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안천의 역사 돋보기] 숭례문 부활의 기본정신, 숭례입국(崇禮立國)

안천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기자  2013.05.06 11:25:19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숭례문이 허망하게 화재를 당하고 5년3개월에 걸친 노력 끝에, 지난 5월 4일에 부활 기념식을 가졌다. 너무나 아름답고 빼어난 자태에 온 국민이 뿌듯한 마음으로 열광했다.

우리는 이 기회에 조선이 숭례문을 세운 근본적 정신을 되새겨 봐야한다. 숭례문은 단순한 도성 건축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숭례문은 경복궁과 직결되는 위치에서의 나라의 혼을 말하고 정신을 선언한 것이다. 그렇기에 국보 제1호이지, 단순히 그 건축물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최고의 건축미를 보이는 건물로서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국가혼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간 일제 침략강점을 거치며 그 본질이 사라졌다.

우선 경복궁은 나라의 최고 정점에 위치한 제1법궁 이다. 경복궁은 그토록 드높은 지위에 모셔진 궁궐이기에 처절한 공격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에 완전히 폐허가 되게 불에 타서 소실되었고, 그 후 총체적 국력을 쏟아 재건했지만 다시 경술국치 왜란 때에 참담하게 파괴되며 총독부 청사에 강점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왜구 만행의 극심한 피해를 두 차례나 입은 핵심궁궐이다.

경복궁이 만신창이 상태가 되도록 수난을 겪게 되면서 우리는 까맣게 잊은 것이 있다. 그것은 국가운영의 지표와도 같은 것으로서, 예(禮)를 망각하게 된 것이다.

경복궁의 근정전에 들어서는 정문은 흥례문(興禮門)이다. 그것은 법도(法度)를 세우며 예를 일으켜서 근정(勤政)의 기본적 토대를 삼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흥례는 조선시대의 국정지표에 해당하는 드높은 이념이다.

더구나 서울의 도성에 들어서는 정문을 숭례문(崇禮門)으로 정했을 만큼 예는 조선시대의 최고 국정이념이었다. 조선을 세운 이들은 왜 예를 그토록 존중했을까?

그것은 고려 말의 땅에 떨어진 국가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참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인다. 그래서 숭례문에 들어서면서 옷깃을 여미며 예를 갖추게 만든 것이었다.

100여년에 걸친 몽골족 침략으로 극도로 피폐해진 때에 황건적이 휩쓸고 갔다. 더구나 왜구침탈이 연이으면서 거의 망국지경에 이르렀던 나라를 재건함에 있어서, 흥례의지(興禮意志)는 조선을 세운 개국공신 애국지사들의 뼈저린 결의, 결단, 결심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예의지국(禮儀之國)을 만들며 예를 재건하는 것은, 극심한 전란 이후의 극도로 피폐해진 나라를 나라답게 만든다는 제1목표가 확실했다고 보인다.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찬란한 세종시대가 도래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들은 조선 개국 지도자들과 같은 위대한 결단이 너무나 결여돼 있다. 우국지사는 드물고 사리사욕에 빠진 자가 너무 많다. 일제침략 이후 고려 말보다 더 국가기강이 무너진 상태에서 너무나 많은 것이 형이하학적이고 생각이 낮다.

그러니까 요즈음 전국의 학교에는 학교폭력이 만연하고, 나라 전체가 불안하며 안정적 방향감이 없다. 흡사 나침반이 없이 바다를 떠다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도처에 만연하는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목도하면서도 그 근본적 원인을 생각하는 견해는 거의 없다. 그 까닭은 나라 전체를 사실상 일제침략 시대 이후의 흐름으로 잇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일본이 망쳐놓은 그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나름대로 열심히 살며 노력을 하여 세계 10위권까지는 진입했으나, 계속하여 나아가지 못하며 헤매는 모습의 일단이 바로 교실붕괴, 학교붕괴로 나타난 것이다.

도처에 만연하는 학교폭력의 가장 가까운 원인은 선생님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학교에서 스승은 사라지고 교육 기술자나 교육 근로자가 봉급이나 타가고 있게 된 나라에서 학교폭력이 만연함은 당연한 것이다.

예전 우리들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면서 임금님, 스승, 부모님을 하늘같이 모셨었다. 그것은 흥례, 숭례의 실체적 표현에 해당하는 핵심 본체이다.

임금님과 스승과 부모님을 하늘과 같이 받들던 나라에서 임금님은 덧없이 사라졌다. 일제침략 선전에 세뇌되어 임금님을 우습게 알게 되었던 흐름에서 스승도 잃고 말았다.

특히 가까운 때인 이해찬 장관 때의 교육파동 후유증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스승이 참담하게 짓밟히며 사실상 학교가 황폐화, 공동화되고 말았다.

온 나라의 젊은이들 마음이 공황상태에서 지향점이 상실됐고, 폭력교실이 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선생님을 우습게 아는 귀결점이 학교붕괴이며, 사실상 선생님이 없는 학교같이 학교가 무너지니 나라가 불안한 것이다.

선생님의 교권을 철저히 확립시켜야 한다. 예전 조선시대처럼 선생님과 부모님을 임금님 수준으로 하늘 같이 모시는 나라가 되면 숭례입국의 세종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할 것은 확실하다.

온 나라의 젊은이들이 존경하며 믿고 따를 마음의 목표가 상실되고만 후유증은 치유해야 한다. 그 후유증의 진실을 모르니까 청계천 하수도를 잘 고쳤다는 사람이 매우 크게 돋보이며 대통령으로 까지 선출됐다.

하지만 임기 내내 4대강 물길 논쟁으로 세월을 보내는 한심한 나라가 됐다. 너무 낮은 목표를 국가최고 지표로 오해한 후유증인 것이다.

흥례(興禮)는 없고 비례(非禮), 결례(缺禮), 실례(失禮)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근정(勤政)은 어렵다. 낮은 차원의 저급한 국정목표로 최고의 선진국 진입은 불가능하다.

아니 사실상 국정목표가 없이 여기저기서 청계천 하수도 고치기와 흡사한 일만 흉내 내면서, 용인시청, 성남시청 같이 호화청사를 짓거나 전시행정 쇼만 남발하며 빚더미에 올라앉는 나라에서 어찌 미래가 있겠는가?

예컨대 요즘 곳곳에서 국정목표와 같이 회자되는 일자리 창출도 물론 대단히 중요하지만, 어찌 그것이 최고의 국정목표인가? 중소기업조차도 그런 낮은 차원의 목표로는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

잃었던 숭례정신을 다시 찾고, 선생님을 스승답게 철저히 모셔야 선진강국이 된다. 임금님을 잃은 나라에서 스승까지 짓밟고 어찌 내일의 희망이 있을 것인가?

어른도 선배도 모두 짓밟는 사회가 곧 오지 않겠는가? 온 나라에 법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온 나라를 아직도 지배하는 추친일 틀로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

  안천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안천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조선 개국공신 충신들과 같은 드높은 국정지표를 세워야만 제2의 세종시대가 온다. 법도 있는 나라가 되면 온 나라가 제대로 발전하고 일자리는 넘쳐나게 돼 있다.

세종시를 건설했다고 세종 르네상스가 다시 오는 것은 아니다.
 
숭례문을 다시 지어 부활시키는 순간에 숭례입국의 결의를 다시 찾아야 하겠다. 우리 민족 최고의 숭례입국 철학을 확실히 재정립해야만 한다. 

흥례의 결단을 내리고 숭례의 나라를 다시 세워야만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