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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靈 '봉쇄소송'①] 형식은 젠틀… 노조·시민운동 '차도살인'

괴롭히기 소송 농후, 법원 상당부분 형식논리 심사에 매몰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5.16 14: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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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법정이 진실을 찾아내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 당신도 그 정도 알 '짬밥'은 되잖아.(You've been around long enough to know that a courtroom isn't a place to look for the truth.)" 1998년 제작된 영화 '시빌 액션'에서 명문 로스쿨 출신에 거대 기업의 고문 변호사인 제롬 패처(로버트 듀발 분)는 환경 오염으로 가족을 잃은 시골마을 주민들을 대변해 나선 원고측 변호사 잰 쉴릭트만(존 트레볼타 분)에게 이런 대사를 뱉으며 조용한 합의를 시도한다. 법정과 소송의 의미를 이미 소송공학적 관점에서 기술자로서 바라보는 율사들만 존재하는가 개탄하게 하는 대사다. 한국 법정에서도 가끔 진실을 찾기 위한 공세나 방어가 아닌, 소송을 위한 소송이 등장한다. '전략적 봉쇄소송'이다.

전략적 봉쇄소송이라는 개념은 우리 법조계나 법학계에서 아직 낯설다. 하지만 거액의 손해배상 압박에 시달리다 노조가 무릎을 꿇었다거나 하는 소식은 일반 독자들도 이미 어느 정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국법 실무상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공중의 참여에 대응한 전략적 소송)', SLAPP로 부르는 소송이 그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응하는 일명 Anti-SLAPP법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노동법이나 시민사회운동과 관련해 상당한 경험이나 관심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상대를 괴롭히기 위해 법원과 서류를 활용하라

SLAPP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지는 아직 완전히 확립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법체계 안에서 의미있게 이를 단독 카테고리화하는 시도가 완성된 단계까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주로 노동법 관련 논의에서 불거져 나오니 노동법학자들이 연구를 할 수도 없고, 각종 소송 문제로 나온다고 해서 민사소송법 이슈로 단정하기도 힘들다(특히 우리나라 민사소송법은 민사법, 즉 가장 중요한 법률로 꼽히는 민법 등이 포함된 단위 중 일부로 보거나, 기술법적 관점에서 설강되는 학교들이 많아 창조적 학문 발전이 상대적으로 더딘 편임).

우리 법원에서는 보통 가처분이나 가압류 형식으로 나타나거나 거액의 소송 압박 형식으로도 발생한다. 이런 민사소송 절차 외에 형사소송을 SLAPP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있는데,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최근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이것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바 있다. 이에 대해사도 언론 탄압이라며 SLAPP라고 주장하는 관점도 있다(이런 논리를 따른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국가정보원이 제기했던 명예훼손 소송 주장도 넓은 의미의 SLAPP로 볼 여지도 없지 않으나, 여기에는 이견이 다수 있을 수 있다).

   법원은 정의를 밝혀내는 마지막 보루인가, 혹은 적당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협상하는 곳인가. 비판할 자유를 틀어막으려는 SLAPP 소송을 기업 등이 악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미국 등 선진국도 이를 제어하는 법률적 제약을 가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한국의 어느 법정. ⓒ 프라임경제  
법원은 정의를 밝혀내는 마지막 보루인가, 혹은 적당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협상하는 곳인가. 비판할 자유를 틀어막으려는 SLAPP 소송을 기업 등이 악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미국 등 선진국도 이를 제어하는 법률적 제약을 가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한국의 어느 법정. ⓒ 프라임경제
가장 중요한 것은 본안 소송이냐 처분이냐를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괴롭혀 기세를 꺾고 상대방이 원래 의도하던 바나 행동을 (더 이상) 못하도록 주저앉히는 데 있다는 공통점이다.

