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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카푸어 동정론? 글쎄…아니올시다"

김병호 기자 기자  2013.05.10 16:2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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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무이자 3년 할부, 수입자동차 팝니다.'

젊은 직장인들의 마음을 흔드는 강한 유혹이다. 요즘 국내 소비자의 상품 보는 안목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까다로운 수준에 이른 것 같다. 하지만 생활과 의식수준은 제쳐두고 눈만 높아진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중소기업 샐러리맨 32세 김아무개씨는 한달 급여의 70%를 자동차 할부금으로 지출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자동차를 좋아했던 그의 로망은 수입자동차를 갖는 것이었다.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꿈을 이루긴 했지만 뒷감당에 애를 먹고 있다.

김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3년 만에 원하는 바를 얻었지만, 기쁨은 곧장 고통이 됐다. 90만원에 육박하는 할부금이 숨통을 조인 것. 결국 그는 애지중지 하는 이 꿈(차)을 내다 팔 궁리를 하고 있다.

국내 수입자동차 시장은 가격인하와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앞세워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수입차와 국산차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양 진영은 완전경쟁 시대로 접어들었다.

'내수 철밥통'을 고수하던 국산차 브랜드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내수 부진의 늪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사실상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기업들은 속이 타 들어가겠지만, 선택의 폭이 다양해진 소비자들로선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국산차들이 수입차와 경쟁하기 위해 서비스 질과 품질경쟁력을 앞 다퉈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면엔 소비자들을 옭아매는 무서운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카푸어(Car poor)가 늘고 있어서다. 하우스푸어와 마찬가지로, 큰 빚을 내서 차를 구입한 탓에 생활이 쪼들리는 이들을 이른 말이다. 최근 정부가 하우스푸어 구제 대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일각에선 "카푸어들은 도움 좀 받을 수 없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하우스푸어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카푸어를 보는 시선은 이와 전혀 다르다. 겉멋 들어 저지른 철없는 짓 정도로 인식된다. 고급수입자동차를 타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결국 채무상환에 허덕이며 궁핍하게 사는 모습은 동정은커녕, 손가락질 당하기 십상이다.

자동차값은 집값, 땅값처럼 주위환경에 따라 유동적인 상품이 아닌 버젓이 가격이 책정돼 있는 상품이다. 속이고 파는 것도 아니며 구매 전에는 유예원금상환 등의 조항이 없었다가 구매 후 다시 생기는 것도 아니다. 당장 현금이 없는 이들, 특히 젊은층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수입차시장에선 유예할부, 무이자할부, 50% 보증제 등 별별 금융상품을 미끼로 내건다.

수입차업계는 이런 비판적인 시선이 부담스럽다. 한 수입차 관계자는 "최근 카푸어라는 말이 있지만, 채무상환 등을 이행하지 못하는 고객은 소수에 지나지 않고, 수입차 가격도 예전 같지 않아 카푸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카푸어 양산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또 다른 수입차의 관계자도 "차량 구매 시 할부기간과 유예원금 상환 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고 있으며, 유예상환이 도래하면 구매자와 이에 따른 조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자동차 가격의 50%를 보증하는 제도 등을 통해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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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로 적극적인 영업활동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소비자다. "원금이 얼마? 할부가 몇 개월? 이자가 얼마?" 등은 차를 구입하기 전 알 수 있는 것이고, 자신의 수입과 생활패턴을 고려해 결정을 해야 하는 사항이다. 카푸어는 다른 푸어와 달리 전적으로 '푸어' 당사자가 책임져야 할 문제다. "수입차가 던진 달콤한 미끼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식의 어린이 투정이 통할 사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