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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출판문화산업①] 책 안 읽는 국가가 '창조경제'?

빈곤한 지식기반, 창의성 높은 이스라엘 추격불가 우려↑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5.07 15: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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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글을 읽는 사람이 리더다(A Reader is a leader!)!" 오영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통칭 KOTRA) 사장은 작년 가을 어느 대학에서 열린 '미래를 준비하는 대학생을 위한 특강'에서 이 같이 말했다. 세계 각지에서 우리 제품의 판로를 뚫어야 하는 KOTRA의 수장답게 그는 글로벌 인재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런 인재가 되기 위해 시대인식과 언어구사력 등 생각의 범위를 전세계에 맞춰 넓힐 것을 주문했다. 그런데 오 사장은 이 같은 생각의 변화를 위한 구체적 조건 중 하나로 커뮤니케이션능력을 강조했다. 오 사장은 단어가 세상을 만든다(Words create worlds)거나 글을 읽는 사람이 리더다(A Reader is a leader)라는 경구들을 소개하며 독서와 작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나라의 미래를 보고 싶으면 도서관을 가 보라"는 말이 있다.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 나라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뜻이다. 사진은 여의도 모 서점의 서가에서 책을 고르는 여인. ⓒ 프라임경제

책 읽는 이가 선비요, 지식인이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교양과 세속에 물들지 않은 문화적 속성에서만 독서를 숭상하던 때는 이제 아니다. 세계를 상대로 돈을 벌어들여야 하는 자원빈국 대한민국의 위치에서 오 사장처럼 책 읽는 능력과 책에서 영감을 얻어내는 감각이 곧 돈이라는 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한 자는 없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지만, "책 속에 경제의 길이 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창조경제'를 모토로 하는 신정부가 들어선 2013년의 우리는 책, 그리고 출판문화산업을 책을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책 때문에 시끄러워: 큰 파이 분배 둘러싼 전쟁 아닌 비참한 생존전쟁

6일, 한국출판비상대책위원회는 특보 '비상'(非常)' 제1호를 냈다. 그야말로 비상사태(非常事態)에 걸맞는 제호를 붙인 것. 이런 상황인식이 낯간지럽지 않을 정도로 출판 및 유통 등 제반 종사자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크다. 

비대위는 "덤핑사태에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완전한 도서정가제의 시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비대위는 특보를 통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독서 꼴찌 한국이다"라고 우리의 현실을 꼬집었다. 이어서 "국가지식기반이 붕괴되니 온갖 범죄가 만연한다. 온라인·대형서점, 출판사, 신문사 정가파괴 덤핑판매로 6000개서점이 1500개로 줄었다"고 우려했다.

이런 상황은 도서정가제 추진에 어깃장을 놓고 나선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일부 출판사들이 강경 대응을 하고 나서는 국지전 상황(지난 1월 하순 사정)과 궤를 같이 한다. 돌베개·마음산책 등 주요 출판사 몇 곳이 최근 알라딘에 책을 출고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알라딘이 도서정가제에 반대한 직후부터 자사 트위터 등에 알라딘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출판사도 있었으므로 온라인서점 대 출판사간 전면전까지는 아니었어도 언제고 큰 사단이 날 수 있는 상황임을 방증한 셈이다.

하지만 도서정가제와 관련 급한 부분이라도 손을 보자는 취지로 발의된 관련법안은 아직 국회에서(7일 기준) 잠을 자고 있다.

문제는 비단 온라인서점이나 할인판매에만 있지 않다. 책 자체를 안 읽는 사회가 되다 보니, 작은 시장을 놓고 생존을 다투는 상황이 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불법 복제물 등 저작권 문제에 대한 비판론도 부각되고 있지만, 결국은 책 자체가 워낙 안 팔리는 와중에 작은 파이마저 잠식한다는 점에 심각성이 더 높아지는 게 현실이다.

지난 2012년을 '독서의 해'로 치른 한국의 현실이다.

