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일월오악도는 그간 별로 많이 알려진 그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조선시대 임금님이 계신 곳에서, 임금님을 보위하는 상징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반인들이 그 그림의 존재조차 거의 모르던 그림이었다.
원래 일월오악도란 명칭이 확정되어져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실상 현대시대의 사람들이 지어서 부르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일월오봉도 혹은 오봉도 등으로 제각각 부르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제각기 부르고 있지만, 그 호칭은 일월오악도가 그런대로 가장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반면에 일월오봉도는 오히려 일월오악도를 낮춰보는 불손함이 깔려 있는 호칭이라고 까지 보인다.
일월오악도는 요컨대 전통적인 일월사상과 오악사상이 합해지며, 조선시대 임금님의 드높은 위상을 추상화시켜서 나타내는 정치사상적 상징그림으로 승화된 것이라고 봐야 하겠다.
조선황실이 만세 무궁토록 번영하며 영광을 누리길 염원하는 그림인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 건국의 이념이 집중적으로 녹아들며 응축된 용비어천 천명사상을 나타내는 지엄한 그림인 것이다.
그것은 태조 고황제 이성계 장군의 몽금척 건국신화를 낳은 전라북도 진안 마이산을 추상화하며,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담보한 정치상징적 사상을 표출한 위대한 그림이다.
황실성지 진안을 직접 답사해보고, 몽금척 정치신화를 한 번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는가?
일제침략 악선전에 세뇌된 머리를 훌훌 털어내고 예전 조선 개국사를 약간만 겸허하게 천착해 들어가더라도, 왜 일월오악도가 왜적들에게 능욕을 당하며 망각되었나를 쉽게 절감하게 된다. 그것은 정치상징이 미분화된 조선시대로는 오늘날의 애국가, 무궁화, 태극기에 맞먹을 정도의 최고 정치상징물이다. 그 정도로 존엄하고 대단한 최고 상징물이니까, 그 그림이 조선시대 임금님의 어좌 뒤에 필수적으로 꼭 모셔졌던 것이다.
일월오악도는 현재 병풍으로 13점, 액자 4점, 벽장 문짝이 4점 남았다. 도합 21개가 남아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일월오악도는 오로지 우리나라에만 있던 독특한 정치상징 그림이다. 임금님이 계시던 옥좌 뒤에는 필수적으로 꼭 모셔져 있던 중차대한 그림으로서, 임금님만이 쓸 수 있던 고귀한 그림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임금님 자체라고 동일시할 정도의 지극히 지엄하고 고귀한 그림이다.
그런데 그간 일월오악도가 대한황실의 드높은 최고상징 그림이란 것이 알려지며, 현대 궁중화가들이 그것을 복제하여 그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일월오악도는 임금님과 동일시되는 유일한 상징그림이기 때문이다. 결코 사사로이 걸어 둘 수 없는 특수 그림으로서, 감히 역적심리를 가진 경우가 아니면 아무나 함부로 걸 수 없는 지엄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일월오악도가 세속화되는 서글픈 모습이 보여지고 있다.
물론 대다수의 우리민족은 정상적이지만, 우리사회의 일각에서 보이는 약간의 잘못된 사례이다. 그러나 일월오악도는 그것조차도 경계해야하는 지극히 존엄한 그림이다.
요즘 여행지를 찾아 가거나 어떤 음식점을 갔을 때에, 드문 사례이지만 일월오악도를 걸어 놓았다. 그런데 그것은 생각하면 지극히 몰상식한 일이다.
일본은 우리를 강점 침략했을 때에 그들의 왕은 철저히 받들면서 우리의 임금님을 가급적 세속화시키고 무력화시키면서 탄압했었다.
우리의 임금님에 관한 것은 철저히 짓밟으며 조롱하고 비방했었다. 우리민족의 구심점인 임금님을 우습고 하찮게 만들려는 야비한 간계였다. 그러한 비열하고 참담한 침략정책에 의해 집중적으로 수모를 당하던 그림이 일월오악도이다. 일제침략 당국은 융희(순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자, 즉시 창덕궁 선정전의 일월오악도를 봉황도로 교체해 버렸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일월오악도를 망각시켜 나갔다. 그 후 까맣게 망각되어진 그림과 같이 사라졌다가, 오늘날에 재조명을 받는 그림이 일월오악도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거의 무감각하게 청와대에서 쓰고 있는 봉황 문양을 당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왜적들이 원하는 대로 임금님이 사라진 자리에는 대통령이 있고, 일월오악도가 왜적들에게 수난을 당하며 교체된 빈 공간을 봉황도가 차지했듯이 봉황이 청와대를 변함없이 나타내고 있다.
두 마리 봉황이 장식된 앞에서 대통령이 앉아 집무하는 사진을 보면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분노가 치밀고 때로는 눈물이 나와야 한다. 우리의 나랏님과 일월오악도는 어디로 가고, 우리의 대통령이 저렇게 앉아 있는가?
생각하건대 왜적들이 물러가고 환갑이 지났으나, 그들의 어두운 그림자는 청와대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다. 원래 청와대 자체가 왜놈 총독이 불법 강점하고 있던 치욕의 총독관사였는데, 이름만 바뀌어 그대로인 것이다. 우리의 최고 권력 심장부까지도 이 지경이다.
일제침략 시대의 원형이 그대로 짓누르고 있다. 왜적들 시대가 그대로인가 오해할 정도이다. 일제 침략자들은 철저히 우리의 황실문화를 은폐, 약탈, 파괴시켰으며, 그 외의 것도 우리민족의 문화는 확실하게 비하하고 탄압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오늘날에도 깊은 생각이 없이 민족예술을 저급한 예술작품으로 낮춰 부르면서 풍속화, 민속화, 민속무용 등으로 부르며 속되다는 듯 깔보게 되었다.
