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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길 먼 기업민주화 '섀도 보팅' 올해도…

국회서 법안 표류·전자투표 뒷전, 주주들 "내 권리는 어디서 찾아야"

정금철 기자 기자  2013.04.24 12: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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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짜인 각본, 결의의 왜곡… 국내기업들의 '섀도 보팅'이 여전한 반면 '전자투표'는 철저히 외면받고 있어 소액주주들을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특히 섀도 보팅 폐지를 목적으로 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어 박근혜 정부의 기치인 '경제민주화'에 대한 역행이라는 지적도 있다.   

23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2월 결산 상장법인 1663개사 중 35.5%인 591개사가 정기 주주총회에서 섀도 보팅을 요청했다. 2008년부터 국내 상장사 세 곳 가운데 한 곳 이상이 섀도 보팅으로 결의를 구한 것.

시장별로는 유가증권시장에서 699개사 중 30.5%인 213곳, 코스닥에서는 964개사 중 39.2%인 378곳이었고 요청업체는 지난해 600개사에 비해 모두 9개사가 줄었다. 유가증권시장은 2011년 231곳에서 2012년 213곳으로 18곳 감소했으나 코스닥시장은 같은 기간 369개사에서 378개사로 9곳 늘었다.

또한 모두 1758건의 섀도 보팅 의안별 요청에서는 코스피 541건, 코스닥 1217건으로 3:7 정도의 비율을 보였다.

◆"내 멋대로 의사결정" 넘사벽 '섀도 보팅'

섀도 보팅은 정족수 미달에 따른 주주총회 무산을 막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주주가 주총에 불참해도 참석한 주주의 의결권 찬반 비율에 맞춰 권리가 행사된다. 예탁결제원은 주총 성립 요건인 전체 발행주식 25%를 확보하지 못한 업체의 요청이 있을 경우 주총일 5일 전까지 의결권 행사여부가 불명확한 주주의 권리를 대행한다.

이처럼 원활한 주총 개최가 목적인 섀도 보팅은 대주주의 정족수 확보수단으로 변질돼 그들만의 의사결정 도구가 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의결권 행사는 대주주 마음대로며 대내외적 리스크를 가진 기업들의 섀도 보팅 선호성향이 강해 투자자들의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

이 같은 이유로 인기리에 남용되는 섀도 보팅과 달리 같은 기간 전자투표를 신청한 상장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소액주주가 주총에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넷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전자투표는 섀도 보팅의 대응책으로 거론돼 왔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물론 법조계 인사들도 섀도 보팅의 존재 이유에 의문부호를 붙이며 전자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정책적 걸림돌에 막혀 있다.

지난 2010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조문환 의원은 전자투표 의무화를 골자로 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대표 발의했지만 결국 표류됐다.

이어 지난 9일과 10일 '2015년 섀도보팅제 폐지' 등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위원장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와 전체회의를 통과했으나 아직 법제사법위원회에 머무르고 있다.  

기업들의 의식 부족도 문제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2010년 8월 도입된 전자투표시스템(K-evote)은 기업들의 참여 저조와 홍보 부족 등의 이유로 별 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며 "법안이 통과된다면 확실한 변화는 자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 "가재는 게, 감사는 대주주 편" 지적에도 "전자투표 싫어"

이날 예탁결제원의 자료를 보면 총 1758건 안건 중 27.4%인 482건이 감사(감사위원) 선임의 안이었다. 그 뒤를 이어 임원보수 한도(381건), 이사 선임(369건), 정관 변경(264건) 순으로 요청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시장 안건별로 유가증권시장의 경우 감사(감사위원) 선임 의안에 대한 섀도보팅 요청이 197건(36.4%)으로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코스닥시장은 정기주주총회 의안 중 임원 보수 한도(23.7%), 감사(감사위원) 선임(23.4%), 이사 선임(21.7%) 순이었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감사 선임 의안에 대한 섀도보팅 요청이 197건(36.4%)으로 가장 많았고, 코스닥시장에서는 임원 보수 한도(23.7%)에 대한 요청이 가장 많았다.

'섀도 보팅'을 통한 대주주의 취향 맞추기는 사내에서 감시권한을 가진 감사 선임까지 연결돼 문제가 심각하다. 현행 상법상 감사 선임은 3% 초과 지분을 가진 대주주도 딱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국내 한 증권사 법인영업  담당자는 "대주주들이 섀도 보팅을 남용하는 사례 중 감사 선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기업 감시기능까지 마비시키고 회사를 좌지우지하겠다는 뜻"이라며 "대주주가 뽑은 감사가 제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섀도 보팅 존속을 지지하는 업계의 입장도 무시할 수 없다. 코스닥업체 한 관계자는 "3%의 의결권으로는 감사와 감사위원 인사와 관련, 정족수를 충족시키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무조건 강제적인 전자투표 시행보다는 섀도 보팅의 부분 허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