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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출판문화산업⑤] 출판사 경영,'그거(?)보다 재밌게'

북스피어 대표 인터뷰해 보니…백화점식 경영 지양 "좋아하는 일 하니 독자사랑은 덤"

임혜현·조국희 기자 기자  2013.05.11 10: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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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소학교 졸업 학력으로 아사히신문사 광고도안부 직원으로 일하다 41세에 데뷔한 소설가. 늦깎이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나 작고할 때까지 거의 1000편의 작품을 쓴 괴력의 인물. 마쓰모토 세이초는 '료마가 간다'를 시바 료타로와 함께 일본의 국민작가로 꼽힌다. 그러나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이기도 하다. 그런 세이초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 출판사가 있다. 그것도 다른 출판사와 손을 잡고, 통일된 장정(디자인을 하고 묶는 일)으로 펴내는 팀스피리트 작전을 통해서다. 그것만이 아니다. 틈나는대로 애독자들을 불러모아 일을 시키고, 여성 누드모델이 등장한 파격적인 책광고에 회사 대표가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북스피어'의 이야기다. 
   북스피어의 광고. 도발적인 컨셉트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 북스피어  
북스피어의 광고. 도발적인 컨셉트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 북스피어

두 출판사 협업 힘들었지만…함께 의욕 보이니 일본측 파트너도 감명, '의리'계약

출판계가 어렵다. 조금씩 늘던 판매량도 2012년 통계에서는 오히려 꺾였다. 불경기라 책도 안 산다는 불안감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유력 출판사에서 그것도 유명 작가들의 책마저 '사재기'로 허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왔다는 의혹마저 봄철 출판가를 흔든다. 이런 와중에 이른바 '장르소설' 부문에서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한 회사가 있다. 김홍민 북스피어 공동대표(이 회사는 김홍민·최내현 공동대표 체제)를 만나 강소(强小)출판사의 생존 전략을 간략히 들어봄으로써 출판계가 난국을 타개할 방안의 시사점을 생각해 봤다.

김 대표는 세이초 시리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전하자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세이초 시리즈는 깔끔하고 이지적인 느낌을 주는 디자인도 눈길을 끌지만 나란히 진열해 놓고 보면, 한 회사에서 펴낸 전집으로 보일 정도로 디자인 통일성이 있다. 두 회사가 손을 잡고 통일된 장정을 한 케이스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김 대표는 "유명 작가들의 번역본들을 보면 여러 출판사에서 각각 번역을 하다 보니 디자인이며 크기(판형)도 들쑥날쑥인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 이번 세이초 시리즈의 협력 배경을 설명했다. 아울러 이 작가가 추리소설로도 유명하지만 역사를 다룬 작품, 미해결 사건에 대한 논픽션 등 분야도 다채롭고 잠시 언급했듯 작품의 편수 자체가 워낙 많아 한 회사에서 모두 작업하기에는 부담이 없지 않다. 이에 따라 모비딕 출판사와 손을 잡았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가 모비딕과의 협력 작업으로 나오는 세이초 시리즈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통일된 장정으로 두 회사가 책을 펴내는 일은 유례가 드물어 출판계에서도 화제몰이를 했다. = 조국희 기자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가 모비딕과의 협력 작업으로 나오는 세이초 시리즈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통일된 장정으로 두 회사가 책을 펴내는 일은 유례가 드물어 출판계에서도 화제몰이를 했다. = 조국희 기자
북스피어와 모비딕의 협력 사업은 처음부터 순조로웠을까? "이제 (모비딕과의 협업이 어느새) 1년 2개월 가량 됐다"는 김 대표는 "준비 작업은 대단히 힘들었다. 모여야 되고 결정을 하려면 다 의논을 해야 되니까. 두 군데서 하다 보니 조율이 힘든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이런 시도가 출판계에 없다 보니 업계 사람들이 흥미롭게 생각하고 응원들을 해 줬다"고 회상했다.

북스피어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가' 미야베 미유키(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한 '화차'의 원작자) 작품들도 다수 번역하는 등(이 작가의 저서 중 일부는 문학동네 출판사에서도 번역, 출간) 일본 등 해외 장르소설 소개에 강점이 있다. 하지만 일본 내에 특별한 '채널'은 없다고 한다.

