달라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독일 처리에서도 그렇지만, 일본을 무력화하려던 당초 의도를 재점검해야 할 필요가 당시 소련 세력의 대두로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에 따라 잔인한 '모겐소 계획(독일 공업을 말살, 낙농국가로 전락시킨다는 안)'이 백지화되는 축복을 얻었고, 일본도 사실상의 재무장(자위대 구축)과 우경 세력의 생명 연장을 꾀하게 됐다.

오히려, 공직에서 위험한 자를 추방한다는 계획은 당초 취지와 달리 전쟁을 불러온 우파보다는 좌익 세력을 예방적으로 제압하는 도구로 사용된 경향이 있다(마쓰모토 세이치 작 '일본의 검은 안개(하)' 등 참조). 실제로 레드 퍼지(Red Purge)로 불린 이 같은 사상 검증은 처음에는 공산당계 기관지 근무자들을 시작으로, 각 언론사의 거북한 존재들을 몰아내는 쪽으로 확장됐으며 노동계도 상당한 조직 붕괴를 겪지 않으면 안 됐다. 이 같은 사정은 냉전 체제에서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으나,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기회를 이용 혹은 악용해 소탕해 버린 점, 이들이 재취업 등에서 거의 영구히 배제돼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다는 점 등에서 이후 유사한 사례는 많지 않다.

다만 한국에서 재현된 유사 사례가 좀 있는데, 옛 중앙정보부에 의해 자행된 동아일보 광고 중단 압력 탄압 사건 그리고 이후 진행된 대규모 해직 케이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후 해직 기자들은 일부가 한겨레신문 창간 때 언론계로 복직한 외에 대부분 가난 속에서 늘 현재의 삶을 '임시로 머무는 문간방 신세'로 여기게 했고 이렇게 사장된 인력적 낭비는 일종의 민주화 비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해직 언론인에 대한 생애사적 접근 연구: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중심으로'를 집필한 바 있음).

군사정권 시절에는 일부 교수들이 자리를 잃고 학교 밖으로 떠돌거나 책을 펴낼 자유를 제약받은 경우도 있다. 헌법학자로 명저서를 남긴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이런 경우로 알려져 있다.

레드 퍼지와 동아일보 사건의 경우는 사상적으로 '방어적 민주주의의 시대(칼 뢰벤슈타인 교수가 주장한 '민주주의의 적'에 대응하기 위한 투쟁적 민주주의 개념)'의 일부 오류를 빙자한 악용 문제로 볼 개연성이 있다는 점, 회사와 노조, 동료들이 침묵하는 상황에서 무기력하게 일부가 누명을 쓰는 경우 답없이 추락하는 악몽을 보여줬다는 점 등의 공통점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언론인에 가해진 원자력 소송의 타격, 여러 관계기구 예의주시

시계를 다시 한참 뒤로 돌려 보자. 지난해 일본 프리랜서 기자인 미노루 타나카씨는 원자로 관련 소송으로 궁지에 몰렸다. 원자력 관련 의혹 보도 기사에 대해, 유관 기구에서 천문학적 액수(60만유로, 우리 돈으로 8억5000만원 상당)을 청구한 소송을 접수했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 돈 8억원대 원자력 기사  관련 소송에 주목한 바 있다. ⓒ 국경없는 기자회  
국경없는 기자회는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 돈 8억원대 원자력 기사 관련 소송에 주목한 바 있다. ⓒ 국경없는 기자회
   언론인 관련 SLAPP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시민단체의 사례. ⓒ 일본 서브컬쳐 리서치 센터  
언론인 관련 SLAPP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시민단체의 사례. ⓒ 일본 서브컬쳐 리서치 센터

이에 대해 국경없는 기자회의 홈페이지는 이런 표현을 써 문제를 제기했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원고의 (SLAPP) 소송 의도는 이미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기자들이 이른바 소송 등 곤란에 처할 것을 우려해 '민감한' 문제에 대해 다루기를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정은 이 SLAPP에 대해, 국경없는 기자회는 물론 '검열과 싸우는 사람들' 등이 이 사건에 대해 주목했다. 다만 이들은 일반 언론들은 이 같은 SLAPP를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SLAPP 관련 경계 논의가 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 등의 정수장학회 언론사 지분 매각 논의를 폭로했던 최성진 한겨레 기자, 지난 2005년 삼성 X파일을 폭로한 이상호 기자 등 언론인과 송호창 무소속 의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이 함께 모여 '통신비밀보호법의 문제점과 언론의 자유'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던 바 있다.

