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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靈 '봉쇄소송'②]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 SLAPP = 최악

한진중공업의 비극 "민주노조 지켜달라, 보지도 못한 158억 왜 우리에게"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5.16 18: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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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4월1일(현지시간 기준) 외신을 하나 살펴보자.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AB인베브는 전직 직원인 C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버드와이저 등을 만드는 세계적 양조 메이커인 AB인베브는 '물 탄 맥주'를 만들다 내부 고발을 당한 셈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C씨가 재직시 알게 된 사내 정보를 외부로 유출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걸었다. 비열한 속임수 맥주 제조 관행에 소비자들이 집단소송에 나선지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C씨의 변호사인 로버트 카리초프는 "AB인베브의 행동이 (내부 고발자의) 입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 특히 이 문제에 대해서 다툴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암시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땠을까. C씨가 이젠 외부인이긴 하지만, 아마 노조에 연대의 도움을 청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을 탄 맥주'를 제조했다는 비리를 폭로한 전직 사원을 상대로 오히려 봉쇄소송을 자행한 대형 양조 기업에 비난이 쏟아진 바 있다. ⓒ  AB인베브  
'물을 탄 맥주'를 제조했다는 비리를 폭로한 전직 사원을 상대로 오히려 봉쇄소송을 자행한 대형 양조 기업에 비난이 쏟아진 바 있다. ⓒ AB인베브
왜 과거형으로 표현했을까. 문제는 이제 강성 노조라고 해서, 회사의 문제 사정에 대해 강하게 어필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데 지장이 클 수 있는 사정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우가 아닌 현실화 가능성마저 일각에서는 엿보인다. 

전략적 봉쇄소송(SLAPP)으로 기업에 반대하는 이들을 무력화하거나 내부 갈등 유발자(노조)을 다스리는 기법은 위에서 보듯,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제국이라고 해서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상황이 조금 더 특이하다는 노동관계 지형의 차이가 있다. 바로 몇년새 바뀐 복수노조 허용과 타임오프제 등 시스템이 현장에서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노동계의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적용되는 사례가 없지 않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 같은 사정이 봉쇄소송 및 유사 법률적 공세에 처하게 되면 심각한 상승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부분에 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毒 됐나?

한국의 노사문화는 여러 번 부침을 겪었지만, 특히 근래 타임오프제 논란과 복수노조 허용 등은 뜨거운 감자였다. 일단 복수노조를 허용하되, 타임오프제를 적용해 노조가 회사의 자금 보조를 받는 기형적 태도를 지향하고 자립적으로 활동하되 이를 위해 노조전임자 제도를 운영하는 것을 관리하는 식으로 틀 자체를 바꾼 것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이 상황은 복수노조를 허용해 하나의 노조가 장악하던 분위기를 일신하고 여러 노조에서 전임자의 타임오프를 나누는 등, 기본적인 구상대로 잘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일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어용노조가 있던 곳은 새로운 노조들의 출현이 노사문화 발전 측면에서 긍정적이겠으나 반대로 '민주노조'가 있던 경우에 회사에 가까운 노조가 등장해 힘을 빼고 경우에 따라선 세력의 크기가 역전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또 문제가 뒤따른다. 현재 제도의 맹점을 보완하자는 취지로(대혼란을 막자는 의도에서) 복수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의 경우 협상채널을 단일화할 수 있는,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제도가 존재한다.

문제는 일부 노조의 경우, 새롭게 등장하는 노조들이 회사측의 의중에 영향을 받는 자신들과의 경쟁도구라고 생각한다는 데 있다.

실제로 복수노조 시행 1년을 기해 지난해 7월 알려진 자료들을 보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전국 203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단일화 과정에서 "노사관계가 나빠졌다"고 응답한 기업은 11.1%에 그쳤다고 공표했다(반면 "별다른 혼란이 없었다"고 대답한 기업은 88.9%에 달했다는 게 경총의 분석). 아울러 교섭창구 단일화에 장기간이 소요돼 교섭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일부 전망과 달리, 실제 복수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창구를 단일화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대부분(85.2%)의 기업이 3개월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정 속에서 그해 같은 시점 고용노동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복수노조 시행 1년간 824개의 노조가 새로 설립됐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막이 흥미롭다. 기존의 노동운동계 양대 산맥인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산하 노조에서 따로 독립한 노조가 전체의 64.4%(542개)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신설노조 중 85.6%(721개)는 상급단체를 정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노조는 3.4%(29개), 한국노총은 10.6%(89개)에 그쳤다는 이 같은 사정은 무엇을 말하는가.

양대 노총에서 분화해 나온 노조 중 대부분이 새로운 상급단체에는 가입하지 않은 것은 독립적으로 회사만 상대하겠다는, 즉 노동자간 연대 등에는 무관심한 노조가 늘고 있다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대학 학생회에서 '비권(운동권 세력이 아닌 세력)'이 대두되는 것과 같이 선택의 문제로 보면 그만이라고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협상창구(교섭창구) 단일화라는 문제와 이를 겹쳐보는 시각에서는 새로 생긴 노조 중 상당수가 이전에 어렵게 자리를 다지고 근로자 권익을 위해 투쟁해 온 이른바 '민주노조'를 견제하고, 사람들을 빼가기 위한 단체들이 아니냐고 우려한다. 