그저 재미와 호기심으로 한 편, 한 작가씩 눈길을 주고 해당 판권을 가진 현지 작가 혹은 에이전트와 협상하는 작업을 뚝심으로 진행하며 부딪혀 돌파해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세이초 시리즈는 북스피어에게도 특별한 경험이다. 규모가 크지 않은 한국 출판사가 그것도 두 군데서 손을 잡고 전집을 내고 싶다고 하니, 일본쪽에서도 흥미와 관심을 보였다는 것.

더욱이 좋은 작가를 한국에 소개하고자 어려운 와중에서도 서로 손발을 맞추는 모습에 일본 관계자도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 두 회사가 연속 출간을 기획한다는 뉴스가 흘러나갔는지, 한국의 유명 출판사 한 곳에서 경쟁을 시도했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계약 체결선을 바꾸라는 유혹을 한 것이다. 아직 모비딕과 북스피어가 정식 계약을 체결하기 전이었으니, 협상을 엎어도 할 말은 없는 상황. 하지만 일본쪽에서는 두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구두 계약을 했으니 그럴 수 없다"며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고사한 것. 김 대표는 이런 호의를 "'의리'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경험이었다"고 표현했다. 이런 배려 덕에 좋은 조건으로 장기간 판권 계약을 성사했다고 한다.

"이거 좀 팔리겠는데" 생각하면 잘 안 돼, '독자님들'은 예측 불허

원래 김 대표는 소설을 좋아하던 국문학도 출신으로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에서 일을 배웠다. 그런 그가 장르소설에 강세를 보이는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다소 이례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 조국희 기자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 조국희 기자

김 대표는 "소설을 좋아해 국문과에 갔으나 (국문학과의 커리큘럼이나 지향점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고, 소설도 직접 써 봤으나 재미가 없었다"면서 다만 무협지 등 책을 가리지 않고 많이 읽었다고 말했다.

사회과학전문 출판사의 일도 재미있었으나, 독립해 회사를 차리면서 기획을 하다 보니 공백이 잠시 생겼다고 한다. 이 공백에 내놓은 책이 바로 SF물의 고전 '두개골의 서'였다. "이 책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장르쪽에 시장이 있다는 걸 인지를 하고 워낙 좋아했던 분야이기도 해서 처음에는 미스터리, SF, 판타지 세 분야를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런데 김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장르소설 부문에서 시장을 예측해 속된 말로 '대박'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김 대표는 "사람들이 좋아하겠구나 (에디터의 감으로) 짐작한다고 해도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변수가 많다. 장르쪽은 독자들의 입장이 공고해서 예를 들어 탐정이 나오고 트릭과 복선이 있고 이런 본격추리물을 좋아한다면 이런 독자는 또 사회파(추리의 재미보다는 사회의 병리현상을 추리 형식으로 파헤치는 스타일)는 안 읽는다. 반대로 사회파에 열광하는 독자들은 본격에 관심이 없고"라면서 독자와 시장을 예측한다는 게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남들이 좋아할 것을 예측하기 어렵다면,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하자"며 지금과 같은 번역과 기획 스타일을 북스피어가 갖게 된 과정을 요약했다. '좋아하는 게 잘 하는 일'이 된 셈이다.

이제 8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독자들의 팬덤을 갖춘 보기 드문 경영 사례로 출판업계에서 주목받는 북스피어의 스타일은 이렇게 형성됐다. 

"교열 봐 주실 독자님 모십니다"…펀드모집으로 독자 호주머니도 털어

북스피어의 독창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독자들을 불러모아 짐을 나르는 일을 도와 달라고 하고, 교열 같은 어려운 일도 요청한다. 펀드를 모집해 광고를 시도하기도 한다.

"독자의 사랑으로 먹고 산다"는 진부한 표현이 실제로 문자 그대로 적용되는 형태다.

김 대표는 "사실 독자들을 이런 작업으로 도와 달라고 모아도 음식을 대접하고 뒤풀이(회식)을 가고 하다 보면 아르바이트나 외주(특히 교열 등은 전문 인력을 프리랜서처럼 쓰는 관행도 있다)를 쓰는 게 낫다 싶은 경우가 많다"면서도 "다만 책을 정리하거나, 교열을 꼼꼼히 보는 것은 비용 문제만이 아니라 애정을 갖고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다"고 말한다. 비슷한 표지의 여러 책이 있다면 아르바이트 인력은 정확히 이를 구분, 작업하기 어려울 수 있고 실수도 필연적으로 나온다. 그러나 독자들의 '재능기부'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면 책을 잘못 포장하거나 하는 일을 독자들 스스로가 용납치 않는다는 것.

