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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한화, 포스트 김승연 시대를 대비하라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4.20 06: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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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서울 강남구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렸던 '서울국제유아교육전'에 다녀왔습니다. 이 박람회는 유아에 관련된 교육기자재, 즉 장난감부터 유아용 도서, 각종 교육 프로그램 서비스 등을 전시하고 또 현장할인가로 판매도 하는 자리라서 유아가 있는 가정의 부모들이나 예비부모는 물론 보육교사 등 교육계 관계자들도 참가해 성황을 이뤘습니다.

박람회를 둘러보던 제 눈에 흥미로운 관람객이 들어왔습니다. 다름아닌 스님 두 분이었는데, 보통 아이들을 키울 일이 없을(일부 대처승을 빼고는 우리나라 주류 종단 소속의 보통 비구 및 비구니는 가정을 꾸미지 않으므로) 분들이 어쩐 일로 유아 상품들을 둘러보고 계신가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절에는 동자승도 있고, 여러 불교 종단에서 고아원 등 어린이들이 있을 법한 시설을 운영하기도 한다는 점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서울국제유아교육전 현장. = 임혜현 기자  
서울국제유아교육전 현장. = 임혜현 기자
    

어떤 사정인지 구체적으로는 알 길이 없으나, 아마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뭔가 잘 아는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보고 필요한 물건도 있으면 구해갈 요량으로 박람회를 찾은 것이겠지요.

"춤을 글로 배웠습니다"라거나 "요리를 글로 배웠습니다" 같은 표현이야 포털 네이트가 광고에서 썼던 우스갯소리지만, 사실 지금은 세상이 정말 좋아져서, 언제고 전문가 의견을 알 수도 있고 이렇게 여러 자리가 마련되니 그런 것만 잘 찾아다녀도 궁금증을 풀기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박람회를 둘러보는 관람객들. = 임혜현 기자  
박람회를 둘러보는 관람객들. = 임혜현 기자

그야말로 '인적 혹은 물적 인프라'가 잘 깔려 있어서 예전처럼 '생판 처음 보는 일'이라고 해도 도움을 얻어 '미션 클리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스님들의 유아 돌보기 미션 수행 장면이 생각나는 뉴스가 최근 나왔습니다.

바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것인데요. 이 문제는 배임죄를 지나치게 넓게 성립되게 법해석을 하는 우리 시스템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법리적 관점에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김 회장이 영어의 몸이 된 것 때문에 기업 활동이 동면 상태를 아직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가장 눈길을 모으는 이들이 있는데, 바로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김 회장의 장남), 최금암 부사장 그리고 신은철 부회장을 꼽고 싶습니다. 우선 신 부회장은 임원 중 가장 선임으로, 존재만으로도 현재의 상황에서 전체적인 사기를 챙기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실질적으로 재무·전략·인력 등 현안을 네트워킹하는 일은 최 부사장이 맡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최 부사장이 '기획통'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은 그나마 한화의 현재 상황에 비상 사령탑 공백을 줄일 긍정적 요인이라는 해석도 제기됩니다.

문제는, 김 회장의 장남 동관씨입니다. 참고로 보통 기사에서 표기할 때 오너 일가를 여럿 언급하는 경우 성이 같은 사람이 많이 등장하므로 2세, 3세는 누구누구씨로 부르지만, 비상이 걸린 상황에 그가 책임지고 있는 직위를 생각해 아래에서는 특별히 김 실장으로 적겠습니다.

김 실장이 요즘 국내에만 머물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태양광 같은 차세대 먹거리 사업을 튼튼히 다지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모습과 대비돼 특히 우려를 사고 있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해석도 제기됩니다만, 그래도 김 실장이 가진 위상과 앞으로 녹록찮은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치 않아 보입니다. '국내에서 비상관리체제 장악'이 아닌 '머물고 있다'로 평가가 나오는 현상황은 위에서 언급한 인물들 외에도 여러 경영전문가들이 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조금 2% 부족해 보이기도 합니다.

부친이 "일단 모두 현상유지"를 외친 게 아니라면, 이제 어쩔 수 없이 열린 '뉴노멀시대' 즉 '포스트 김승연 시대'라는 국면에 적극적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전진해야 할 때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물론 생전 처음 당해보는 일에 주눅도 들겠지만, 태어나서부터 경영을 하는 이들은 없습니다.

더욱이 주변에 손만 뻗으면 고견을 쏟아낼 인적 자원과 국내 굴지 그룹으로 성장해 각 영역에서 선전하고 있는 물적 자원이 있는데 말이지요.

굳이 예전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자면, 고 최종현 선경그룹(오늘날의 SK그룹) 회장은 문민정부 초기에 이른바 6공 비자금 사건으로 검찰에 소환됐습니다. 고인은 검찰에서 6공에 정치자금을 제공했는지, 그 대가로 특혜를 받았는지에 대해 추궁당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당시 그룹 기획조정실장으로 최회장을 보필했던 손길승 전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돈배달 심부름꾼'으로 지목됐습니다.

이때 최 회장은 검사에게 "손 실장은 내 아랫사람이 아니라 내 친구이자 동업자"라며 감쌌다고 합니다. 고인의 진술이 나중에 검찰 관계자를 통해 알려지면서 비자금 사건으로 잔뜩 움츠리고 있던 재계에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던 적이 있습니다.

아마 저런 낮은 자세로 주변에 도움을 청하러 먼 길 마다않고 발품을 판다면, 부하직원이 아닌 동업자 같은 이들의 도움을 여럿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스님들도 물어물어 가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게 가능한 세상입니다. 하물며, 한화의 장남인데 무슨 미션인들 클리어하지 못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