차도살인, 원래는 남을 동원해 적을 치는 병법론이겠지만 스스로 나서지 않고 적을 제압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대 사회에서는 SLAPP이 바로 차도살인의 전형적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가들로서는 특히 기업 활동에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들을 이 같은 방법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기업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재능교육, 철저히 괴롭히기 위한 압류 집행?

쉬어가는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볼 수 있는 한국 케이스를 두 개 소개한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누드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다 모 언론사에 촬영돼 널리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에 시달린 바 있다.

이와 관련, 심 의원은 자신이 누드 사진을 검색했던 일을 네티즌들이 '홀라당 동영상 감상' 등으로 표현한 데 대해 "명백히 사실과 다른 정보를 유포하고 있다"며 삭제를 요청했다. 이에 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이 사건들을 다루게 됐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에서는 "인터넷 게시글 등이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을 일으킬 경우 침해를 받은 자는 포털 등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침해사실을 소명하고 해당 내용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정보통신제공사업자는 해당 내용을 삭제하거나 일정 기간 해당 정보 노출을 차단하는 입시조치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포털에서 바로 조치를 하는 식으로 협력하지 않음으로써 방통심의위에 가게 된 것이다.

이런 조치는 삭제 그 자체를 원하기도 하지만,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언론 관련 소송 업무에 정통한 변호사 A씨(고려대, 사법시험 40회)는 "보통 언론 등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 이미 널리 퍼지거나 할 경우 손해배상 외에 구제책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우려했다. 심 의원의 경우는 내심을 정확히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미 삭제 등이 지체된 상황으로 이 문제가 민사소송 등으로 이어질 여지가 있는 건으로 볼 수 있다. 즉 전초전 단계로 행정처분을 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번째 사례는 재능교육 관련 가처분 문제다.

재능교육 교사들은 지위의 특수성상 단체협약을 체결할 지위가 아니라는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이에 따라 사측과 노조가 서로 대립했고 소송 등으로 번진 바 있다. 이 와중에 노조 관계자들에게 사측이 무리한 압류 등을 반복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010년 압류된 노조 관계자의 차량(스타렉스와 갤로퍼)들이 경매 부쳐진 예가 있다. 이 경매 진행과정에서 사측은 800만원과 400만원을 청구했으나, 법원 감정가는 300여만원과 150여만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재능교육 노조가 사측과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공격하는 도구로 압류 등이 악용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런 사측의 법적 공세를 봉쇄소송(SLAPP)로 볼 수 있을지, 또 그런 법률적 시도를 법원이 거부하는 게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사진은 시청 프라자호텔 주변에서 투쟁 중인 재능노조 관련 천막. = 임혜현 기자  
재능교육 노조가 사측과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공격하는 도구로 압류 등이 악용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런 사측의 법적 공세를 봉쇄소송(SLAPP)로 볼 수 있을지, 또 그런 법률적 시도를 법원이 거부하는 게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사진은 시청 프라자호텔 주변에서 투쟁 중인 재능노조 관련 천막. = 임혜현 기자
재능교육쪽은 2011년 4월에도 노조 사무실에 비치된 컴퓨터와 프린터, 냉장고와 세탁기 등을 압류해 경매에 회부했다. 사쪽이 청구한 금액은 2000만원선, 들인 비용은 약 15만원. 그러나 이 물건들의 법원 감정가를 보면 50만원을 조금 웃돌았다고 한다. '채권 행사가 아닌 압류 그 자체가 목적'으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들은 SLAPP 범주에 들 것인가.

이길 가능성 없는 소송 거는 게 SLAPP

물론 정치인 같은 공인이나 사회적 책무가 있는 대기업집단이라고 해서 온갖 말도 안 되는 비판을 감수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또 이들이라고 해서 정당하게 소권을 행사하는 것을 재약하는 것도 자본주의 구조상 불공평하고, 법치주의 관점에서도 맞지 않다.

