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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감은사의 종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5.03 15: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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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990년대 초반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창작동화가 있었다. 계몽사에서 펴낸 '감은사의 종'이라는 이 동화는 왜적이 훔쳐 일본으로 옮기다 바다에 빠뜨렸다는 전설을 모티브로 한다.

이 동화에는 감은사의 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인이 나오는데, 감은사는 지금의 경주시 양북면에 있었던 절로 이제 절터에는 탑과 주춧돌만 남아 있다. 전설일 뿐이라며 주변에서는 그의 노력을 폄하하고 가족들도 그를 외면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도굴꾼쯤으로 취급받는다는 내용도 있었던 것 같다. 계속된 잠수와 수색 작업으로 그는 잠수병(수압 변화를 이기지 못해 몸에 장애가 오는 것)까지 얻는다.

오래 전 동화에 나온 이 이야기를 되새기게 하는 미담이 최근 부각되고 있다. 다이버 김기창씨가 지난해 포항시 양포항 인근 바다로 들어갔다가 둥글고 사람보다 큰 정도의 물체를 본 것.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나중에 황룡사 대종에 관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심상찮은 생각이 들어 당국에 신고를 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종이 대체 무엇인가를 놓고, 감은사의 종일 가능성과 황룡사 종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오가는 등 지금 문화계는 축제 분위기에 빠져든 상태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점이 몇 가지 있다. 흔히 기자들이 별 취재할 일도 없는 날조차 출입처를 이리저리 탐문하며 돌아다니는데(경찰·사건기자인 사쓰마와리처럼) 그러다 우연히 걸리는 첩보가 모여 정보가 되고 이야기가 되듯, 누군가의 작은 실마리가 전달되면 큰 이슈가 될 수도 있다.

마약수사 전문 검사로 일가견이 있었던 유창종 전 대검찰청 마약부장이 1979년 중원고구려비를 발견한 것도 역사를 좋아하는 아마추어들끼리 답사를 나갔다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들른 것에서 유래한 성과다. 아마 그들 아마추어팀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중원고구려비는 의미없이 방치돼 있었을 것이다. 

위의 종만 해도 그렇다. 인근에 전해지는 두 가지 절과 종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1980년대에는 문화재관리국이, 97년에는 해군이 각각 문무왕릉 주변 해저를 탐사했지만 종을 찾는 데 실패했다고 한다. 그것이 이번에 빛을 볼지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다.

두 번째, 작은 실마리라도 찾으려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청취하는 일에 당국이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감은사의 종이라는 책이 나올 무렵만 해도 우리의 문화재 관련 정책과 관심도가 지금보다 현저히 덜했을 시기다.

다이버이자 신고정신 투철한 김씨의 노력이 조명을 받게 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동화 속 종을 찾던 노인처럼 외롭지 않게끔 앞으로도 관련한 당국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마지막으로, 이번 인양 작업 착수 이야기가 설사 종을 인양해 역사책을 새로 쓸 수 있을 정도의 센세이셔널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고 '실패'로 끝나더라도, 잃어버린 유물에 대한 탐색 정신을 고취하는 계기로 잘 살려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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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밀반출된 유물도 많지만, 아직도 한반도 내에 엉뚱한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유물도 상당할 것으로 생각한다. 삼국시대,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조선시대의 유물 중에도 우리가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이 부지기수다.

지금도 감은사의 종 속 노인처럼 유물의 올바른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당국이 물적으로는 몰라도 적절한 응원과 자부심을 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