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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노동 프레임' 극복 못한 현대차 근로자 마인드

지역경제 배려 호소에 노동자권익 대의명분 양보, 극단적 이기주의만 남아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5.04 14: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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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현대자동차 노사가 지난달 26일 주말 특근 재개에 합의했지만, 합의 결과를 둘러싸고 노-노(勞-勞) 갈등이 불거지면서 5월 첫 주말에도 특근이 무산돼 노동계는 물론 일반 국민들의 관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윤갑한 현대차 울산공장장(사장)과 문용문 노조위원장(지부장) 등 노사 대표가 주말에도 평일과 같은 주간 연속 2교대 방식으로 근무하고, 특근 수당은 오전·오후조 2명을 합쳐 45만원을 지급하는 데 합의해 글로벌 위기, 특히 일본의 인근궁핍화 정책(엔저 공세)에 대응할 방안을 모색한 것이 뒤집힌 것이다. 

이들은 4일부터 특근을 재개하기로 합의안을 도출했지만, 공장별 노조 대표들이 노조 집행부의 합의에 반기를 들면서 일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반대파는 주간 연속 2교대제가 도입되기 전까지 주말 특근 때는 평소보다 작업 속도를 낮추고 인원을 충원했는데, 이것이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취지로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노조 난립 보다 더 무서운 계파간 '선명성 경쟁'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표면적인 것이고, 이른바 노동계 내부 계파 갈등이 불거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합의안 도출 때 9개 공장 지부장들이 없는 자리에서 노조위원장이 직권 서명한 것은 무효라는 소리가 나온 대목은 억지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현대차 노동자들은 크게 9개 계파로 나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갈등 표출(노-노 갈등)도 오는 9월 노조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이들 세력이 각자 입지를 굳히려는 의도에서 무리수를 두었다는, 즉 선명성 경쟁이 사단을 낸 것으로 보는 해석론도 부각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이 그야말로 각자 소수 노조를 만들고, 이들 노조가 백가쟁명식으로 요구조건을 내세우면서 갈등을 표출하는 상황보다 더 어려운 국면을 현대차 사측에 강요하는 것이 돼 극히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는 일본에서 불고 있는 엔저 바람으로 고난의 길에 들어선 국내 카메이커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상황을 감수토록 하는 불합리한 요구일 뿐만 아니라, 복수노조의 길을 열어주되 교섭 등에서 문제점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깔아놓은 현행 노동관계법령 입법체제에도 도전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 우려를 높이고 있다.

즉 현행 노동관계제도의 틀을 일별하면, 사업장에 2개 이상의 노조가 있을 수 있도록 과거의 제도를 고치고, 다만 이들 중에서 교섭대표가 된 노조에게만 단체교섭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를 놓고 비판도 제기됐지만, 헌법재판소는 한국노총 등 130여개 노동조합이 낸 '2011헌마338 사건'에서 이런 규정들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다.

당시 결정문에서 "(노조법이) 교섭대표노조만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해 교섭대표 노조가 되지 못한 소수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하고 있지만, 소수 노조도 교섭대표노조를 정하는 절차에 참여함으로써 교섭대표노조가 사용자와 대등한 입장에 설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교섭창구단일화는 노사대등의 원리 위에서 적정한 근로조건의 구현이라는 단체교섭권의 실질적인 보장을 위해 요구되는 불가피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결정문의 핵심인 다음 부분은 향후 노동계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어서 "교섭창구단일화제도를 원칙으로 하되 사용자의 동의가 있으면 교섭창구단일화가 아닌 자율교섭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으며 "노조 사이에 현격한 근로조건 등의 차이로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들은 교섭창구단일화를 일률적으로 강제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런데 현재 현대차의 노동자 내부에서 벌어지는, 심하게 표현하자면 노-노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의 뼈대를 추려보면, 노조위원장 즉 노조의 대표자가 고심 끝에 택한 합의안도 일선에서 일부 세력이 반대하거나, 여러 세력에서 연대해 사과와 번복을 요구하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는 극단적으로 요약하면, "현재의 복수노조 시스템는 문제가 있으니 창구단일화를 하지 말고 각자 노조별로 협의를 하라"는 노동계 일각의 바람보다도 더 극단적인, "노동자가 원하는대로 예측가능성이 전혀 없는 협상에 매번 사측이 임하라"는 협상우위능력을 얻어내자는 기류가 현대차의 노동자들 중에 일고 있다는 뜻도 된다.
   현대차 특근 거부 상황에 세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번 상황은 노사간 갈등에서 노동자간 내분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 일반에도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비판 여론이 비등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투명경영전략'을 모토로 일반 고객들이 작업 장면을 모두 볼 수 있게 꾸며진 현대차 시화서비스센터. = 김병호 기자  
현대차 특근 거부 상황에 세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번 상황은 노사간 갈등에서 노동자간 내분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 일반에도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비판 여론이 비등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투명경영전략'을 모토로 일반 고객들이 작업 장면을 모두 볼 수 있게 꾸며진 현대차 시화서비스센터. = 김병호 기자

헌법재판소의 결정 내용 중에서도 보았듯, 회사가 원한다면 창구단일화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니 이렇게 백기 투항을 하라는 고차원의 압박을 제시하는 셈인데, 이는 현재의 노동법 일반을 완전히 독파해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나 타임오프 등 각 요점들에서 모두 근로자 우위를 잡겠다는 모종의 움직임 끝에 고급전략이 도출된 것으로도 볼 여지가 없지 않다. 이는 노동계나 법학계는 물론 공안관리상으로도 상당한 관심거리가 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극단의 이기주의 표출 '총아'

이런 국면은 아울러 리먼사태로 불리는 세계경제 대위기 국면에서도 현대차 노동자 내부에서 보여준 극도의 경색된 상황 대응과 이기적 논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냐는 점에서도 상당한 우려를 낳고 있다. 당시만 해도 너도나도 힘든 세계적 위기였기 때문에 글로벌시장에서 이런 발목잡기에도 불구하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일본의 인근궁핍화 공세에 우리 등 동아시아권이 특히 위기에 몰리는 상황이라 미국와 유럽 등 시장에서 우리가 받을 타격이 더 클 수 있다.