그럼 어디까지가 정당한 소송 활동이고 어디부터가 SLAPP라고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이 문제적 개념이 탄생한 미국 법률가들이 적당한 논의 끝에 이미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언론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1조가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역시 언론의 자유의 한계에 관하여 많은 논란이 있고, 언론의 자유를 행사한 결과 타인의 명예나 신용 등을 훼손하는 등 권리가 침해되면 손해를 배상하여야 할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며,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 구조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거액의 배상을 구하는 소송이 많다.

이렇게 양쪽의 권익을 모두 보장해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를 행사하는 자에 대하여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부각된 사회적 문제의 초점을 흐리려는 전략적 의도를 가진 소송'을 조기에 각하하도록 하는 입법을 하는 주들이 생겨났다. 일례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1992년에 민사소송법 425.16조로 입법이 이루어졌다.

2002년에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한 환경소송에 관련, 이 조항에 대해 의미있는 해석을 제시했다. "사회적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연방헌법이나 캘리포니아주 헌법에서 보장된 언론의 자유와 청원권을 행사하기 위한 어떠한 행위로 인하여 제기된 소송은 당사자의 조기각하를 구하는 특별신청에 따라 법원이 이를 조기에 각하하여야 한다"는 것이 주대법관들의 견해를 종합해 나온 결정의 내용이다. 주 대법원은 이어서 "다만, 원고가 당해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즉, 원고(즉 노조나 시민운동가들에 의한 비판으로 시달려 이에 대응하려 소송을 낸 사람이나 회사)가 제대로 소송을 건 경우라면 SLAPP로 몰아붙여 바로 각하할 수는 없다. 다만 이에 대해 반대해석을 하면, 제대로 된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닌, 단순히 공세적으로 거액의 소송을 안기려 드는 것은 SLAPP이므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통상 사회적 문제에(즉 기업이나 정치권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경우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 정도는 아니라 개연성이 있는 상태(특히 대기업과 관련된 경우에는 중요한 입증자료는 대기업측에서 독점하는 경우가 많을 것임)에서 공세를 취하는 경우도 많을 것인데, 일단 이에 반격 수단으로 거액의 손해배상이 청구되면 입증자료가 부족한 피고측(노조, 시민운동가 등)에서는 소송 중간에 결국 원고측과 타협하게 되고 더 이상 문제제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를 막자는 규정이 도입됐고 또 그런 취지로 해석을 하자는 법원 입장도 나온 셈이다. 현재 약 20개주가 Anti-SLAPP 방법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묘해지는 기법, 돈 안 되는 압류 등 압박해도 '신의칙 문제'

문제는 이런 규정이 외국법의 논의이고, 더욱이 SLAPP를 막기 위해 연대하려는 미국 시민운동가들 역시 주에 법이 마련돼 있는가에 상당 부분 좌우되는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일렉트로닉 프런티어 재단의 홈페이지에서 제시하는 SLAPP 관련 문답 코너에서는 (SLAPP 소송을 당하면) 당신의 주에 이런 법이 마련돼 있는지부터 보라는 설명이 있다. 주마다 사정이 다르다는 것. 이런 상황이니 우리 법률 시스템에 바로 미국식 논리를 가져올 수는 없고, 해석론상 참고 자료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렉트로닉 프런티어 재단에서는 SLAPP에 직면한 일반인(블로거)들을 위해 조언을 아까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 외의 영역에서는 논의 적용이 불가능하고, 미국 내에서도 주에 따라 다소 제도가 다를 수 있다고 조언한다. https://www.eff.org/issues/bloggers/legal/liability/overview를 참조해 볼 만 하다. ⓒ 일렉트로닉 프런티어 재단  
일렉트로닉 프런티어 재단에서는 SLAPP에 직면한 일반인(블로거)들을 위해 조언을 아까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 외의 영역에서는 논의 적용이 불가능하고, 미국 내에서도 주에 따라 다소 제도가 다를 수 있다고 조언한다. https://www.eff.org/issues/bloggers/legal/liability/overview를 참조해 볼 만 하다. ⓒ 일렉트로닉 프런티어 재단

기업에서 노조 등에 청구하는 가처분 등을 불필요하게 기계적으로(형식 논리만 맞으면 거의 대부분) 인정해 줘서 기업에 칼을 빌려주지 말자는 논의 정도에 그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반규정이 있다. 바로 민법 제 2조상의 신의칙이다.