그런 고마운 인력들의 도움으로 매번 더 좋은 책을 공급한다는 목표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고 김 대표는 믿고 있다.
   북스피어가 번역, 출판한 복수 스토리 '이와 손톱'은 소설의 결말 부분을 봉인한 형식으로 출판된 바 있다. 이런 깜짝 편집을 한 배경을 블로그를 통해 독자들에게 설명했다. ⓒ 북스피어  
북스피어가 번역, 출판한 복수 스토리 '이와 손톱'은 소설의 결말 부분을 봉인한 형식으로 출판된 바 있다. 이런 깜짝 편집을 한 배경을 블로그를 통해 독자들에게 설명했다. ⓒ 북스피어
   독자들의 품앗이를 요청하는 북스피어의 공지. 북스피어는 특정 영역에서 꾸준한 출판을 하면서 독자들의 신뢰와 사랑을 얻은 케이스로, 독자들의 도움을 많이 끌어내는 모델로도 자리매김했다. ⓒ  북스피어  
독자들의 품앗이를 요청하는 북스피어의 공지. 북스피어는 특정 영역에서 꾸준한 출판을 하면서 독자들의 신뢰와 사랑을 얻은 케이스로, 독자들의 도움을 많이 끌어내는 모델로도 자리매김했다. ⓒ 북스피어

심지어 광고도 독자들의 애정으로 집행하기도 했다. "책은 몇백, 몇천 자금으로는 또 단발성으로는 홍보하기가 어렵다"면서 "그런 상황에 독자들에게 '이런 책이 있는데 마케팅 자금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기획 조건으로 펀드를 제안했다"고 지난 번 눈길을 끈 '독자 광고자금 펀드'의 사연을 풀어놨다.

이에 따라 미야베 미유키의 '안주'가 대대적인 마케팅 바람을 탈 수 있었던 것. 안주는 일명 에도물 시리즈(에도, 즉 지금의 도쿄에 도쿠가와 막부가 있던 시절을 배경으로 미스터리물이나 유령 이야기 등을 쓰는 것. 식당 처녀와 무사집안 총각이 살인 사건을 해결해 가는 내용 등 여러 갈래가 있음) 중 하나다.

모델 출신 독자가 광고에 사용하라고 누드로 출연해 준 적도 있다. 묘령의 여인이 청바지만 걸치고 안겨 있으나 김 대표가 책만 읽고 있는 '그거보다 재밌다' 광고는 사진은 지인이, 모델료는 청바지 한 벌만 선물받는 것으로, 즉 전적으로 '재능기부로 제작'됐다. 

백화점식 종합출판사 시도 지양, '재미있게 경영하고 싶을 뿐'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김 대표는 출판사들이 적은 자본으로 살아남으려면 전문성과 나름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 조국희 기자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김 대표는 출판사들이 적은 자본으로 살아남으려면 전문성과 나름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 조국희 기자
김 대표는 앞으로의 성장 계획, 현재 한국 출판계가 처한 난국을 타개할 돌파구를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면 '오버'일 수도 있는데 한국에서 출판사가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살아남으려면, 색깔이 확실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어떤 분야를 택하든, 그 분야에서 전문 출판사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김 대표는 '유아 사망률'이라는 표현을 써 가며 신생 출판사가 뿌리내리기 어려운 실상을 전했다. 김 대표는 "5년차까지의 출판사는 사망률이 월등히 높다. 대개 출판사들이 자본이 없으면서도 (5년 안쪽에) 종합출판사로 가려고 시도한다"고 지적했다. 참고로 북스피어는 8년 동안 자기 전문 분야 외에 외도를 한 경우가 없다고 한다.

김 대표는 "얼추 자리는 잡았고, 확장을 한다면 장르작가들이 쓴 논픽션 등을 내 보고 싶다"고 구상을 밝혔다. '미유키의 에세이', '세이초의 추리물 이론서', '스티븐 킹의 글 잘 쓰는 법' 등으로 자신들이 잘 하는 영역과 애착이 가는 작가들의 또다른 매력 포인트들을 끌어내는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태 해 온 일들과 같으면서도 다른' 일이라는 점에서 위험 부담보다는 이채로운 활력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