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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어린이집 ⑥] 낮잠시간 조용해지면… "엄마, 할머니 보고 싶어요"

[탐방] 서울 관악구 H어린이집 만2세반 하루일과

이보배 기자 기자  2013.04.29 10: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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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맞벌이부부가 늘면서 어린이집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았다. 어린이집은 국공립, 민간, 가정형, 직장형, 조합형 등 그 유형이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민간어린이집 수가 가장 많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최근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부실 식단, 유통기한 지난 식자재 사용 등의 뉴스는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서울형 민간어린이집을 찾아 우리 아이들의 하루를 직접 살펴봤다.

    
"신나게 뛰어 놀아 볼까요?" 어린이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야외활동 시간이 되면 원생들은 선생님의 말에 더욱 귀 기울인다. H어린이집 인근 놀이터에서 진행된 야외놀이 시간. = 이보배 기자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H어린이집은 1995년 9월 처음 문을 열었다. 햇수로 19년째에 접어든 이 어린이집은 2004년 여성부 장관상 수상했고, 2005년 시간 연장형 보육으로 특수보육시설 지정 인가를 받았다. 2006년 서울시 관악구 민간부분 최우수 시설에 선정, 2009년 서울형 어린이집 인증 획득에 이어 2011년에는 정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인증에서 95.93점(100점 만점)을 획득 평가인증을 통과했다.

◆가장 먼저 '배꼽인사'부터

"선샌밈, 안녕하셰요."

오전 9시 H어린이집 만 2세 반 등원이 시작됐다. 아이들이 하나 둘 엄마, 할머니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등원버스 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면서 학부모들의 걱정이 커진 까닭에 버스를 없앴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선생님께 배꼽인사. 만 2세만 정원은 총 15명, 두 명의 선생님이 아이들을 보살핀다.

만 2세 우리 나이로 4살인 아이들은 아직 발음이 부정확하다. 제각기 다른 발음으로 선생님에게 배꼽인사를 하고 교실로 들어오면 스스로 가방을 벗어 사물함에 넣고 겉옷도 벗어 야무지게 접어 사물함에 넣는다.

아이들이 등원을 마치면 본격적으로 실내활동이 시작된다. 교실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들은 어느 하나 교육에 쓰이지 않는 것이 없다. 바닥에 노란테이프로 그려 넣은 네모가 무엇인지 궁금해질 때쯤 선생님이 말문을 열었다.

"친구들, 이게 무슨 색이지요?"
"노라섁!"
"그럼 이 모양은 무슨 모양이에요?"
"녜모!"
"자, 그럼 우리 친구들 손가락으로 네모 모양을 한번 만들어 볼까요? 잘 할 수 있지요?"
"녜녜, 선섄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조그만 손가락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네모모양을 만들려 애를 섰다. 이어 미술활동과 음악활동이 진행됐다. 두 명의 선생님이 각각 한 가지 활동을 맡으면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자유롭게 선택한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제대로 되지 않는 발음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즐겁게 춤추는 아이들. 유독 눈에 띄는 은서(가명)는 만 2세 반에서 알아주는 댄스신동이다. 선생님이 장단을 맞춰주니 흥이 더 났다. 요구르트 병을 달아 만든 벨리댄스 치마를 입고 춤을 추던 은서는 달그락거리는 요구르트 병 소리에 신이 나서 노래 다섯 곡이 끝날 때까지 엉덩이를 흔들었다.

    
"저도 만들어주세요" 실내활동 만들기 시간. 선생님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은 아이들 모습. = 이보배 기자
"선섄님, 저도 그려주세요"

한쪽에서는 미술활동이 한창이다. 아이들이 직접 골판지에 자신의 사진을 붙이면 선생님이 사진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준다. 여자 아이들에게는 치마를 그려주기도 하고, 남자 아이들에게는 원하는 동물과 놀이기구를 그려준다.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선생님이 그려준 그림에 색연필로 색칠을 하고 서로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다. 만 2세의 특성상 아이들은 한 가지 활동에 오래 집중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음악활동과 미술활동에 싫증을 낼 때쯤 선생님들은 다른 활동으로 아이들의 참여를 도모한다.

교실 한켠에서 선생님의 인형놀이가 진행되는 동안 형찬(가명)이를 비롯한 4~5명의 아이들은 소꿉놀이 판을 벌였다. 과일, 빵, 채소를 칼로 자르는 시늉을 해가며 그릇에 곱게 담아 맛을 보라고 내밀었다. 빨간 고추 모형을 집어 들자 형찬이는 손을 입에 갖다 댄 뒤 "매워, 매워"를 연발했다.

