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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현-최태원 회장의 '닮은 듯 다른' 오너십 눈길

인간경영·스킨십형 경영에 수펙스 추구, 도덕성 논란 '옥에 티'

나원재 기자 기자  2013.04.18 09: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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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4월 현재 자산총액 140조6000억원, 공기업을 제외한 재계 3위 기업 SK의 오너십을 두고 뒷말이 새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최태원 회장과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최근 항소심서 진술을 뒤바꾼 이유가 크다. 스스로를 '창업 1.5세대'로 부른 고 최종현 회장의 오너십이 새삼 떠오르는 대목이다. 1.5세대와 2세대 간 시간만큼이나 성장을 거듭해온 그룹이지만, 이들 부자의 오너십은 닮은 듯 달라 보인다. SK그룹에 투영된 세대 간 오너십을 조명해봤다.
 
SK그룹 창립 60주년인 지난 8일, 공교롭게도 같은 날 그룹 오너십이 구설수에 휘말렸다.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검찰 항소심서 배임·횡령 혐의에 대해 원심 진술을 뒤집고 펀드 조성에 관여했다고 털어놓으면서다.

오너의 사회적 책임이 도마에 오른 것으로, 핵심은 이들 형제가 펀드 조성에 출자된 계열사 자금 450억원을 빼내 선물투자를 한 혐의에 대해 1심서 모두 부인하다 최 회장이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이후 진술이 급선회한 점이다.

이날 최 회장은 "원심서 사실대로 말씀 못 드린 부분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펀드 자금이 유출된 건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유출 사실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펀드 조성을 주도했다고 진술했지만, 원심서 무죄를 받은 최 부회장도 형 최 회장과 공모했고, 당시 스스로 덮어썼다고 밝혔다. 다만, 과정에서 최 회장은 "펀드 자금 인출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며 다소 애매한 입장을 내놨다.

◆1.5세대의 눈부신 성장, SKMS 적중

그간 SK그룹은 많은 변화를 꾀했고, 발전했다. 60주년인 이날 그룹은 매출 158조원, 수출 600억달러, 고용 8만명에 오르는 등 SK는 대한민국 산업 성장사를 그대로 보여준 축소판으로 설명했다.

그룹 말마따나 SK는 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이 1953년 4월8일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수원시 권선구 평동 4번지를 매입해 선경직물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최종건 회장은 당시 선경직물 종업원들과 자신의 마차를 이용해 5㎞ 떨어진 광교천에서 돌과 자갈을 날라 공장을 설립했다.

동생 최종현 회장이 이후 1962년 11월 10여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당시 선경직물 부사장으로 취임하며, 형의 패기와 동생의 지성이 쌍두마차 체제를 갖추게 된다.

하지만, 1973년 최종건 회장이 폐암으로 별세하며 선경직물을 물려받게 된 최종현 회장은 1997년 폐암 수술을 받고 집에서 칩거하기 전까지 재계의 존경을 받으며 SK그룹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스스로를 '창업 1.5세대'라 부른 최종현 회장은 80~90년대 대한석유공사(옛 유공, 현 SK)와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각각 인수, 그룹 성장의 발판으로 마련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10년 앞을 내다봐야 한다'는 경영철학에 기인했다.

   창립 60주년을 맞은 SK그룹은 매출 158조원, 수출 600억달러, 고용 8만명에 올랐다. 사진은 최종건 회장(우측에서 세 번째), 최종현(우측에서 두 번째) 회장이 1968년 12월25일 그룹 전신인 수원공장 준공식을 둘러보고 있다. ⓒ SK그룹  
창립 60주년을 맞은 SK그룹은 매출 158조원, 수출 600억달러, 고용 8만명에 올랐다. 사진은 최종건 회장(우측에서 세 번째), 최종현(우측에서 두 번째) 회장이 1968년 12월25일 그룹 전신인 수원공장 준공식을 둘러보고 있다. ⓒ SK그룹
최 회장은 사업 전망이 밝은 이동통신 진출을 위해 1987년 일찌감치 미국에 미주경영기획실을 만들어 AT&T, GTE 등 미국 정보통신 전문가들과 접촉했지만, '석유에서 섬유'의 석유화학산업 수직 계열화를 위해 대한석유공사 인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사우디 자본 1억달러를 미리 확보했다.

