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아베노믹스'로 표현되는 일본 양적완화 정책으로 세계 여러 나라가 영향을 받고 있는 가운데 긴박하게 펼쳐져 온 '환율전쟁'에 휴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우선 표면적으로는 18~19일(이하 날짜는 모두 각 현지시간 기준)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마치면서 일본의 아베노믹스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이 발표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본 일간지 아사히신문은 18일 "공동성명 초안에 엔저 견제를 염두에 둔 문구가 공동성명서 초안에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일본을 명확히 찍어서 지목하진 않았지만, 엔저 정책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위한 문구가 포함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G20 포함 인위적 엔저 주목, 전문가 "엔화 투자는 조심"
아사히신문은 이 내용이 최종적으로 들어갈지는 미지수라고 부연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 내용이 성명서에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실상 강제력이 없이 심리적 압박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더욱이 실질적 효과와 부작용을 따져볼 때 일본 외 여러 나라가 펴온 양적완화가 기대했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는 데 의견이 모아져 일본만 탓하기도 어렵다.
결국 엔저 정책을 유지할지 여부는 순전히 일본 당국의 '의지의 문제'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실제 눈여겨 볼 요소는 일본이 엔저를 더 이상 무리하게 끌고 가지 않아도 될 시점이 언제인지, 일본 관련 경제·금융 이슈로 엔화 환율 방향이 큰 변곡점을 맞이할 시기적 문제다.
현재 일본 경제 그리고 증시 등 금융은 일정 부분 살아나고 있으며, 더 이상 '무리하게까지' 양적완화를 더할 경우 오히려 일본 경제와 금융에 독이 될 수 있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닐 헤네시 헤네시펀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17일 뉴욕 기자회견에서 "일본(증권시장)은 이제 진짜 강세장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본 경제에 대해서도 장기적인 성장 전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자신들은 일본 경제가 장기간의 침체를 딛고 반등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다만, 헤네시 CIO는 일본(일본 경제)에 대한 투자는 몰라도 엔화에 대한 투자는 이제 조심할 국면이라는 지적을 내놨다. 그는 엔화 환율과 관련 투자 설계가 돼 있는 일부 금융상품에 대해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일본에 투자하되 엔화 거래에는 나서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을 보탰다.
엔화 찍어내기 정책으로 주변국 경제와 금융이 영향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 '환율전쟁'이 일단 멈춰도 한국 경제에 남은 상처는 한 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 임혜현 기자 |
◆일본 보험회사 해외투자 동향 주시 필요
그간 일본은행(BOJ)이 공격적인 완화정책을 진행했지만 아직 일본 투자자들이 적극적인 해외 투자에 나서지 않은 게 사실이다.
리카르도 바비에리 미즈호인터내셔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직 유럽으로 일본 투자금이 대거 유입되는 모습이 포착되지 않았다고 최근 말한 바 있다.
문제는 이 일본 자금이 해외로 터져 나갈 수문 개방 시점인데, 이번 G20 회의는 그런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엔저에 대한 불만섞인 성명이 채택되든 안 되든 이먼에서 통화를 완화하는 정책에 기인한 엔화 하락세가 '암묵적인 동의'를 얻느냐가 중요한데, 이번 회의에서도 양적완화 정책을 용인하는 결론이 나올 것이란 예측을 하는 해외 전문가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렇다면 정책이 갑자기 변할 가능성, 즉 일본 당국이 자기 의지를 꺾을 가능성이 변수로 작용하기보다는 일본 보험회사들이 일본 국채를 내다팔고 미국 국채로 투자를 본격화하는 시기가 갖는 의미가 더 중요해져 이를 주시할 필요가 높아진다.
◆일본, 어느 정도 양적완화 정책 유지하다가 연착륙 가능성
엔저를 과격히 추구해 온 결과로 경제가 살아나고 증시에도 온기가 도는 조짐이 어느 정도 감지됐기 때문에, 일본 당국으로서는 이제 굳이 무리하게 정책을 고집할 타당성이 줄어드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때 정책의 유지와 그 폭을 판단하는 데 문제가 될 요인으로는 유가와 비용 견인 인플레이션의 부작용 두 가지다.
우선 유가 부담과 관련,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전문가들에게 조사를 맡겨 작성한 보고서를 인용, 이달 1일부터 시작된 '2013 회계연도'에 일본 전력회사들이 대부분 원자력발전소 가동 중단으로 부족해진 전력을 보충하려면 3조8000억엔(한화 약 43조원)의 화석연료를 더 수입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이 보고서는 늘어난 비용은 대부분 엔화 가치의 하락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FT는 일본 양적완화와 관련, 비용 견인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원자재 수입 비용의 부담이 증가해 결국 기업들이 임금 인상에 나설 여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라만 살찌고 국민은 가난한' 과거 일본 경제의 모순점을 이번 아베노믹스 역시 그대로 답습하는 결론이 나올 수 있어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일본 당국이 이를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일본이 엔저 공세 고삐 늦춰도 한국 금융에 영향 남을 듯?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경제와 금융이 받을 영향에 관심이 집중된다. 한국은행은 국회 업무보고에서 "원·달러, 원·엔환율이 현재 수준에서 추가로 크게 하락하지 않는 한, 실물부문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한국은행 역시 "다만 환율하락이 추가로 더욱 확대될 경우에는 세계시장에서 일본과 경합관계가 높은 업종,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피해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며, 일본 양적완화 정책이 연착륙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처가 깊어질 여지가 있다는 부분은 인정했다.
다만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다. 한국은행은 이 보고 시점에 최근 장·단기 금리역전 현상도 보고사항에 포함했다. 향후 우리 경제의 저성장과 엔저 기조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해석하는 와중에 국고채 3년물 금리의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 점도 짚어볼 사항이다 .
그런데,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상존하는 한 장-단기금리 역전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해소되더라도 장기금리가 기준금리를 소폭 상회하는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김정식 연세대학교 교수 역시 '글로벌 양적완화와 환율전쟁' 세미나에서 "자본시장이 개방된 경제에서 중앙은행의 통화량 조절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며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해 과도한 자본유입을 막고 환율의 하락을 막는 것이 환율전쟁에 대비한 한국의 정책선택 옵션의 한 방법"이라고 언급했다.
중앙은행이 세계 금리수준을 감안해 통화정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아래 방향으로 만지는 데 상당한 부담감을 갖고 있다.
엔저 문제와 기준금리 문제를 모두 임의로 처리할 수 없어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은행, 이에 영향받는 우리 금융시장 사정은 결국 엔저의 양적완화 정책이 고삐를 한층 여유롭게 잡을 시기가 다가온다고 해도 상황해결을 주도적으로 이끌거나 적극 대비하는 대신 수동적, 소극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결국 현재의 여러 금융 난제들은 상황 유지가 최선인 어려운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