오전 11시가 가까워 오자 선생님은 노래를 바꿔 틀었다. 일명 '정리정돈 노래'라는데 이 노래가 흘러나오자 아이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가지고 놀던 장난감 및 교구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신나게 뛰어 놀아요" 줄 서기는 기본 

"정리정돈 잘 한 친구들 이리오세요. 이제 우리는 바깥에 나갈 거에요.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사도 하고,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 놀아 봐요."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자신의 겉옷을 찾아 선생님께 달려갔다. 겉옷을 챙겨 입은 아이들은 정해진 짝꿍 손을 잡고 선생님 뒤를 따랐다. H어린이집은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지만 야외활동에 있어 첫째는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이날 찾아간 곳은 동네 세탁소. H어린이집은 근처 상점들을 돌며 아이들에게 그 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주고,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법을 교육한다.

"선섄밈, 세탁기!"
"우리 집에도 셰탁기 있어."
"아저씨 바지(다림질)해요."

세탁소에 들어선 아이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눈앞에 보이는 사물에 대해 재잘거린다. 시작과 끝은 물론 주인아저씨에게 배꼽인사다. 갑작스런 방문에도 주인아저씨는 흐뭇한 미소로 아이들을 맞았다.

    
"준비운동도 척척" 실내 체육활동 시간. 달리기에 앞서 준비운동 하고 있는 어린이들. = 이보배 기자
다음으로 향한 곳은 어린이집 인근의 놀이터. 커다란 미끄럼틀과 놀이기구 몇 개뿐인 소박한 곳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천국이 따로 없다. 충격을 흡수하는 바닥재를 깔아놓아 마음껏 뛰어놀다 넘어져도 안심이다.

"우리 친구들, 놀이터에서는 초록색(충격 흡수 바닥재) 안에서만 뛰는 거에요. 바깥으로 나가면 넘어져서 아야해요. 알고 있죠?"
"네네, 션섄님."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줄을 서서 차례차례 미끄럼틀에 올랐다. 미끄럼틀을 가운데 두고 한바탕 뜀박질이 시작됐다. 종종걸음 선생님과 선생님을 잡으려 뛰어가는 아이들. 그렇게 몇 바퀴 뛰고 나니 아이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나도 밥 쥬셰요" 편식 없이 냠냠냠

야외활동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오면 아이들은 제일 먼저 손을 씻는다. 이때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화장실을 점검하고, 점심식사를 할 수 있도록 테이블을 펼친다.

"배고프지요? 이제 밥 먹을 시간이에요. 손 씻은 친구들은 도시락을 꺼내서 자리에 앉으세요."

테이블에 둥글게 둘러앉은 아이들은 저마다 집에서 가져온 급식형 도시락을 꺼내들었다. 배식은 선생님이 직접 한다. 이날의 반찬은 돼지고기 채소볶음과 양배추찜, 김치, 된장국 등. 식사를 하는 동안 선생님들은 반찬에 대해 설명했다.

"김치를 많이 먹으면 건강해지죠?"
"오늘은 하얀 쌀밥이네요."
"양배추는 아까 재경이(가명)가 먹어봤다고 한건 데 기억나요?"

선생님이 반찬을 하나씩 지목해가며 설명하면 아이들은 입을 모아 "긴치" "쌸밥" "얀배츄"라고 따라한 뒤 식사를 시작했다. 양배추찜이 생소할 법도 한데 아이들은 반찬투정 한번 없이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H어린이집은 점심식사 뿐만 아니라 하루에 두 번(오전․오후) 아이들의 간식을 챙기고 있다. 오전 간식은 10시 가량, 제철과일로 제공되고 오후 간식은 낮잠에서 깬 뒤 3시30분 쯤 챙긴다.

모든 먹거리는 어린이집에서 직접 조리한다. 어린이집 내에 조리실을 따로 두고 영양의 균형을 맞춘 한 달 식단을 미리 계획한 뒤 학부모에게 전달한다. 급식이나 배달업체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조미료나 첨가물의 유해성을 피할 수 있고, 아이들이 잘 먹지 않은 채소류도 함께 조리하기 때문에 편식하는 습관도 고칠 수 있다.

