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중국은 북한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것으로 대북 영향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대북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한 당국자가 지난달 한 말입니다. 북한이 개성공단 문제를 놓고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던 차에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요. '적극적'으로 액션을 취하기 보다는 제스처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하지 않음'으로 일(외교)을 한다는 중국의 북한 관리 전략 분석론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말을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이번에 나왔는데,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4월말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방중 문제를 논의하고자 중국에 건너왔지만, 베이징 당국에서는 시기적으로 좋지 않다며 관련 논의 자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식 '벼랑끝 전술' 외교가 중국의 어깃장으로 드디어 브레이크가 걸리나요? 사정을 잠시 들여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김 부장은 크게 실망하고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일단 평양의 의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 둘째치고, 자신을 접견하러 나온 중국 외교부 관료가 부부장이나 부장도 아닌 그보다 낮은 국장급이었다는 것이지요.
아마 중국쪽이 모호한 답으로 미적거리는 와중에 국장급이 자신을 접대하러 나온 상황 같으면, 김 부장은 중국 공산당과의 컨택을 위해 대외연락부를 맡고 있는 왕자루이 부장을 비롯한 고위층과도 만나려 시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정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고 이는 수모인 셈이지요. 북한의 강경한 외교 방식이 부메랑을 맞은 셈이기도 합니다. 1968년 무렵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미국 함정인 푸에블로호가 북한 해군에 나포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미국과의 물밑 교섭을 통해 소련에서는 북한에 말을 넣어(압력을 행사해) 미군 함정을 풀어주는 문제에 개입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No"라고 한 거지요. 우리 바다를 침범한(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말이지요) 적국 선박을 처리하는 문제이니 모스크바에서도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소련 외무부차관이 소련 주재 북한대사관의 뻣뻣한 태도에 화를 내며 직접 승용차를 몰고 방문을 했는데, 당시 북측에서는 대사가 아닌, 3등 서기관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외신부(국제부) 기자로 오래 일했던 고 리영희 교수는 "원래 외교 프로토콜(의전)상으로는 차관 등이 방문하면 대사가 현관에서 마중하는 것인데, 1등 서기관도 2등 서기관도 아닌 외교관으로서는 말석에 가까운 3등 서기관이 나간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비상식적 처우를 하는 경우엔 우리도 몰상식하게 대응하겠다는 엄포를 놓은 셈입니다.
이런 강한 대접을 북측이 베이징 당국으로부터 한참 후에 벤치마킹당한 셈이라는 점에서 이번 일은 이채로운 것이지요. 그럼 북한은 왜 자신이 어느 정도 높은 사람을 만나는 문제에 민감한지 혹은 자신들의 최고위층을 저쪽 최고위층에 연결하는 데 안달하는 것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국정을 통수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2008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단장 자격으로 중국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그해 1월17일). 박 당시 단장은 베이징 인민대회당 복건청에서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MB의 친서를 전달하고 양국 간 우호관계 증진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이런 전례에 견주어 볼 때, 저쪽 지도부는 (이유가 뭐가 됐든) 당시 중국 수뇌부를 봤는데, 우리 평양 지도자가 간다는 걸 거절하는 것이냐고 안달할 수 있지요. 좀 심하게 이야기하면, 과거 중국이 "너희는 우리 황제한테 조공바치지 마"라고 하면 "너희는 나라도 아니다. 우린 너희 같은 미개한 것들과 접촉하기 싫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역사적 이야기와도 흡사합니다.
아, 박 대통령과 중국 고위층이 관련된 재미있는 후일담은 하나 더 있는데, 구상찬 주 중국 상하이 총영사 내정자(전 국회의원)가 박 대통령과 중국의 왕 대외연락부장이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적이 있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자리도 비공식적인 자리도 아닌, 속깊은 이야기를 잠시나마 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인 셈이지요. 이때 박 대통령이 '나름 중국통'인 구 전 의원과 왕 부장의 대화를 매끄럽게 통역해 주는 어학 실력을 과시했다고 합니다. 북한과 이번에 급격히 껄끄러워지고 또 그런 상황에 주변국과의 외교를 통한 남북의 물밑 경쟁이 붙기 전에 이미 이번 정권 관계자들은 이런 상황 혹은 인프라를 구축한 셈이지요. '젊은 김정은'으로서는 갖지 못한 경험을 서울에서는 쌓고 있고, 그런 와중에 이번엔 "베이징까지 이런 시기에 굳이 올 필요 없다"라는 평가까지 들었으니, 이번 방중 거절설이 100% 사실이라면 평양으로서는 좋지 않지요(3대 세습을 하는 정통성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평양으로서는, 중국이 아무 것도 간섭하지 않음으로 나오는 이런 상황이 극도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왜 우리 지도자는 안 만나주느냐, 라는 짧은 요약이 가능한 문제지만 그 짧은 표현에 담긴 깊은 사정들은 대체로 이상과 같습니다.
중국의 최대 외환 거래 은행인 중국은행이 7일 북한 조선무역은행의 중국은행 내 계좌를 폐쇄하고 금융거래를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하는 등 금융 압박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베이징의 (마음에 안 드는 상대하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외교에 그 강단있던 평양이 무너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