2009년 당시 현대차에서는 혼류 생산 즉 한 생산라인이 맡았던 차종이 아닌 제품을 서로 나눠서 맡는 위기대응전략을 구사하기로 마음먹고 노조 등과 협력 방안을 강구하는데, 언론에서는 이 같은 비상 상황 해결책에 주목, 이를 '물량 나누기'라고 이름붙이는 등 큰 관심과 기대를 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현대차가 울산3공장에서 생산되던 HD(아반떼) 물량을 울산2공장에서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 같은 물량 나누기를 실제로 진행하려 하자 내부에서 강한 반발이 일었다.

당시 현대차노조에서는 상황이 부득이하니 이해를 구하는 대자보를 붙이는 등 노동자 내부의 공감대 형성을 유도했지만(3월19일), 3공장 대의원회는 '결정의 비민주성' 등을 비판하며 "물량을 줄 수 없다"고 버텼다. 또 이에 대해 2009년 3월25일 열린 현대차지부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어느 대의원은 "지부(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즉 흔히 말하는 현대차노조를 말함) 뜻을 따르자. 그게 싫으면 그간 2공장에서 가져간 차종 다 가져와라"고까지 해 극심한 내부 갈등, 즉 노-노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GM이 경영난에 봉착해 처참히 무너지는 등 당시 글로벌 카메이커들이 생존 기로에서 떨던 사정임을 감안하면 지나친 이기주의 표출이고 강성노조,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받아오면서도 정통성을 인정받던 현대차 노조의 속사정이 그대로 드러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현대차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갖고 있는 '노동자 단결성'이 이기주의를 표출하는 일부에 의해 휘둘리거나 또다른 반발과 갈등으로 연결되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위기감 역시 확인시킨 계기였다. 이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는 셈이다.

노동갈등 극심하던 1989년 뛰어 넘은 '희대의 사건'

이러한 갈등 국면과 회사측 발목잡기는 과거 군사독재시대가 종결되고 노조의 정당한 쟁의가 강하게 부각되던, 이른바 '1989년 정국'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태우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동권의 목소리 내기가 한창 부각되던 상황은 1989년부터 시작, 결국 1990년 현대중공업 갈등 폭발로 이어진다(공안검찰에서는 현대중공업 사태로 부르기도 함).

현대중공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에 항의, 현대차를 비롯한 현대계열사들이 동맹파업을 벌이는 등 당시 상황이 극히 혼돈으로 치달았다.

1990년 메이데이(5월1일)를 기해 파업을 했던 이들 일부 계열업체들은 3일 상오 대부분 조업을 재개했으며 가장 큰 걸림돌로 예상됐던 현대차 노조도 5월7일부터 정상조업키로 결의함으로써 장기화의 기로에 있던 현대중공업 사태를 빨리 치유할 수 있게 됐다.

당시 계열업체들의 동맹파업은 같은계열, 같은 지역업체 노조끼리의 의리를 지켰다는 작은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을 과하게 억누르면 계열사 일이라도 모른 척 하지 않고 연대해 나가자는 노동자간 단결성이라는 대의명분이라는 큰 틀에서 관심을 모았다.

그래서, 노조들의 행보에 법적 절차를 무시한 불법파업성 논란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이를 우려가 섞이는 가운데서도 관망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 등 각계열사 노조들은 이런 명분론보다는 노사간의 갈등이 지역주민들에게 줄 피해(현대의 각 계열사들에 크게 의존하는 울산시민들이 가질 감정적 불안), 그리고 회사들이 입을 수 있는 경제적 손실을 감안, 결국 일정한 선에서 물러서는 결단을 택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런 상황과 견주어 보자면, 현재 현대차 노-노 갈등이 빚는 특근 거부라는 희대의 사건은 도가 지나치다는 일부의 쓴소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도 할 수 있다.   
   현대차 러시아 생산법인 의장라인에서 쏠라리스를 생산하는 장면. ⓒ 현대차  
현대차 러시아 생산법인 의장라인에서 쏠라리스를 생산하는 장면. ⓒ 현대차
  

또 현대차가 글로벌전략을 택해 해외 여러 곳에서 생산을 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국내 물량을 유지하는 등 노동계에 대한 경영전략 공유와 배려, 더 크게는 국가경제 기여를 하는 데 최소한의 역할은 하려고 노력 중이다.

세계 각지에서 생산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여러 공장의 생산력과 노동경직성 여부 등을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어느 유력 경제지에 따르면 자동차 한 대당 투입시간이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은 14.6시간인데 국내의 공장은 31.3시간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 특근 거절 등 엔저 위기 국면까지 모른 척 하는 국내 현대차 노동자들의 행보는 해외 공장들에 비해서 지나치다는 비판론에 직면하고 있다.

아울러 현대차가 그간 사회적공헌 등을 통해 이익을 거둔 부분을 다시 국민들에게 환수하려는 점 등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이런 여력을 모두 고갈시킬 수 있고 이는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에 따라 현대차의 이번 노-노 갈등이 조기에 해결돼 일관된 협상채널과 적정한 선에서의 요구조건 제시로 이어져야 할 필요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