교섭단체도 못 되고, 대형소송 얻어맞으면 스스로 목을…

일부에서는 대학 학생회에서 '비권(운동권 세력이 아닌 세력)'이 대두되는 것과 같이 선택의 문제로 보면 그만이라고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협상창구(교섭창구) 단일화라는 문제와 이를 겹쳐보는 시각에서는 새로 생긴 노조 중 상당수가 이전에 어렵게 자리를 다지고 근로자 권익을 위해 투쟁해 온 이른바 '민주노조'에서는 이렇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실제로 이 같은 교섭창구에서 밀려난, 그리고 SLAPP 적어도 최광의의 SLAPP에 직면한 노동조합과 그 관계자가 절망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가 이미 나온 바 있어 안타까움을 던져주고 있다.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를 물리치고 '박근혜정부'가 출범할 것임이 예고된 지난 연말, A씨(전국금속노조 부양지부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가 스스로 목을 맸다. A씨는 "박근혜정권 하에서 5년을 더 버틸 자신이 없다"고 절망했다.

혹자는 고인의 선택에 대해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순히 진보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정권이 탄생하는가, 보수정권이 다시 들어서는가의 문제 때문에 고인이 압박을 받은 것은 아니다. 무거운 소송의 올가미가 그의 목을 죄고 있던 와중에 여기에 한 자락 문제가 더해졌다고 보는 게 낫다는 풀이가 유력하다.

A씨는 소송 중압감에 시달렸다.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사측은 노조 측에 제기한 158억원의 손해배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법원은 노동자와 노조에는 거북한 곳이다. 거액의 가압류 등으로 언제든 목줄을 죌 수 있는 문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교섭창구의 지위가 없는 2등 노조에게 혹시나 SLAPP성 소송이 걸리면 비극이 시작된다. ⓒ 프라임경제  
법원은 노동자와 노조에는 거북한 곳이다. 거액의 가압류 등으로 언제든 목줄을 죌 수 있는 문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교섭창구의 지위가 없는 2등 노조에게 혹시나 SLAPP성 소송이 걸리면 비극이 시작된다. ⓒ 프라임경제
외형상으로 보면, A씨의 선택은 극단적으로 보인다. 지난 2011년 노사합의에 따라 조합간부 등 개인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및 형사 고소, 고발을 취하했다는 게 일반 상식이기 때문. 하지만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여전히 무거운 짐으로 관계자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노조에 책임을 묻겠다는 건 노조원들에게도 부담이다. 개인 부담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결국 노조가 큰 출혈 끝에 빈사 지경에 몰릴 수 있다. 그렇게 힘들게 문제가 꼬인 데에는 교섭창구 지위를 잃은 악조건이 작용했다.

SLAPP 우려와 교섭창구에서 밀린 군소 노조의 설움, 두 악재가 위기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 셈이다.

실제로, 고인은 유서에서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자본"이라고 비판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노동계의 공분을 샀다.

이후 그의 장례 절차를 타협하는 와중에,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문제로 경쟁적 관계에 있던 다른 노조와 그가 몸담았던 일명 민주노조가 의견차를 보인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노-노 갈등'이라고 표현했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는 않다.

교섭대표 노조 자리를 갖고 있는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은 금속노조 산하 한진중공업 지회 즉, A씨의 소속이던 노조와 협상의 대동단결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연초에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은 두 차례 걸쳐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에 공문을 보내 △장례 및 추모사업 추진에 관한 사항 △손배소 문제 등 현안 해결방안에 대하여 양 노조가 협의하자고 제안했지만, 금속노조 산하 노조의 거부로 타협이 오래 지연됐다.

한참만에야 사측이 제시한 소송을 풀고 장례와 보상 등을 제시하는 안이 받아들여졌는데, 이 긴 시간적 공백은 한국 노동사에서 복수노조의 협상채널 장악능력 여부와 SLAPP 우려에 대응할 수 있는 자세 등이 노조의 존폐 자체를 흔들 수 있음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빠지면 죽는다는 공포의 '심연'으로 받아들여지기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앞의 외국 저명 맥주 사례로 돌아가, 전직 노동자이든 우연히 문제를 접하고 고발에 나선 일반인이든 간에 SLAPP 시도에 저항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우리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하겠다. 우리는 특히 이미 여러 특수한 여건의 복합으로 노조마저도 공세에서 자유롭지 못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시스템의 맹점을 제거하는 입법적, 사법적 노력이 빨리 성과를 얻지 못하는 한, 노조들의 대응과 연구 등이 성과물을 내고 또 사회 일반에 공감대를 구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SLAPP의 여러 바리에이션이 허용되는 사회에서, 일반인쯤은 그야말로 바로 분쇄가 가능한 대상으로 기업 등 거대조직에게는 받아들여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