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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민주靴의 값, 민주化의 비용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4.24 08: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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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가끔 외부 취재나 원거리 출장을 나가면 뭔가 물건을 좀 사오고 싶은 경우가 생깁니다. 주로 박람회나 해외 출장의 경우가 그런데요.

서울성수수제화생산협동조합을 지난 초봄 찾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적 협동조합이 막 이슈화되던 시기에 예전 취재원 연줄을 통해 취재를 부탁한 경우였습니다(그날 취재된 사회적 협동조합에 관련된 여러 발언과 현실적 조언은 : ☞기사 보기).

서울 수제화 관련 업체의 80%가량이 밀집한 성수 지역. 빠듯한 소득과 열악한 노동 조건 등으로 수제화 산업이 침체기에 접어든 상황을 타개하고자, 이 성수 지역을 무대로, 기술력과 서로간 연대로 이를 극복하려는 조합 추진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거리도 가깝지 않으려니와, 공방들 사이에 숨어있는 조합 사무실을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았는데요.

후배 기자를 쉽지 않은 길에 대동하고 간 데다 막상 예쁜 수제화를 다량으로 보게 되니, 취재 중에 한 켤레 사 줘야 하나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또 막상 좋은 수제화를 최대한 저렴하게 팔겠다는 조합 취지를 취재, 정리하다 보니 '매상'을 좀 올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는데요.

   취재를 나가 보면 가끔 뭔가 물건을 사고 싶거나 사 줘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후배를 고생시킨 날, 예쁜 물건을 발견한 날, 사연있는 물건과 그걸 만드는 사람을 만난 날. = 임혜현 기자  
취재를 나가 보면 가끔 뭔가 물건을 사고 싶거나 사 줘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후배를 고생시킨 날, 예쁜 물건을 발견한 날, 사연있는 물건과 그걸 만드는 사람을 만난 날. = 임혜현 기자

그런데 막상 그렇게 못 하고 말았는데, 이날 취재 대상이었던 분은 1985년 겨울 평화빌딩 옥상시위로 구속되는 등 학생 운동에 투신했고, 이후 오랜 민주화 운동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 분이 왜 수제화와 연이 닿아 조합을 결성하는 데 구심점 역할을 했는가 하면, 학생 운동 와중에 구두공장 취업을 해 기술을 배웠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군사 독재가 끝나고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에도 옛 민주노동당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화공'으로서 원점으로 돌아왔고 저희 취재에 응했던 것이지요.

즉, 아는 기자가 왔는데 물건을 팔 분도 아니고, 판다고 한들 헐값에 내놓을 것 같아 어떻게든 강권을 해서 살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또 한 가지 가장 큰 이유라면, 그날 갖고 나간 현찰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무리수를 두는 대신 '나중에'를 생각한 것이 가장 컸습니다.

그러고 시간이 흘러 이 분이 그야말로 급서(急逝)했다는 부고를 접했습니다. 이해삼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서울성수수제화생산협동조합 이사 역할을 하던 분이 21일 차 안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민주화 운동 이력도 이력이지만,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노력했던 고인의 모습을 기억하던 저는 부음을 듣고는, 다시 먼 길을 돌아 제화공들과 함께 하던 인터뷰날의 그 분 모습을 떠올렸고, 그러다 어쩐지 '그 분이 만약에 독재 시기에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면'이라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1963년생, 고려대에서 수학교육학을 공부하던 분이었으니, 연령대를 고려하면 평탄한 길을 택한 경우 지금쯤 아마 평범한 수학 교사 혹은 그 이상이었을 걸로 상상해 봅니다. 더 나아가 교장이나 교감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교육행정직으로 풀려 장학사 혹은 장학관을 했을 확률도 높았겠지요.

   고 이해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 임혜현 기자  
고 이해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 임혜현 기자
그런 분을 학생 운동으로, 노동 운동으로 내몬 건 무엇이었나, 그런 식으로 잃어버린 인재가 얼마나 될지, '민주화의 비용'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큰 희생이 아닌가 생각도 해 봤습니다. 본인이 아무리 지나온 날에 후회가 없고 행복했다고 한들, 주변에서 보기엔 그런 생각이 없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요(실제로 민주화 운동을 했던 분들을 뵈면, 본인이 고생한 데에는 후회가 없어도 가족들에게 '더' 잘 해 주지 못한 것에는 미안함을 간직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민주화 비용을 이제야 보상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신발값마저 아끼는 세상인데, 우리 사회가 이런 분들에게 정말 인색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민주화(民主化)의 길을 걸어온 민주화(民主靴)를 만들던 분이 떠나셨는데, 부고기사(obituary)를 정말 잘 쓸 능력이 안 되어 이 글로 갈음하도록 하겠습니다.

고 이해삼 서울성수수제화생산협동조합 이사(1963.6.2~2013.4.21). 옛 민주노동당에서 △비정규직 철폐운동본부장 △최고위원 △광진을 지구당위원장 등을 역임. 노동자 특히 새로 한국 사회 병폐로 떠오른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는 세평. 2013년 별세. 고인의 영면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