또 실체법인 민법 외에도 소송과정상에도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소송에 임할 의무가 양측에 있다고 해석된다.

법원까지 신의칙 위배 가처분이냐를 다투지 않고 외부 중재기관의 조정 단계에서 사실상 결론이 난 케이스가 있다는 점은 재능교육 같은 불필요한 압박용 압류 남발 건에 참고할 만 하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은 3월11일 조정원을 통한 사건 접수와 조정성립률이 크게 늘었다고 공표하고, 흥미로운 사례 및 리딩 케이스들을 선정, 공개했다.

이 중에 보면, 정밀히 계산해 볼 때 약 700만원짜리 빚이 있는 대리점에 업체에서 1억짜리 가압류를 걸어놓는 식으로 목줄을 죈(근래 논란이 되고 있는 밀어내기 압박 등의 한 수단으로 볼 여지가 있음) 케이스가 문제가 있다고 조정한 경우가 있다.

물품공급사업자는 A대리점의 경영이 악화되어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자, 2010년 10월경 대리점의 연대보증인인 신청인의 재산에 가압류(청구금액 약 1억원)를 설정했고, 이것이 부당하다며 연대보증인이 조정을 요구했다. 약관분쟁조정협의회는 연대보증인의 의사를 반영하지 아니한 채, 주채무 계약의 갱신에 따라 보증기간이 연장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이 사건 연대보증서 해당 약관은 약관규제법 제12조 제1호(의사표시의 의제)에 해당하여 불공정하다고 봤다. 아울러, "피신청인(회사)은 신청인(A대리점의 연대보증인)으로부터 700만원(채무금액)을 지급받은 다음 이 사건 가압류를 해제하라"는 내용으로 조정권고안을 제시하였고, 양 당사자가 이를 수락하여 조정이 성립됐다.

여기서 논점은 두 가지다. 증감변동하는 빚이 있을 때 그리고 그 빚에 연대보증인이 있을 때 △연대보증인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고 보증기간을 늘리는 것은 옳은가 △총액 대비 과도한 가압류를 설정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가이다. 첫번째 문제는 약관법 논리로 풀었지만, 두번째 문제에 주목해 보면 이는 그야말로 일반원칙에 기대어 즉 신의칙 위반으로 해석한 대목이라고 보인다.

어디 재능교육과 누드 의원님뿐이랴

이 같은 논리구조를 채용하면, 과도한 가압류를 시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더욱이 이를 SLAPP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은 더더욱 논란이 불가피하다. 재능교육 관련 압류 진행 사례들에 이런 논쟁을 대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심 의원의 경우는 아예 "'누드 사진'과 '홀라당 동영상'은 개념 차이가 있지만 선정적·음란성 정보라는 내용적 측면에서는 구별 실익이 크지 않다"며 이런 표현이 명예훼손이라는 주장 자체를 방통심의위가 인용불가 판단을 내렸다. 그러므로, 이런 해석을 받아들고도, 네티즌들을 제압할 목적으로 소송으로 가는 행동이 있다면, SLAPP 시도로 못 볼 바가 아니다.

아직 불명확한 안개 같은 개념이지만, 사회 각층에서 비판할 자유를 압살당하는 SLAPP 의심 사례는 한국에서도 곧 논의를 본격화해야 할 것임도 부인하기 어렵다. 대체로 이번 기사에서 살핀 이상과 같은 상식을 바탕으로, 여러 관련 논점들을 간단히 살펴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