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1. "그 동안 많이 받은 게 사실이에요. 론스타에서 고배당 받아가는 동안 노조가 협상을 잘 한 거죠." 2012년, 하나금융그룹으로의 피인수와 신임 은행장 부임을 함께 기념하는 지난달 15일 첫 기자간담회장에서 외환은행 한 부행장급 임원은 같은 테이블에 앉은 기자들에게 이제 앞으로 새 지도부가 어떻게 이 고액연봉집단을 다스려 나갈지를 걱정하는 듯 말했다.
#2. 한없이 낮은 자세였다. 봄날 서울 한복판, 명동에 나선 외환은행 임직원들은 집게와 비닐봉지를 들고 거리정화작업을 진행했다. 불과 며칠 전 남한산성에서 1사1산 환경정화를 진행한 뒤였다. 시민들에게 외환은행의 마음가짐을 전달하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일이었다. 중소기업 가산금리 논란과 해킹 논란 등 각종 이슈로 고객들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는 의사를 전달하기에는 적절한 행보였다는 풀이도 나온다.
외환은행이 연이은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검찰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기강 잡기에서 금융권 첫 대상으로 외환은행을 점찍었다는 해석까지 나온 중소기업 가산금리 부당조작 사건은 외환은행 거래고객들은 물론 행원들에게 큰 심리적 타격을 안겼다.
여기에 국제해커단체가 외환은행 고객들의 자료를 유출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불안감은 가중됐다. 해킹 우려는 사실무근, 해프닝으로 결론났지만 다음에는 금융소비자연맹에서 소비자들이 뽑은 가장 좋은 은행 순위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윤용로 행장이 부임, 하나금융그룹 피인수 이후 마음을 다잡은지 이제 1년. 외환은행은 봄맞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처방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소비자들 평가 '아직은'…'기우' 반론도?
23일 금소연 발표 조사결과에서 소비자들이 신한은행을 가장 좋은 은행으로 꼽을 동안(100점 만점에 94.5점), 우리은행은 81.2점을, 기업은행은 68.4점, 외환은행은 63.2점을 받았다. 외환은행은 소비자가 은행 선택 때 고려해야 할 안정성 및 소비자 성향, 건전성, 수익성 등을 종합한 이 조사에서 하위권을 기록하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적잖이 입게 됐다.
시민들이 명동 거리에서 발걸음을 재촉하며 지나가는 가운데 윤용로 외환은행장이 환경정화작업을 하고 있다. 23일 외환은행 임직원들은 서울 중심가인 명동에서 환경정화봉사를 진행했다. ⓒ 외환은행 |
하지만 이 같은 사정은 '기우'라는 해석도 나온다. BIS비율 같은 경우 1997년 IMF 관리 체제 하의 은행권 타격 상황과 2008년 리먼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은행계와 당국이 노이로제 반응이라고 할 정도로 철저히 대비를 해서 그렇지 일단 일정선을 넘기면(10% 가량을 넘기면 된다는 주장이 유력) 세부 사항에는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더욱이 이미 2009년 3월, 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가 한국 각 은행들의 스트레스테스트를 진행, 결과를 임의로 공표했다가 우리 당국과 마찰을 빚은 상황을 보면 (이미 일찍이 완비된) 위기 대응 능력에 대한 불안감이 지나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이때 한국씨티은행은 6.6%, 외환은행은 5.1%이었고 구 SC제일은행(현 SC은행) 등 일부 은행들은 4.5% 등으로 일명 국내 4대 시중은행의 TCE비율에 비해 우수한 지표를 가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은행이 외부 스트레스 상황에 내성이 더 크다는 추정이 가능한 셈이다.
이때 당국은 피치의 이 같은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반박하면서 은행 대외신인도와 건전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별 은행의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지만 국제적 평가의 실상은 이런 면도 있다는 것이다.
또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인지도, 민원 문제 등의 우려도 '장부에 반영되지 않는 지표'를 들여다 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실제로 소비자의 선호와 인지, 민원에 대한 불만이 현상을 완벽히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해석도 이번 발표된 지표와 함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신한은행이 '소비자성' 등 여러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지만 불과 지난해 여러 논란이 있었던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은 이런 지표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작년 여름 '소비자 학벌을 감안한 금리 조절 모델 도입'이 당국에 의해 터져 나오고 그해 가을에는 일부 행원들이 서류를 위조하거나 허위 영수증을 발급하는 등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돈을 빼돌린 혐의를 은행 스스로 포착, 관계 당국에 고발하는 등 홍역을 치렀기 때문이다.
