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사회적기업 탐방 26] 1년새 성장률 500%의 비결… 식자재유통기업 '청밀'

취약계층·일반인 한 데 어우러져 월 400톤 32종 농산물 전처리

전지현 기자 기자  2013.05.07 14:58:25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그동안의 배움을 정리하고 사회 진출을 기념키 위해 축하하는 자리 졸업식. 많은 학부모가 사랑으로 키운 대견스런 자녀의 졸업식이 매년 눈물바다를 이루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발달장애 특수학교인 밀알학교. 하지만 이 눈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감격으로 빗어진 것이 아니다. 전문교육을 받았지만 졸업 후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차디찬 현실에 대한 막막함과 비통함 때문이다.

   청밀의  
청밀의 농산물 전처리센터(C&D)에서 취약계층과 일반인이 한데 어우러져 근무하는 모습. ⓒ 청밀 
축사를 위해 단상에 오른 홍정길 당시 남서울은혜교회 목사(현 신동아학원 이사장)는 함께 눈물 흘리는 것 외엔 뭔가 더 해줄 게 마땅찮다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홍 목사는 지속적이며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사업단을 구상, 이후 2008년 11월 사회적기업 '청밀'을 세상에 내보냈다.

◆근로자 10명중 4명, 장애인‧노인 

청밀(대표이사 양창국)의 총 고용인원 44명. 그중 고령자만 12명, 장애인은 7명(지적, 시각, 청각 장애인 각 1명, 지체 장애인 2명), 고령 및 장애인 채용 비율은 39%에 이른다. 이 곳은 통합과 나눔을 비전으로 홀로서기에 취약한 계층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탄생했다. 
 
   청밀 농산물 전처리 센터. ⓒ 청밀  
청밀 농산물 전처리센터에서 근무하는 양혜정 씨. 현재 만성허리질환과 갑상선기능저하 질환을 앓고 있지만 시어머니와 안면기형 장애가 있는 자녀까지 네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 청밀
푸를 '청(靑)'과 밀알의 '밀' 두 글자를 합해 '푸르른 밀처럼 깨끗하고 좋은 먹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건강과 희망을 함께 전달하는 마음을 상호에 담았다.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에서 따온 밀은 사회소외계층의 자립을 위해 낮은 자리에서 일하고 발전하겠다는 포부를 나타낸다.

청밀은 지난 1993년 장애인 사회통합을 목표로 설립된 NGO 밀알복지재단의 산하기업중 하나다. 일회적인 물질적 자선에서 벗어나 안정된 삶과 자립하도록 돕기 위해 식자재를 유통, 판매함으로써 장애인과 노인의 사회 진출을 돕고 있다.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이 기업의 목표인 셈이다.

즉, 물건을 팔기 위함이 아닌 장애인과 노인의 고용 창출을 위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이러한 '착한 기업' 청밀은 지난 2011년 식자재유통업계 최초로 사회적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같은 제품이지만 그 값어치와 쓰임새는 똑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받은 것이다. 사회적기업 청밀은 수익금의 70%를 사회에 환원하는 나눔에 앞장서고 있다.

◆다각화된 사업구조로 취약계층 지속 가능 취업 보장

얼핏 보면 청밀은 식자재 유통 및 농산물 전처리, 쇼핑몰 등 지나치게 사업이 다각화됐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 취약계층과 일반인과 함께 어우러진다는 눈에 띄는 차이점으로 비롯된 것이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C&D센터에서는 장애인, 노인 한부모가정 등 사회적 취약계층 11명과 일반인과 함께 어우러져 월 400톤에 달하는 농산물을 전처리 하고 있다. 취급 농산물만도 32종에 달한다. 전처리란 농산물을 선별 해 소비자가 조리하기 편하도록 다듬고 규격화된 포장으로 공급하는 과정. 청밀이 운영 중인 농산물전처리 센터에서는 신선한 농산물을 직접 생산해 대기업에 납품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청밀 바자회. ⓒ 청밀  
청밀의 4대 주요 사업 중 하나인 바자회. 매월 3~4회에 걸쳐 진행한다. 60세 이상의 노인을 판매사원으로 파견, 인건비를 지급한다. ⓒ 청밀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 때마다 적립금의 1%가 쌓여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하는 후원 쇼핑몰 밀알스토리 역시 나눔을 위해 존재한다. 신설 사회적기업이나 중증 장애인이 납품 기업 등 판로가 막힌 중소기업 위주로 판매에 나서 더불어 성장하는 사회를 만듦이 주목표다.