그는 신규사업에 진출할 때는 예상 시나리오를 놓고 실무자들과의 끊임없는 토론을 할 정도로 합리적인 결론 도출을 지향했다.

특히, 최 회장은 현재까지 SK그룹의 근간이 되는 선경경영관리체계(SKMS)를 1978년 창안했고, 이를 직접 적용하며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기 위한 '수펙스(SUPEX, 기업 초일류화방안)'라는 개념을 도입, 이를 위한 강한 집념을 보이기도 했다.

최 회장은 책임과 권한을 계열사 사장들에게 위임하되 매주 화요일 사장단회의를 주재하면서 그룹 현안을 두루 챙기곤 했다. 이러한 그는 '사람을 믿고 기르는 것이 기업의 처음이자 마지막 목표'라고 했을 정도로 인간위주의 경영원칙을 중시했다.

◆전대 회장의 뜻 묻어났지만…

초대 SK아카데미 교수를 역임한 허달 SK 전 부사장은 연재에서 "최 회장에게 경영활동을 정리하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묻는다면 아마도 그는 유공 인수, 이동통신사업진출 같은 굵직한 사업보다 SKMS를 만들어 독자적 기업문화를 만들고, '수펙스 추구 경영'이 '돈 버는 실천전 경영법'임을 입증한 일을 맨 먼저 꼽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회상한 바 있다.

   도덕성 논란을 부인하면서도 다소 애매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SK그룹. 닮은 듯 다른 그룹의 2세경영이 엉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재계는 여전히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 SK그룹  
도덕성 논란을 부인하면서도 다소 애매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SK그룹. 닮은 듯 다른 그룹의 2세경영이 엉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재계는 여전히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 SK그룹
하지만, 허 전 부사장은 SK그룹이 전대 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SKMS를 새롭게 가꾸려는 노력이 최종현 회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경영철학의 기본 틀을 알게 모르게 조금씩 바꾸어 나가는 결과가 되는 것을 우려했다.

허 전 부사장은 경영원칙이 세태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면 바꿔야겠지만, 일에 도(道)가 있다면 그 도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야 도라고 부를 수 있다고 일갈했다. 최종현 사장의 '기업과 구성원의 승-승 정신'과 '두뇌활용'을 통한 '무한추구 정신'은 SKMS와 '수펙스 추구'라는 현대적 표현을 빌렸을 뿐 '일의 도'가 지향하는 정신과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허 전 부사장은 SK그룹의 오늘날 노력이 최종현 회장이 우려한 SKMS의 '통상 경영법'으로의 회귀를 지적하기도 했다. 일례로, 그는 퇴직·이식(移植)관리에 소홀하면 안 된다는 최종현 회장의 노력이 타계 이후 흐지부지 되는 등 SKMS가 과거의 정신을 지키지 못하고 '통상 경영법' 범주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찌됐건 최 회장의 오너십은 시대가 흘러 아들 최태원 회장으로 이어졌고, 하이닉스 인수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최 회장은 지난 1978년 반도체 산업 진출을 모색했지만 석유파동으로 접은 SK의 숙원 사업을 30여년 만인 2012년 3월에 실현, 에너지·정보통신에 이어 반도체라는 제3의 신성장축을 확보했다. 여기에는 세계화를 지속적으로 강조한 전대 회장의 뜻이 십분 묻어났다.