이는 신한은행이 일찍부터 창구 서비스리더와 영프론티어를 육성·지원하는 갤포스(GAL FORCE)제도 등도 실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면서 소비자 관련 지표에서 이미지 메이킹을 잘 관리해 온 덕을 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 외환은행은 과거부터 '국책은행 시절 버릇'이 남아있어 민원 처리 등에서 다소 둔감한 모습을 오래 보여 온 게 사실이다. 이는 윤 행장 부임 후 변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일거에 해소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다만, 2004년 9월 나온 평가에서 같이 하위 30% 그룹으로 평가된 국민·외환·우리은행 등이 이번에 서로 위상 변화를 겪었다는 점은 아프게 받아들일 대목이다. 23일 금소연이 내보낸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면 일부는 소비자성 평가에서 치고 올라갔는데 외환은 치고 나가는 변화가 다소 늦다는 점, 그러므로 가야할 길이 멀다는 점은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룹에 '돈' 벌어다 주는 '업둥이', 해외시장에서 노고 인정
당국이 올해 초 내놀은 '2012년 은행지주회사 경영실적(연결기준)'에 따르면, 국내 금융그룹 이익규모에서 회사별로는 신한지주가 2조378억원으로 이익규모가 가장 컸다. 이어 △하나금융 1조3842억원 △KB금융 1조3826억원 △우리지주 1조2842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하나는 외환은행 인수 등의 영향으로 전년 동기 대비 이익이 무려 4830억원(53.6%) 늘었다. 총자산면에서도 외환은행이라는 귀한 새 식구를 맞아들임으로써 흔히 4대 금융지주라고 표현하지만 과거 기존 3사에 비해 하나의 몸집이 너무 격차가 났던 만큼 만년 '4등 같지 않은 4등이라는 설움'을 받았던 하나금융은 금융그룹다운 몸피를 갖추는 데에도 성공했다.
무엇보다 외환은행의 경우 하나금융의 본부 입장에서도 원래 식구이던 하나은행 못지 않은 소중한 자원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윤 행장이 취임 제일성으로 부르짖은 "'5년 독립경영' 기간 잘 하자. 외환이라서 괜히 불이익 받을 일은 없다. 외환은행이 하나은행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는 다짐이 실제로 빛을 발하고 있다.
최근 하나금융은 인도에서 하나은행 사무소는 폐쇄하는 대신 외환은행 사무소를 택했다. 하나은행으로 사무소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외환은행 사무소가 현지 지점 전환에 더 큰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브릭스' 국가 중 핵심인 러시아에 외환은행을 진출시킬 요량을 내치비치는 점도 외환은행으로서는 고무적이다. 외환은행이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러시아에 법인을 만들어 현지 영업을 시작할 것이라는 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2008년 모스크바에 사무소 형태로 진출한 지 6년 만, 하나은행이라는 한 지붕 두 가족에게 '좋은 자리'를 내줄 수 있다는 피해의식 아닌 피해의식에 시달려온 상황에서 나온 희소식이다.
◆전임자에 대한 마음의 빚 모두 덜어낸 윤용로號
지난해부터 사업부제 카드를 잘 활용하면서 카드사업 등 업무 성과가 잘 나오는 점도 '윤용로 체제'의 성과로 꼽힌다.
론스타 지배 시절에도 단기성과에 유리한 사업부제가 도입된 바 있지만, 이번 상황은 사업부제를 개편해 개인부문과 기업부문을 각각 구분, 운용하던 것을 조직화합과 시너지 제고를 위해 영업총괄그룹으로 통합했다는 하나금융식 '매트릭스 스타일'을 적절히 가미한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론스타 시절의 운영 방식이 돈을 더 벌어들이기 위해 장기적 기반을 허문다는 우려를 사면서까지 무리수를 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직원들의 참여를 유발하는 신뢰 확보에서도 적절한 성공으로 풀이된다.
고 강권석 기업은행장을 추모하기 위해 기일에 맞춰 묘소 참배를 하는 윤용로 당시 기업은행장. 옆에 조준희 현 기업은행장도 함께 보여 이채롭다. ⓒ 기업은행 |
과거 윤 행장은 기업은행장으로 봉직하던 시절, 순직한 전임 행장인 고 강권석 행장을 매년 추모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의리파 인사로 알려져 있다. 원래 관료 출신인 윤 행장 개인적으로 보면, 강 행장을 추모하는 것이 같은 길을 먼저 걸어간(고 강 전 행장도 관료 출신으로 기업은행 부임) 이에 대한 추모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풀이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처럼 지도부에서 행동하면, 기업은행 행원들에게는 철학과 열정을 공유하자는 의지를 전달, 고취하는 의미가 있다. 솔선수범을 한다는 의미가 있는 행보를 한 셈이다.
그런 윤 행장이 론스타 색깔 지우기라는 카드를 꺼낼 수 있었던 점에는 검찰 수사를 불러온 가산금리 조작 문제가 론스타 시절 발생하는 등 전임자에 대한 마음의 빚이 남지 않게 된 상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론스타 이슈는 윤 행장 부임 이후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과거 세팅된 문제가 그대로 유지돼 윤 행장이 이를 인지하고 걸러냈을 수 있는지에 대해 수사 초기부터 논란이 많았고 결국 큰 문제없이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빚을 덜어내고, 앞으로 도약할 준비를 한 상황. 그간 많은 문제가 터지면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지만, 이런 맥락에서 2014년 3월까지 남은 임기에 '윤용로호'가 어느 방향으로 얼만큼 갈지 풍향을 가늠하는 쪽에 관전포인트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외환은행의 향후 1년에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