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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출판문화산업④] 도서할인과 사재기의 유혹

출판업계 "더 이상 못 버텨"…유력출판사조차 이익 못내는 비극 원인

임혜현·조국희 기자 기자  2013.05.10 11: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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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외발자전거는 넘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낭만적으로 들린다. 이는 한때 국내 모 기업이 고군분투해 선진국 기업들을 따라잡는 스토리를 담은 책 제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페달을 밟아야만 한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하지만 체력과 균형감각도 없이 무리한 외발자전거 타기를 시도하면 비정상적인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도서 영업은 외발자전거에 타기에 비유된다. 큰 출판사들조차도 외발자전거 타기에 비유될 정도의 사정이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그걸 지탱하는 두 페달은 제살깎기식 '가격 할인' 경쟁과 사재기 등을 동원한 '판매 뻥튀기'다.

마침 한 동안 수면 아래 잠복해 있었던 사재기 조작 논란이 다시 급부상한 상황에서 이 양대 난제를 간략히 살펴봤다.

사재기, 한동안 잠잠했지만…칙릿작가부터 저명작가 김연수까지 말려들어

과거 '생각의 나무' 출판사가 사재기 의혹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었지만, 최근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넘나드는 행보를 보이며 주목을 끌었던 '자음과 모음'까지 사재기를 해 왔다는 논란이 불붙으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
   자음과 모음의 사재기 논란이 불거진 이후, 포털 다음의 책구매 관련 페이지에서 의혹 작품 중 하나가 '판매중지'로 뜨고 있다. ⓒ 포털 다음  
자음과 모음의 사재기 논란이 불거진 이후, 포털 다음의 책구매 관련 페이지에서 의혹 작품 중 하나가 '판매중지'로 뜨고 있다. ⓒ 포털 다음

자음과 모음은 황석영 작가의 '여울물 소리'를 비롯해 김연수 작가의 장편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백영옥 작가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 등을 조직적인 사재기 대상으로 관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상황은 출판계는 물론 문학계에서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백 작가의 경우야 칙릿(여성 취향의 소설) 작가로 분류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고 하지만, 김 작가의 작품은 한국과 중국 두 나라에서 유력 문학잡지에 동시연재가 돼 이미 '검증'이 된 상품이었던 상황이다. 또 김 작가의 경우 필력으로 매니아층이 탄탄하다. 황 작가의 경우도 워낙 원로라 "혹시 안 팔리지 않겠느냐"는 의문 제기 자체를 불허하는 케이스.

결국 출판사들은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사재기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위기의 경영'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유력하다.

출판계 관계자 A씨는 사견임을 전제로, '남양유업 영업사원 폭언 사건'과 출판계를 비교하면서 "'밀어내기'라는 표현이 출판계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이 의견에 따르면 그런대로 잘 알려진 출판사도 겉으로 보기와 달리 내부 사정이 탄탄하지 못하다는 것. 결국 무리하게 영업을 밀어붙이는 식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사재기 논란의 화근은 베스트셀러 위주의 시장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편법을 써서라도 일단 '순위권'에 올려놓으면 호기심에 사는 독자들 때문에 팔려나가는 속도에 탄력이 붙는다는 것.

이와 관련해 박익순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 소장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이번 사건에 착잡한 마음을 표명하고 "사재기 부분에 대한 벌칙이 약한 것에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적발돼도 출판문화산업진흥법상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물면 되는데 사재기의 효험과 비교하면 좀처럼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공신력 있는 단체가 전국 판매량을 집계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기하기도 한다.

도서정가제 예외와 마일리지, 마약같은 유혹

   마일리지 혜택은 온라인 서점이 주는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다. 도서정가제 관련 개편 논의가 불붙은 가운데, 현재의 마일리지 제도는 할인과 병행되면서 출판시장에 치명타를 날리고 있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사진은 마일리지와 할인을 모두 적용한 판매 사례. ⓒ 리브로  
마일리지 혜택은 온라인 서점이 주는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다. 도서정가제 관련 개편 논의가 불붙은 가운데, 현재의 마일리지 제도는 할인과 병행되면서 출판시장에 치명타를 날리고 있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사진은 마일리지와 할인을 모두 적용한 판매 사례. ⓒ 리브로

도서정가제 관련 논쟁도 뜨거운 감자로 2013년 봄을 달구고 있다. 아울러 일부에서는 완전정가제 실시는 못하더라도, 마일리지 없애기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값을 제대로 주고 사는 문화는 이제 오래 전 이야기가 됐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출간 18개월 미만인 신간에만 할인율을 10%까지 제한하고 있다. 아울러 마일리지는 이런 할인과 별도로 존재한다.

