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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CJ대한통운 택배기사 파업의 이면

이보배 기자 기자  2013.05.09 10: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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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CJ대한통운이 합병 한 달 만에 일부 '택배기사 파업'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표면적으로는 택배기사에게 돌아가는 배송수수료 인하와 페널티 제도가 그 이유다.

지난 4월1일 CJ GLS는 대한통운을 인수·합병하고 "양사의 거점 통합운영으로 택배기사의 근무환경을 개선해 연말까지 택배기사들의 수익성을 현재 대비 40% 이상 올릴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합병 한 달 만에 들려온 소식은 안타깝게도 택배기사들의 파업이다. 파업을 선언한 택배기사들은 합병 이전 건당 880~930원의 배송수수료를 받던 것과 달리 합병 후 모든 지역에 대한 배송수수료가 800원으로 일괄 인하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배송 중 사고 발생 시 최대 10만원까지 보상해야 하는 페널티 제도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CJ대한통운도 할 말은 있다.

CJ대한통운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CJ대한통운에서 지급하고 있는 평균 배송수수료는 업계 최고 수준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 합병으로 전국 4600여개의 행정구역별 면적당 평균 배송수량을 기준으로 등급을 책정해 표준 배송수수료 단가를 배송량에 적용해 지급하는 방식의 새로운 수수료 체계를 도입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지역은 기존과 비슷한 수수료 단가가 적용됐고, 일부 지역은 과거에 비해 올라가거나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했다. 수수료 800원 일괄 인하 주장은 사실 무근이다"고 말했다.

페널티 제도 도입에 대해서도 말을 보탰다. 페널티 제도는 모든 택배회사가 도입, 운영하는 제도로 고객의 물품을 안전하고 정확하게 배송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이 관계자는 "금적적인 패널티를 일방적으로 적용할 수도 없고, 실제 통합 이후 택배기사에게 패널티를 부과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하고 파업 택배기사는 당초 300명 규모에서 800여명으로 늘어났다. 사실 택배업의 어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낮은 단가와 열악한 환경 등으로 택배기사의 수익이 낮고 일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파업을 두고 "평소 불만을 품고 있던 택배기사들이 합병을 기회삼아(?) 이를 표출한 것"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이번 CJ대한통운 택배기사 파업을 바라보면서 조흥은행과 신한은행의 합병 당시를 떠올렸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지난 2003년 조흥은행은 100년의 역사를 접고 신한은행에 합병됐다.

그 과정에서 합병을 반대하는 조흥은행 측의 밤샘 파업이 이어졌고, 파업의 이면에는 민족 자본으로 설립된 최초의 은행이라는 조흥은행의 자존심도 크게 작용했다. 일자리만 보전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흥은행만의 자부심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표출된 파업이었다.

통합 한 달 만에 파업 사태에 빠진 CJ대한통운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합병 전 대한통운은 명실상부한 국내 물류업계 1위 기업이었다. 물론 이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CJ그룹에 인수될 당시 대한통운 내부에서는 "80년 동안 물류사업을 이어온 정통 있고 뿌리 깊은 회사인데 우리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 회사에 인수됐다"는 하소연이 들리기도 했다. 업계 1위라는 자부심이 대기업의 돈에 무너졌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었다.

합병 후에는 대한통운 특유의 소통과 상생 문화가 사라졌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앞서 다른 곳에 인수됐다가 다시 CJ에 합병된 대한통운 역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합병 후 한 달, 조직의 통합을 위해서는 정책 변화와 함께 새로운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물론 이에 따른 시행착오가 있을 수도 있다. 작금의 택배기사 파업 사태의 책임을 CJ대한통운 측에 돌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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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조직의 화학적인 통합을 이루기 위한 채찍성 정책 변화 보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피합병 조직을 마음으로 보듬어주는 세심함이 아닌가 싶다.

내 식구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TOP5'라는 목표와 세계시장 도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