의류 및 생활용품 등을 준비해 매월 3~4회에 걸쳐 진행하는 바자회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판매사원으로 60세 이상 노인을 파견해 인건비를 지급하고, 매출 수익금의 10%를 지역협력 기관(사회복지관, 구청 등)에 후원한다. 고령자들이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판매를 통해 수익과 함께 사회공헌이 이뤄지는 구조인 셈이다.

최근 풀무원 '더스킨'과의 협약으로 탄생한 청소 렌탈사업 '하티(Hearty)'는 출산 및 육아 등으로 재취업이 어려운 경력단절 여성을 고용하고 있다. 친환경 청소용품을 일반가정과 사무실, 어린이집 등에 보급‧회수해 건강한 생활공간을 만들고 있는 하티는 현재 송파‧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약 600명의 고객과 90곳의 기업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철 식자재영업팀 팀장은 "회사 규모에 비해 영위하는 사업 군이 많아 전문성이 결여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한 분야에만 치중할 경우 환경 및 내부적 요인으로 회사 존속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며 "취약계층의 지속 가능한 취업 보장이 청밀이 존재하는 이유인 만큼 다각화를 통해 다양한 성장 가능성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사회 인식, 여전히 태부족"

설립 5년 만에 전년대비 올해 성장률이 500%에나 이르는 식자재 유통전문 사회적기업 청밀. 이를 가능토록 진두지휘한 수장은 양창국 대표다. 그의 '무대뽀 노력'은 설립 당시 3명이던 인원을 현재 장애인과 노인, 여성 가장 포함 44명이 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힘든 점도 많다. 가장 어려운 점을 물으니 사회적기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부족이란다.

   = 전지현 기자  
현재 청밀은 총 44명 근로자 중 39%에 해당하는 17명이 취약계층으로 구성됐다. = 전지현 기자
양 대표는 "청밀 사업은 대기업과 협력하는 부분이 많은데, 두 기업이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 속에 기업은 이익극대화를 중점적으로 생각한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그러나 지속적인 대화와 노력으로 나아지고 있고 사회 전반적으로도 대‧중소기업이 동반 성장한다는 분위기로 어려움이 해소되는 중"이라고 말했다.

최철 팀장 역시 "복지관 및 정부기관에서 청밀이 사회적기업의 모토가 아닌 대기업과 연계된 중간 브로커적 이미지가 많다는 점이 아쉽다"며 "그래도 지금까지 약 20%의 성공률을 보였으니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단 사회복지를 하시는 분들이 청밀이 수익으로 생활하는 구조라는 오해를 안했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근무시간 힘들어도 일자리 창출 기쁨에…

출근 시간은 9시 퇴근은 6시. 하지만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11명의 내근자들의 경우 지켜지는 날이 거의 없다. 일반적인 출근은 7시30분이고 퇴근은 10시~11시라 한다. 20~30대 젊은 층으로 보인다. 취미 및 연애 등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 나이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최 팀장은 "사실상 납품처가 늘어날수록 담당자는 업무량이 많아지므로 힘이 든다. 그렇지만 매출이 증대할수록 취약 계층의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이 늘어난다는 신념이 있어 오늘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황당한 답이 돌아왔다. 내근자 11명 중 사회복지사만 4명이라 하니 더 이상 물을 말이 없었다.

   청밀 농산물 전처리센터. ⓒ 청밀  
청밀 농산물 전처리센터에서 근로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일하는 모습. 이곳에서 사회적 취약계층 11명과 일반인이 함께 월 400톤에 달하는 농산물을 전처리한다. ⓒ 청밀
청밀의 올해 바람은 '연매출 100억'이다. 고용의 증대와 더불어 정권이 바뀌며 정부의 관심과 참여가 소원해지는 현실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모범기업 사례로 본보기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최철 청밀 식자재 영업팀 팀장은 "지난 3~5년의 좋은 취지가 사라지는 분위기다. 정부에서 계획안을 갖고 시행을 내려도 정작 관계 구청 심사자의 현장 일들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할 때가 많다"며 "장애인 고용 문제를 해결키 위해 지원을 요청해도 관련 기관 담당자가 1명에서 많아야 2명뿐이다. 사회적 기업에 대해서만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어려운 구조"라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해 한 구청의 사회적기업을 통해 구매된 집행 금액은 단 176만원. 이는 정부가 내린 전체 예산액의 0.024%밖에 못 미치는 적은 수치였다. 정부가 예산액을 책정하면 구청 기관에서 나서 사회적기업에 정보를 제공하는 정도의 역할만 수행해도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최 팀장은 "금액적인 도움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복지시설의 95% 납품을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다"며 "복지시설 관계자 미팅 등 기회의 판로만 제공해도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각 사회적기업에 대한 홍보, 마케팅, 납품업체 발굴 등은 우리가 직접 발로 뛸 수 있고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