다만 이 같은 제도가 도서 시장에 '보약'이 되기 보다는 오히려 점점 나빠지는 사정을 잠시 잊게 해 주는, 또 도서 시장 자체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마약'이라는 비판론이 만만찮다. 

4월 김윤덕·최재천 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주관한 공청회에서는 도서정가제 확립을 위해 최 의원이 지난 1월 대표 발의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놓고 관계자들이 토론을 벌여 이 문제가 쉽게 해결하기도 어렵고, 또 여러 이해관계가 걸려 있음을 방증한 바 있다.

현행 제도와 달리, 개정안은 기간에 상관없이 신간과 구간 모두에 할인율을 10%로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은 또 신간 10% 할인에 마일리지와 쿠폰 등으로 10% 적립 혜택을 추가로 제공해 사실상 19%의 할인 혜택을 제공해온 온라인 서점의 '10%+10%' 할인도 금지한다는 방침이다.

출판업자들은 찬성하는 기색이지만, 반면 판매 관계자들은 불만을 갖고 있다. 유명 인터넷 서점인 알라딘은 1월17일 홈페이지를 통해 "신간에 대한 할인 제한을 구간에까지 확대하면 독자의 손해는 물론이고 판매 권수 감소로 저자의 인세 수입도 감소한다"는 우려를 골자로 하는 반대 성명을 냈다. 아울러 소비자에게 법 개정 반대 서명을 받는 게시판을 열고 1월22일부터는 찬성 및 기타 의견을 받는 게시판도 개설하기도 했다.

책을 싸게 살 수 있다면, 결국 소비자(독자)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생기고 다른 구매로 연결될 여지가 열려 결국 출판계에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 저자나 출판업자들은 이렇게 보지 않는 기류가 강하다. 재무설계 컨설팅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고, 읽기 쉬운 경제 관련 서적 전문 작가로 여러 권의 책을 써 낸 바 있는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요새 많은 독자들은 마음에 드는 책이 여러 권 나온다고 해서 생각했던 (구매 예상 금액) 규모를 더 지출할 마음을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영화로 따지면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개봉하면 전체 시장이 약간 커지기도 하는 걸로 보이지만 실상 다른 영화들이 손해를 보는 형태가 되듯, 다른 책을 사려던 독자들까지 대형 인기몰이에 나선 책을 사 보고 구매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완전정가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우리보다 출판문화가 앞선 일본은 완전정가제를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경우 완전정가제로 들어가면서 이것이 원인이 돼 출판 시장에서 판매총량 감소가 일어났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출판의 시장 파이 전체를 생각하거나, 또 왜곡돼 흐르고 있는 상황 등을 감안하면 조만간 이를 정리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론 역시 만만찮다.

도서할인제를 대폭 손질해 완전정가제로 가야 한다는 '위기론' 중심에는 위에서 언급한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 등이 자리잡고 있다. 박 소장은 "최근에 출판쪽 매출 자료 등을 조사한 결과 완전정가제가 시급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주요 출판사 79곳을 조사한 결과 2012년 판매가 (전년대비) 4% 감소했는데 영업이익률의 하락은 그보다 컸다"는 지적이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의 자료는 10일 취재 현재 최종완성된 것은 아니나, 대체로 현재 시장의 위기 국면을 보여주기에는 손색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자료에 따르면, 4% 판매가 줄어들 때 2012년 이익률 감소는 6.9%에 달했다고 한다. 즉 책이 안 팔리는 사회로 가는 자체도 문제지만, 팔아도 이익을 못 내는 상황으로 가는 경사의 기울기가 더 가파르다는 것이다.

완전정가제를 실시하면 판매 위축으로 오히려 역풍이 불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박 소장은 "일시적으로는(단기적으로는) 그렇게 갈 수도 있다"면서도 악순환 고리를 언젠가는 끊고 가야 한다는 점에서 검토의 필요성이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

책이 안 팔리는 사회, 팔아도 이익을 얻기 힘든 상황에 내몰린 한국 출판계가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수술하고 넘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재기 논란으로 다크호스로 꼽히던 출판사 대표가 물러나고 유명 작가들이 문제 서적에 '절판'을 선언하는 국면, 그리고 법 개정 문제로 갑론을박이 치열하기만 한 상황. 출판계는 春來不似春(봄은 왔으나 봄날 같지 않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