이 기자는 문화방송에서 이름을 날렸으나, 이후 인연을 끊었다. 이 기자는 지난 2011년 삼성 X파일 폭로 보도로 징역 6개월, 자격정지 1년의 처벌을 받았으며 최 기자는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논의 보도 이후 검찰에 기소된 바 있다.

   SLAPP의 무서움:  
SLAPP의 무서움: "이번 소송으로 원고는 사실상 이미 모든 걸 얻었다. 기자들 사이에는 앞으로 '민감한' 이슈를 건드리는 것을 자제하는 기류가 흐를 것이다"라는 우려가 국경없는 기자회에서 언급된 바 있다. ⓒ 국경없는 기자회

◆韓 노동권-시민계, 과거 탄압도 뼈저리지만 지금 양대 노총에도 실망

한편 우리나라의 노동계와 시민사회계는 양대 노총 중심 운동에 염증을 느껴 새롭게 연대를 구축하는 움직임을 근래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달 초 '사내하청 대책회의'가 출범했다. 이 대책회의에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가 중심이 되고 민변 등 법률가들, '민주 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 협의회' 등 100여개 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한다.

사내하청 대책위는 여러 곳에서 촉탁계약직이 비참한 환경에 내몰리고 더러 자살하는 상황에 양대 노총 중심 노동운동은 이러한 낮은 곳의 노동자 하나하나까지 보호하지 못하거나 외면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때 민주노총·금속노조가 큰 역할을 못하면서 시민들이 나서게 된 것과 비슷한 경우다.

현대차노조 등이 귀족적 행보, 자신들의 이기주의 극대화에 매몰되는 행보로 근래 비판받는 사정 속에서 정작 연대를 통한 탄압 가능성 대비가 필요한 이들 힘없는 개인간 연대가 어떤 실효성을 갖게 될지 주목된다.

학자들 연대 활동 중심지 프랑스, 배경은?

학자들도 자신들에 대한 소송적 압박 가능성에 연대를 통해 대응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2010년 10월, 프랑스인들을 중심으로 한 유럽 학자들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학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결성한 '국경 없는 학자회'는 프랑스 하원 건물에서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 공개 콘퍼런스를 열었다.

프랑스에서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진 점도 레드 퍼지 경험을 가진 일본이나 유사한 경험을 한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프랑스는 냉전적인 사상 관련 검증과 그 부작용을 겪지는 않았지만, 2차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나 비시 괴뢰 정부에 협력한 지식인 문제가 있다.

라듐 발견자인 퀴리 부인의 사위인 프레드릭 졸리오는 전시에 독일과 연구 관련 협력을 하기로 했다고 해 지금도 논란 대상이다. 언론인이 비시 정부나 나치 관련으로 부역한 사례도 많다.

학자나 언론인이 신념에 의해 잘못된 길을 간 경우도 많지만, 반쯤 강제적으로 끌려들어간 경우에 대해 반성적 고찰의 문화 배경이 있는 셈이다.

국경 없는 학자회는 "오늘날 학문의 독립성은 정치 및 경제 권력 앞에 무력해지고 있다. 비판하는 목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소송에서 질 것을 알면서도 명예훼손 소송 등을 제기하는 이른바 전략적 봉쇄 소송으로 학자들을 위협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부당한 압력에 맞서기 위해 각국 학자들의 학문 자유 억압 사례를 모으고, 공동의 대응을 준비한다는 취지였다.

이렇게 연대의 틀을 만들려는 노력은 봉쇄 노력에 대응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레드 퍼지의 폭압적 반대 의견 진압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경험을 한 동아시아권 노조나 언론 등에서는 특히 현재와 같은 우아한 소송적 행보로 대응할 적의 방법론이 바뀐 이 시대에 '이번만큼은 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