책 안 읽는 대한민국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10년 출판통계를 보면 신간도서 발행 종수는 총 4만291종(이하, 모두 만화 포함), 발행 부수는 1억630만9626부다. 2011년 같은 통계에서는 발행 종수 총 4만4036종이고 발행 부수는 1억955만227부로 나타났다. 2012년치 통계는 총 3만9767종 발행에 발행 부수는 8690만6643부라고 한다.

숫자 나열만으로 와닿지 않을 독자들을 위해 전년 대비 흐름으로 각년도 자료들의 위상을 살핀다. 

2010년 협회에서는 2011년의 경우 전년 대비 발행 종수가 4.5% 감소, 발행 부수는 0.1%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2011년 기준으로는 전년 대비 종수에서 9.3% 증가, 부수에서 3% 늘었다가 2012년에는 전년대비  9.7% 감소, 종수도20.7% 감소로 치달았다.

점점 새로운 책이 안 나오고, 발행총부수도 제자리걸음 내지 퇴보 우려에 시달린다. 예외적으로 발행량이 좀 느는 경우라도 전집류 등 아동시장에 기대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전자책(e북)을 열심히 읽는 것도 아니다. 국내 전자책 시장은 2011년 1400억원에서 작년 1512억원 규모로 약 8% 성장했다. 종이책 시장 규모가 2009년 1조4295억원 규모였다가 2년 만에 10% 가까이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크게 새 영역이 비상하고 있는 것으로 안심하기도 이르다. 심지어, 인터파크는 야심차게 자사 전자책 서비스를 위해 전용 단말기 사업을 했지만(일명 '비스킷') 사업을 접었다. 태블릿 등 디바이스 중심으로 발전하는 상황에 굳이 독서 전용 단말기로 전자책을 볼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나오지만, 결국 책을 위해 투자하는 시장 자체가 다른 쪽에 매몰되고 협소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책 안 읽는 빈곤한 상상력의 나라 우려

이런 상황은 문화의 윤택함이라는 고결한 문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득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원양어업계의 선구자 김재철 동원산업 회장은 2004년 당시 무역협회 회장 자격으로 중·고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 초빙돼 현재 교육과 창의성 함양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스라엘(유대인)의 지능지수(IQ)가 45위 수준이지만 전세계를 지배한다. 반면 한국인 지능지수는 세계 1위지만 어릴 때부터 창의 력을 배양하는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원천기술이 척박한 상황하다"는 게 김 회장의 당시 강연 내용이다. 김 회장은 청소년들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산업의 쌀'인 반도체 수출 1위국이지만 가공기술일 뿐 창의적으로 개발한 제품은 아니라는 등 불편하지만 실질적인 예도 곁들였다.

실제로, 그가 그런 강의를 교사들에게 한지 10년이 못 돼 우리나라 주요기업들은 세계 상위권 기업으로 성장한 역풍을 맞고 있다. 더 이상 '미등전략(선진국 우수기업을 따라하는 전략)'을 취할 모델, 심하게 표현하면 카피할 케이스가 없어져 길을 잃은 셈이다.

물론 책이 꼭 창의성의 유일한 '배양 접시'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읽고 생각하는 능력을 집약, 전달하고 담보하는 가장 일반화된 도구가 책이라고 할 때, 이런 책이나 독서 관련 상황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활자에 잉크를 묻혀 종이에 찍어낸 인쇄물이라는 형식에 굳이 집착하지 않더라도 콘텐츠를 접하고 다시 네트워킹하고 재해석하는 게 중심이 될 시대에 책이 가진 역할론은 창조경제의 구현에서, 마치 산업 발전에 금융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윤활유 역할을 하듯, 일정한 중요성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점에서 책(넓게는 디지털 콘텐츠)과 좀 더 친해질 한국이 창조경제에 약간 더 접근할 확률이 있다. 1일 열렸던 'beLAUNCH2013'에서 송영숙 교보문고 독서경영연구원 소장은 "전자책이니 기존의 책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멀티미디어 속에서 책을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런 인식에서 '책, 그리고 읽고 사색하는 길을 넓힐 방안'을 간단하게라도 정리해 보고 넘어갈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