SK하이닉스 공동 대표로 선임된 점도 그룹의 숙원사업에 오너십을 직접 불어넣겠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된다. 최 회장은 "그룹이 쌓은 경영 역량과 글로벌 네트워크 등을 총동원해 경영 최전선에서 직접 뛰겠다"며 글로벌 사업장을 직접 돌며 '현장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그의 뒤에는 △스킨십형 △전략가형 △이해관계자 가치관리형 경영자란 꼬리표가 뒤따랐다. 지난해 말에는 그룹 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 추구협의회' 의장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2004년부터 의장을 맡아온 최 회장은 모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략적 대주주'로써 글로벌 시대에 그룹의 성장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린다는 전략이다. '수펙스 추구협의회'는 대신 의장에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을 선임했다.

김 신임 의장은 그룹의 경영기획실 재무담당 임원, 구조조정추진본부장, SK주식회사 대표이사를 거쳐 SK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다. 김 의장은 그룹 자금담당자로 최종현 선대 회장을 도와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는 등 그룹 경영 전반에 대한 식견이 뛰어난 몇 안 되는 경영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일치단결해 SK의 기업문화인 SKMS와 수펙스 정신을 함께 이어 받아 기본과 원칙을 지키면서 실천해 나아간다면 많은 과제들을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큰 일 때마다 지적돼온 '이것', 오너십이 관건

최근 불협화음으로 떠오른 최태원-최재원 형제의 검찰 진술 번복에 새삼 이목이 쏠리고 있다. 도덕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는 게 주된 이유다. 최 회장은 지난달 22일 SK C&C 사내이사로 재신임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재계 호사가들은 SK그룹의 꼼수를 지적하고 나섰다. 일각에 따르면 그룹 오너가의 이번 진술 번복은 1심에서 모든 걸 부인했지만, 예상과는 다른 판결 선고에 전략을 바꾼 셈이다.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펀드자금 인출은 불인정 하면서도 펀드 조성에 관여했다는 점을 인정해 원심보다 낮은 처분을 기대할 것이란 설명. 게다가 징역 4년형 선고에 따라 사실상 경영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SK C&C의 사내이사 재신임도 사실상 가석방 등을 노리는 게 아니냐고 풀이되고 있다.

특히,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SK C&C에서 사내이사 재신임은 '수펙스 추구협의회'에서 물러난 최 회장이 여전히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고 회자되고 있다.

이에 대해 SK그룹 관계자는 "수펙스 추구협의회는 의사결정 기구가 아닌 협의기구로, 최고의사결정 기구는 이사회다"며 "SK C&C 등기이사도 책임경영 차원으로, 다른 기업처럼 책임 없이 배당만 받는 게 아닌, 무한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대주주로써의 책임을 말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도덕성 논란과 관련해 "재판의 핵심은 검찰이 기소한 것으로, 1심 때나 지금이나 핵심은 펀드 투자금을 누가 빼냈냐는 것이다"며 "검찰도 정황상 그렇지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고 도덕성 문제로의 접근을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또 "검찰은 펀드를 만들고 출자하게 한 다음 빼내는 것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보기 때문에 오해할 수 있다. 사실관계는 명확히 밝혀야한다"고 언급했다.

   최태원 SK 회장. ⓒ SK그룹  
최태원 SK 회장. ⓒ SK그룹
상황은 이렇지만, 앞서 SK글로벌 분식회계로 구속된 바 있는 최태원 회장과 당시 김창근 구조본부장을 두고 주가 폭락과 함께 도덕성 논란이 지적된 바 있다. 소버린 사태가 일어난 시기도 이 때다.

뿐만 아니라 최 회장은 SK하이닉스 인수 당시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가운데 대표이사에 선임돼 적절치 못하다는 반발을 일으키기도 했다. 권오철 SK하이닉스 사장은 당시 "반도체 산업 특성상 대주주의 빠른 의사결정이 필수다"며 "풍부한 경험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한 최 회장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국세청과 공정위가 대기업 제제를 강화할 것을 예고하고 나선 가운데 도덕성 논란을 부인하면서도 다소 애매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SK그룹. 닮은 듯 다른 그룹의 2세경영이 엉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재계는 여전히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