◆"이겨라, 이겨라" 탑 쌓기는 기본

식사를 마치고 자유시간을 가진 뒤 선생님 한 분이 아이들을 줄 세우기 시작했다. 지하 강당에서 체육활동을 진행한다는 설명이다.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도 안전교육이 철저하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계단을 내려가다가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에서다.

조심조심 난간을 꼭 붙잡고 지하 강당으로 내려가니 외부에서 초빙된 유아전문 체육선생님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커다란 덩치. 여 선생님만 보던 아이들 중 일부는 낯설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영윤이(가명)도 이때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 품을 파고들며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낯을 가려 선생님께 의지하는 경우는 그나마 낫다. 지우(가명)는 체육활동 시작부터 끝까지 쌓아놓은 탑을 무너뜨리는가 하면 제 멋대로 문을 열고 나가려 해 수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엄마 보고싶어요" 하루종일 부모님을 찾지 않던 아이들도 낮잠 시간이 되면 어리광을 부린다. = 이보배 기자
이날의 주요 활동은 릴레이 달리기. 두 명씩 일정 거리를 달려와 탑을 쌓는 활동으로, 달리기가 시작되자 참여하지 않는 아이들은 "이겨라, 이겨라"를 외치며 친구를 응원했다. 15명의 친구들이 사이좋게 체육활동을 마치고 다시 교실로 올라오니 교실에 남아있던 선생님께서 이부자리를 펴 놓았다.

4~5세 반의 경우 낮잠 대신 다른 활동을 원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만 2세의 경우 대부분의 아이들이 낮잠을 잔다. 낮잠 대신 활동을 원하는 아이들은 억지로 자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을 먼저 재운 선생님이 자지 않는 아이들의 활동을 돕기 때문이다.

은은한 조명과 조용한 음악이 깔리자 아이들은 각자 자리를 잡았다. 분위기가 조용해지자 연진(가명)이가 조용이 입을 열었다.

"선섕님, 엄마랑 아빠랑 보고시퍼요."
"우리 연진이 그럼 오늘은 엄마, 아빠 꿈꾸면 되겠네."
잘 놀다가도 낮잠 잘 시간이면 부모님을 찾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연진이의 한 마디에 아이들이 말을 보탰다.
"나는 함무니 보고시퍼."
"하부지도."

조용한 음악과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재우는 '토닥토닥' 소리가 교실을 채운 지 20여분이 지났을까. 아이들은 하나 둘, 보고 싶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꿈나라 여행을 시작했다.

◆지금은 헤어질 시간…"내일 만나요"

낮잠은 2시간 내외로 재운다. 그 시간 동안 선생님들은 가정통신문을 작성하기도 하고, 오전 일과를 되새긴다. 선생님들의 얘기를 잠시 들을 수 있었다.

"영윤이가 체육활동 때 울었어요."
"영윤이가 왜요? 그럴 애가 아닌데."
"남자 선생님이 낯설었나 봐요"
"지난번에는 연우가 강당 입구에서 남자 선생님 목소리 들리니까 들어가지도 않으려 하던데……."
"연우는 낯설어서 그런 것 같고 영윤이는 잘 웃고 사람도 잘 따르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심리도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아이들의 성격을 공유하고, 아이들의 교육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다. 이 때 혜빈이(가명)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에도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라고 설명했다. 선생님들은 혜빈이처럼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들과 추가 활동을 하기도 한다. 낮잠을 자고 먼저 일어나는 아이들을 순서대로 챙기고, 마지막 아이가 일어날 때까지 억지로 깨우지 않는다.

3시 이후, 잠에서 깬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오후활동을 시작한다. 오후활동은 오전과 비슷하게 진행된다. 오전에 음악활동을 하느라 미술활동을 하지 못했던 아이들은 미술활동을, 반대로 음악활동을 하지 못했던 아이들은 음악활동에 참여한다.

어느덧 4시30분. 이때부터 아이들의 하원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6시 사이의 하원이 가장 많고,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경우는 7시30분 사이에 하원 한다.
"선섄님, 안녀게세요."

만 2세, 우리 나이로 4세. 마냥 어린 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날 함께 지내본 아이들은 생각보다 의젓했다. 스스로 옷을 벗고·입고, 혼자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고, 친구를 챙기고, 부모님을 생각하는 꼬마친구들. 아이들이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심양면 힘을 쏟고 있는 모든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노력이 새삼 보석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