또한 민족문화나 생활문화를 부담 없이 미신이라면서 저속하고 전근대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등의 악습이 몸에 젖어 있다.
그런데 특히 낯 뜨거운 일이 있다. 그것은 서울을 찾는 관광객의 필수방문 장소인 서울 인사동 입구에, 아주 커다란 대형 일월오악도를 만들어 놓은 것을 말한다.
도대체 서울시 문화정책도 국가 문화정책도, 지각없는 추친일파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도대체 일월오악도가 무엇인지 본질도 모르니까 이런 어처구니없는 망발 사태가 돌출한 것이다. 정말로 부끄럽고 낯 뜨거운 일이다.
인사동은 또 하나의 서울의 얼굴과 같은 곳이 되었다. 1000만 관광객이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한국문화의 상징거리와 같이 되었다. 그렇다면 인사동은 보다 격조 높은 민족의 얼굴이 되어야 한다. 생활문화가 건실하게 살아 있어야 하고, 문화민족의 기본선은 꼭 지켜져야 한다.
그런데 어찌 인사동 입구에 일월오악도를 만들어 놓았을까? 인사동은 옛 골동품 문화거리의 성격을 갖는 곳이다. 그런데 그 입구에다가 대한황실 최고 상징그림의 모조품 벽화를 만든다는 상상 밖의 발상이 어떻게 나오는가?
그곳은 궁궐이 아니다. 엄밀하게 말해 임금님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옛 내음 물씬 나는 전통문화의 저자(장터, 시장) 거리다워야 하는 곳이다. 차라리 옛 시대 뭇사람들의 다양한 생활문화가 살아있는, 따듯한 정감이 생생하게 넘치는 전시장다워야 한다.
일월오악도가 대단한 그림이라는 것은 아는데, 아무 곳에나 건다고 칭찬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인사동 입구가 대한황실을 조롱하듯 비하하는 곳이 되고 말았다. 생각이 없는 문화실조의 생생한 현장이 되고 만 것이다. 흡사 경건해야할 종묘 앞에 야외음악당을 만들었던 무지막지함과 무엇이 다른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었다고, 돼지의 문화수준이 올라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문화에도 품격이 있다. 그것이 바로 서야 나라의 국격이 드높아지는 것이다.
일월오악도를 어떻게 보는가에서 애국 충신과 추친일 매국노의 인간 품격이 구별된다. 일월오악도를 우리의 임금님 같이 드높은 국보 수준으로 보는가, 세속화시키며 우습게 보는가에서 충심과 역심이 갈리는 것이다.
1000만 관광객 시대를 맞아, 우리들의 문화적 번지수를 재점검하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하겠다. 관광대국을 만든다면서,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임금님 옷을 무엄하게 마구 입고 사진을 찍게 하는 등 아무 것이나 무작정 행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관광대국 다운 격조 높은 문화철학이 아쉽다. 인사동에는 인사동다운 문화를 보러 오는 것이다. 아무 의식도 품격도 없이, 돈 푼께나 벌었다고 거드름 피우는 배부른 돼지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다.
옛 전통과 국격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태국,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왕국을 요즘 많이 다녀오고 있다. 헌대 그 나라에서는 복장이 난잡하거나 불손한 사람은 궁궐 문에서 아예 입장조차 저지당한다. 그 나라에서 감히 국왕 옷을 제멋대로 걸치고 사진을 찍거나 국왕을 비하하고 모독할 수는 없다. 그 나라에서 전통적 왕실 문화를 깔보는 언행은 절대로 금물이다. 그것을 그 나라 국민들은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 역사, 예술을 짓밟는 만행은 옛 일제 만행 당국에서 하던 것이었는데, 아직도 일제침략에 최면이 걸려 있는 사람의 눈에는 우리 문화가 우스운 조롱거리로 보일 것이다. 아직도 그렇게 추친일 일제 타성에 젖은 사람이 인사동 일월오악도를 만들었는가?
가난하고 후진상태에 있는 캄보디아 보다, 우리들의 문화민도는 한참 뒤진 것은 아닌가?
최근에 심지어 어떤 궁궐에서는 관광객들에게 노골적으로 일월오악도 앞에서 무엄하게 사진을 찍게 만들어 놓은 충격적이고 몰상식한 곳까지 생겼다. 생각하면 일월오악도는 스페인의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제복경찰이 경비를 서며 특별관람 시키듯 해야 할 존엄한 존재인데 솔선해서 마구 세속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월오악도는 스페인의 게르니카보다 훨씬 더 높은 위상을 가졌다고 보아야 한다. 게르니카는 하나의 최고 그림이라면, 일월오악도는 대한황실을 총체적으로 대변한 최상위 그림이다.
그렇게 대단한 그림이니까 일제침략 당국이 일월오악도를 비하하고 망각시킨 것인데, 진짜 국보에 해당할 일월오악도를 일본인들이 우습게 보았다고 우리도 일본인 같이 대강대강 보고 있으니 개탄하고 개탄할 일이 분명하다.
관광사업을 하더라도 어찌 예전 일본인들이 우리 문화를 짓밟고 조롱하며, 심지어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었던 듯 낯 뜨거운 만행을 스스로 답습하고 자초 하는가? 왜놈들의 우리문화 모독이 그렇게도 좋아 보였던가?
왜놈들이 물러가고 환갑이 지났는데도, 그들이 자행하던 우리문화 모독, 말살, 비하 정책의 구태는 생생하게 살아남아 맹위를 떨치는 나라가 오늘의 우리 자화상이다.
안천 서울교육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