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음모론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특히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일본의 경기부양책에 대해 비난의 시선을 거둬야 하죠. 선진 7개국(G7) 중앙은행 금융완화는 결국 '이웃나라 부자만들기'며 우리도 언제든 쓸 수 있는 정책인 겁니다.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죠."
이철희 동양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이 최근 취하고 있는 양적완화는 환율전쟁으로 대표되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아니라 모든 나라의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유용한 정책이라고 운을 뗐다. 선진국 중앙은행에 대해 불신보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엔저가 예상 밖으로 빠르게 진행되면서 국내에는 일본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엔저를 앞세운 일본의 대공습에 국내 수출이 타격을 받으며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에서다. 그러나 이철희 이코노미스트의 견해는 다소 달랐다.
◆환율전쟁 "관세전쟁 아닌 한 문제없어"
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동양증권빌딩에서 이 이코노미스트를 만나 의견을 들어봤다. 그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지지와 미국의 패권 재도래 등 세계경제의 새로운 질서에 대해 과감하게 역설했지만 이러한 의견은 이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환율전쟁이라는 개념은 1930년대 대공황에 나온 개념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자였던 조앤 로빈슨 여사가 환율 저하 경험국이 수출을 통해 그만큼 이익을 얻는다면 나머지 나라가 그만큼 손해를 입는다고 설명하면서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로 불리게 됐죠."
이후 환율 절하에 이어 '관세전쟁'으로 이어져 문제가 됐으나 경기부양 정책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
이철희 동양증권 이코노미스트. = 이혜연 기자 |
이와 맞물려 미국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의장도 지난 3월25일 런던정경대(LSE) 강연에서 아베노믹스를 포함한 G7 중앙은행의 금융완화 정책은 '이웃나라 부자만들기'의 '포지티브 섬 게임(참여자 모두 이익 발생)'이라고 강조했다는 사실도 그의 판단과 맥을 같이 한다.
무엇보다 그는 G7 국가들은 낮은 인플레이와 높은 실업률의 상황에 처해 있고 모든 나라가 추가적 금융완화 정책을 통해 총수요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단언했다. 이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라는 점 역시 인식해야 한다는 설득도 빼놓지 않았다.
◆유럽, 통화 통일했으나 위기관리 능력無
"유로존과 중국의 약화로 미국의 패권이 재도래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경제, 정치, 군사 모든 측면에서 지배적 파워로 등장할 겁니다. 유로존은 화폐 통일을 이뤘으나 위기관리시스템을 만들지 못했고,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개선됐어야 할 구조조정의 시기가 지연돼 문제를 키웠죠."
그는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로 번졌고 은행동맹, 재정동맹, 정치동맹의 진전으로 나가지 않는 한 이러한 리스크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결국 유럽의 정치통합 의지는 약화될 것이고 영국과 유로존 가입을 준비하는 동유럽 국가들도 멀어질 것이라고 점쳤다.
또한 중국의 경우 '중진국 함정'과 '체제이행의 함정'을 겪고 있으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 구조개혁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진국 함정이란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 초기에는 순조로운 성장을 이루지만 중진국에 이르러 장기간 둔화돼 정체되는 현상이며, 체제이행의 함정은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변화 과정 중 겪게 되는 일종의 덫이다.
이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3대 싱크탱크 중 하나인 칭화대학에서 2012년 제시한 '체제이행의 함정' 중 국유기업 등의 기득권 집단이 개혁을 저지하고 이행기의 혼합경제인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정착시키고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사회발전이 왜곡되고 불평등 확대, 환경파괴 등의 부작용이 심화했다는 분석도 들려줬다.
한편 칭화대학은 이 같은 문제의 극복방안으로 △시장경제, 민주정치, 법치사회 등의 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세계문명의 주류 편성 △정치체제 개혁 가속화 △개혁에 관한 의사결정은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정부 최상위층에 의한 그랜드디자인의 형태 진행반대 등을 제시했다.
◆한국은행, 명확한 목표 미리 밝혀야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금융정책에 대한 투명성을 강조하며 중앙은행이 목표를 분명히 제시해 경제주체가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높은 물가를 염두해 현재 돈을 푸는 재정정책을 선뜻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그러나 시장경제의 본령은 통화정책인 만큼 본령을 안 쓰고 나머지를 써 경기를 살리려고 하니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그는 "'재정'이든 '긴축'이든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분명한 목표를 미리 제시해야 하지만 나침반을 잃어버린 듯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경험과 능력의 부족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이 이코미스트는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에 나섰지만 기후협약이나 안보 등에 대한 얘기는 있으나 통화정책에 대한 협의내용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 상호협력 및 통화정책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