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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전효성 민주화와 일베 홍어의 다른 점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5.20 2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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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구상 시인의 '적군 묘지 앞에서' 중 일부

이 글의 작가는 영남일보 등 여러 언론 매체에 몸담았고, 동란 당시에는 종군하기도 했다. 이후 도미해 하와이대 초빙교수를 지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상황에도 이미 목숨을 잃은 적에게는 증오를 품는 게 도의가 아니라는 시인의 휴머니즘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맥락이 조금 다르긴 하나,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선우휘 작가의 '승리'에도 공포에 질려 늘어진 적에게는 총을 쏠 수 없다는 학도병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같은 민족끼리 맞붙었기에 더 치열하고 증오감도 사무친 동란 무렵에도 세상을 떠난 적병의 유해나 대적할 능력을 잃은 적을 대하는 태도는 이와 같았다.

근래 걸그룹 씨크릿의 멤버 전효성이 '민주화' 발언을 잘못 했다고 해 낭패를 빚더니 광주광역시를 이끄는 강운태 시장이 5.18 정신을 훼손하지 말라며 보수 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의 사용자들에게 경고를 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해서 되는 말(표현)과, 안 되는 말(표현)의 경계는 어디인가. 그건 참으로 모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일례로 흔히 기자들이 정치적으로 온당하지 못해 뵈는 합작을 '야합'이라고 하지만, 이는 과거 공자의 탄생 배경에 나온 오래된 말일 따름이지 그런 역사적인 사용 배경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남부끄러운' 결합 과정을 '몰래' 처리해 '(큰) 결과'를 내놓는 경우를 함축적으로 사용하기에 더 이상 적절하고도 간명한 표현이 없어서 부득이 사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을 교미하는 돼지에 비유해 그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과거 독일 판례 중에는 이 경우 표현의 자유 운운할 것이 아니라 명예훼손이라고 본 예가 있다는 것으로 안다. 인간의 명예 감정상 아무리 후안무치한 정치가라도 웃고 넘길 수 있는 선이 있고 아닐 경우가 있을 텐데, 이 경우가 후자라는 것이고 이는 개별적 케이스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이다.

다시 돌아가, 민주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 팀은 그런 것으로 민주화시키지 않는다"고 나이가 많지 않은 여가수가 이야기할 때엔 아마 진짜로 민주화(전근대적인 봉건제와 군사정권의 시대를 거쳐 공화정다워짐), 산업화(못 살던 것을 경제개발계획 등의 성과와 전국민의 노력과 희생에 의해 극복한 일)의 정확한 뜻을 몰라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민주화라는 표현이 회자되고 비꼬는 의미로까지 사용되는 일은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자처하면서 타인의 의견에 비판을 강도높게 가하는 경우를 말한다. 여기에 특정 지역 거주민에 대한 차별에 당했다는 피해의식 등이 결합되면,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지경의 감정 표출에까지 이르며 이런 지경을 민주화라고 흔히 이야기하는 것 같다.

반대로 보수적인 이들이 과도하게 진보에 대한 공세를 통해 의견을 압살하는 일을 산업화라고 하니, 이를 속된 말로 보리문둥이들의 말빨에 의한 장난쯤으로 보는 비판론을 정히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요컨대, 아무리 그 원래 뜻이 숭고하다고 해도 그것을 향유하는 이들이, 혹은 후계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제대로 된 권리자 혹은 계승자로서의 존엄을 갖추지 못하고 말도 안 되는 감정에 매몰돼 자기 이기주의로 이런 지위나 배경을 특권으로 사용할 때 민주화니 산업화니 하면서 공세를 펴는 일이 온라인상에는 있다.

이 정도까지는 사회적으로 모범적인 것은 못 되어도 용인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 시장이 하나의 광역지방자치단체를 이끄는 체통에 걸맞지 않게 분노해 불특정 다수 네티즌들과 맞붙은 사정은 이런 단어 허용 문제와 다르다. 어찌 우리 군대에 희생된 민간인들을 안장한 관이 도열한 장면을 "홍어 배송 포장 완료입니다"라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하물며 적병에게도 이렇게 하지는 않고 시신이나마 거둬 묘지를 써 준다. 참고로 시에 등장한 적군 묘지는 어느 시인의 상상력의 소산이 아니라, 실제로 있는 장소로 안다.

혹시 광주가 민주화항쟁이 아니었다고 가정해도, 바꿔 말하면 이들이 대한민국에 항적한 매국노나 폭도라 해도, 이렇게 희생자 시신들을 모욕할 필요가 있는지 그 부분도 생각해 볼 일이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끝부분에서는 "베니스 시민의 목숨을 흉계로 노린 자(샤일록)를 법에 따라 사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시의 최고 수뇌부에서 "우리의 정신이 그들과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기 위해, 사형은 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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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도한 온정주의까지는 몰라도(개인적으로는 이런 처리 태도는 문제라고 본다), 이미 죽은 자임에랴 그런 증오를 끝까지 갖고 가는 게 자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가진 쪽에서 당당히 입에 담을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부 일간베스트 사용자들이 전효성에게 쏟아지는 과도한 비판을 방어하기 위해 반격하는 일은 적절하다 치더라도, 반대로 광주 항쟁의 본질을 흐리거나, 그 희생자에 대한 모멸적 표현을 일부러 사용하는 일은 정말로 잘못됐다고 할 수 있다. 일련의 관련 논쟁이 다름아닌 5월에 본격적으로 달아오르는 것이 안타깝다. 시정과 냉정을 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