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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어린이집 ④] "갓 옹알이, 영어수업 한다"며 월15만원씩 챙겨

'유령아동' 어린이집 608개소 1년새 90%↑, '유령보육교사'도 덩달아…

박지영 기자 기자  2013.04.29 11: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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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어느 날 원장이 주민번호와 이름만 주고선 저한테 빨리 애들 등록원서를 쓰래요. 저희 반 소속인데 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아이였어요."

서울의 한 비리 어린이집 전직 보육교사 증언이다. 있지도 않은 '유령원아'를 등록해 월 수십만원 상당의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계획된 꼼수다. 대기아동을 미리 등록해 보조금을 타내는 경우도 있다. 대기아동 부모에게 아이사랑 신용카드를 미리 받아 결제하면 보조금이 나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처럼 만 0~5세 아이들에 대한 보육료지원이 확대되면서 정책 허점을 노려 보조금을 부당하게 타내는 범죄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실제 '유령아동'을 등록시키다 적발된 사례 1년 새 2배 가까이 급증했다.

보건복지부 '어린이집 법규 위반 및 처분 내용' 통계에 따르면 2011년 법규 위반으로 적발된 어린이집은 1230개소로 2010년에 비해 33.1% 증가했다. 그중 아동을 허위등록했다 적발된 어린이집은 608개소로, 2010년 319개소 보다 90.6%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유령아동 허위등록 사례는 △2009년 264건 △2008년 235건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유령아동,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유령원아뿐 아니다. 유령 보육교사도 적발되고 있다. 정부가 교사 인건비를 지원해주자 장부에만 교사이름을 올려놓고 지원금을 챙기는 수법이 등장한 것이다. 또 일부 어린이집 원장은 보육교사 근무시간을 7시로 정해놓고, 지자체에선 8시간 기준 인건비를 받아 차액을 챙기기도 한다.

이 외에도 어린이집이 돈을 버는 방법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반쪽짜리 무상교육도 골칫거리다.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하는 아이를 상대로 "영어수업을 한다"며 월 10만~15만원씩 받아 챙기는 곳이 허다하다. 부모들이 현금으로 지불하는 특별활동비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규제가 쉽지 않다.

   만 0~5세 아이들에 대한 보육료지원이 확대되면서 정책 허점을 노려 보조금을 부당하게 타내는 범죄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한 어린이집의 수업 장면. ⓒ 네이버 카페 캡처  
만 0~5세 아이들에 대한 보육료지원이 확대되면서 정책 허점을 노려 보조금을 부당하게 타내는 범죄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한 어린이집의 수업 장면. ⓒ 네이버 카페 캡처
1년 동안 지불한 특별활동비가 200만원에 달한다는 한 학부모는 "200만원이면 정말 돈 없는 사람들한테는 두 세 달 생활비"라며 "어린이집에 몇 명 이상만 되면 돈 번다던데 이런 말들이 괜히 도는 게 아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렇다고 특별활동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직장맘 D씨는 "특별활동 4과목에 월 18만원 내는 게 부담스러워 표준보육 과정 외 수업을 안 들었다"며 "그런데 어느 날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더니 딸아이 혼자 구석에 앉아 특별활동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어린이집 특별활동을 신청하지 않더라도 해당시간에 대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어린이집 원장의 말에 안심하고 맡겼더니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것이다.

D씨는 "실제론 대체 프로그램도 돌봐주는 보조교사도 없었다"며 "딸아이가 소외된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보니 특별활동을 안 시킬 수 없었다. 사실상 반 강제적 특별활동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특별활동 안 시키면 왕따"

보건복지부 '보육시설 특별활동 프로그램 적정관리방안'에 따르면 특별활동은 학부모 선택권을 보장하고 자발적 참여자에 한해 실시된다. 따라서 미참여 아동에 대해서는 의무적으로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전직 어린이집 교사에 따르면, 어린이집의 특별활동을 대체하는 프로그램은 특별히 없을 뿐 아니라 교사가 나서서 부모에게 '특별활동을 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한다'고 설득하기도 한다. ⓒ SBS 방송 캡처  
전직 어린이집 교사에 따르면, 어린이집의 특별활동을 대체하는 프로그램은 특별히 없을 뿐 아니라 교사가 나서서 부모에게 '특별활동을 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한다'고 설득하기도 한다. ⓒ SBS 방송 캡처
전직 어린이집 교사였던 E씨는 "특별활동을 대체하는 프로그램도 없는 데다 교사가 나서서 부모에게 '특별활동을 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한다'고 설득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학부모들 사이서 '0~5세 무상보육'을 두고 '반값보육'이란 비판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내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0~5세 영유아 23만5596명 가운데 특별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아동은 15만3137명으로 절반이상을 훌쩍 넘었다.

이러한 데는 어린이집 운영방침도 한몫하고 있다. 특별활동을 신청하지 않으면 입소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E씨는 "특별활동 참여를 유도하다가도 안 되는 학부모한테는 특별활동을 하는 오후시간에 아이를 데려가라고 한다"며 "그도 그럴 것이 하루 1~2시간 있는 특별활동시간은 보육교사들이 그나마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따라서 특별활동을 안 하는 아이는 미운털이 박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 E씨의 전언이다. 

이런 식으로 '남는 장사'가 돼버린 어린이집은 권리금이 붙어 고가에 매매되기도 한다.

◆'당근'만 주는 어린이집 관리·감독

그러나 이를 단속할 방법은 마땅치 않아 보인다. 어린이집에 대한 갖가지 민원이 쏟아지고 있지만 서울시에만 6000여곳에 달하는 어린이집을 일일이 조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 서울형 어린이집 관리·감독은 부실하다는 평가다. 실질적 관리·감독을 수행하는 각 구청 담당직원이 1~3명에 불과한 현실이 이를 웅변한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소속 민간어린이집은 지난해 2월, 민간보육료 수납한도액 인상,  필요경비 수납관리 규정 철폐, 교원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전국어린이집 휴원 투쟁을 벌이겠다며 정부를 상대로 투쟁한 바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에서의 집회 장면. ⓒ 네이버 카페 캡처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소속 민간어린이집은 지난해 2월, 민간보육료 수납한도액 인상, 필요경비 수납관리 규정 철폐, 교원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전국어린이집 휴원 투쟁을 벌이겠다며 정부를 상대로 투쟁한 바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에서의 집회 장면. ⓒ 네이버 카페 캡처
2005년부터 보건복지부가 운영한 '어린이집 평가인증제도' 역시 서울형 어린이집처럼 일정한 검증을 통과하면 정부가 각종 비용을 지원했으나, 정작 평가에서 탈락한 곳에는 아무런 불이익도 주지 않고 있다. 당근만 주고, '채찍'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전국 어린이집은 약 4만2500곳. 정부는 민원이 제기됐거나 부정행위의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된 곳 위주로 점검한다. 따라서 부모들이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 한 이런 행태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