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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찬선의 이론조론 : 까치밥과 최저가 낙찰제

박찬선 넥서스커뮤니티 부사장 기자  2013.04.16 08: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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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옛 어른들은 까치밥이라고 하여 가을에 감나무에서 감을 수확하고 나서 몇 개의 감을 까치를 위해 남겨두었다고 한다. 그저 훈훈한 덕담을 넘어서는 선조의 지혜가 담긴 귀중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겨울을 앞두고 까치뿐만 아니라 여러 날짐승의 먹이를 남겨두는 것은 그들의 생명을 지키고 자연생태계를 조화롭게 유지하는데 분명 유익한 일이었을 것이다. 까치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나라의 프로젝트 수주 관행에서도 이러한 지혜가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최적격낙찰제, 부찰제, 제한적 최저가낙찰제 등 여러 가지의 낙찰 방식이 있지만 결론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원리이자 우리나라의 모든 경제활동의 근간은 최저가낙찰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이 글에서 최저가 낙찰제의 장단점과 폐해에 대해 논하며 제도개선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중소기업 경영자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소상공인과 기업이 공존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낙찰 방식에 대해 다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가슴 아픈 기억이지만 1994년 10월21일 아침, 출근과 등교로 바쁜 시간에 한강을 가로지르는 성수대교가 갑자기 붕괴하는 참사가 있었다. 어이없고 황망한 이 사건으로 안타까운 비극이 일어났고 원인을 분석한 결과 성수대교의 건설 이후 한 번도 하중검사를 한 적이 없었고 사용된 공법 또한 해외에서도 80년대 이후에 사용하지 않는 공법을 사용한 것이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최저가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이슈는 더욱 확대되었지만 이듬해인 1995년에 또 다시 부실변경공사로 인하여 삼풍백화점이 붕괴하여 수많은 생명을 잃는 끔찍한 사고를 겪게 되었다. 결국 그 해 말에 모든 정부공사에 최적격낙찰제라고 하는, 가격뿐만 아니라 업체의 수행능력과 사전심사 점수까지 반영한 개선된 제도를 적용하도록 법률이 개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에는 '건축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410억원 공사비에 6억원 가까운 감리용역비 예정가 프로젝트에 감리비 100원에 공사를 수주했다'는 식의 기사를 종종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과연 10여년전의 이야기에 불과할까? 아마 2013년 현재에도 이러한 현상이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2012년 2월2일 지하철 1호선 전동차의 고장은 최저가 입찰로 인하여 품질이 낮은 중국산 배터리가 납품된 것이 원인이었으며 최근에는 최고수준의 안전과 품질이 보장되어야 할 원자력발전소에 납품된 부품 수천 개가 중국산과 국산 짝퉁 부품 때문에 가동이 중단되는 믿기 어려운 사고들이 여전히 빈발하고 있다.

공공부분에서도 이러한 실정인데 최저가의 위력이 더욱 거센 민간부분, 특히 기득권을 갖기 어려운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에서는 최저가 낙찰제도의 절대적인 위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와 함께 최저가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은 경영자의 무능이며 기업의 경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질책하는 분위기마저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최저가제도와 관련된 다른 관점을 살펴보자. 우선 우리 모두가 구매자이자 공급자인 존재로서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여야 한다.

구매자는 프로젝트나 구매제품의 적정가격을 판단하고 평가할 만한 '의식', '역량'과 '의지'가 없어 보인다. 많은 분들이 이러한 표현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수 있지만 무조건적인 이익극대화를 강요받는 경영자와 담당자들이 공급사의 이윤과 장기적 발전까지 고려한 적정가격을 산정할 수 있다는 기대는 너무 지나치다고 할 것이다. 기능을 비교하고 진가를 이해하기에는 우리의 경쟁은 너무 치열하고 근시안적이다.

까치밥과 같은 여유나 배려는 사치이며 내 코가 석자인 처지에 상대적으로 힘없는 하청사를 이해하고 챙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으로 취급한다. 기업의 '갑', '을' 관계는 마치 쥐어짜고 책임을 전가하는 관계로 진행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하청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약간의 틈만 나면 담합하려고 하고 무책임하게 장담하고 출혈경쟁도 불사한다. 이곳에서도 고객의 입장과 이익을 헤아리는 지혜는 찾아 볼 수 없다.

챨스 피시먼의 저서 '월마트 이팩트(Effect)'는 90년대 후반 EDI를 도입하여 혁신적으로 생산성을 높였으며 현재 세계최대의 유통기업으로 성장한 월마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월마트 효과란 새로운 정보기술이나 경영기법을 통하여 혁신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최저가를 만들어내는 긍정적 효과를 의미한다.

   박찬선 넥서스커뮤니티 부사장.  
박찬선 넥서스커뮤니티 부사장.
그러나 월마트와 거래하던 최대공급사 중 50%는 파산하였으며 월마트가 입점하는 경우 수백 개의 지역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실제로는 3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 반면 지역상권이 몰락하게 되어 수많은 일자리가 없어지는 부정적인 면을 함께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경영혁신과 성장을 넘어 독점과 착취 수준으로까지 극단화되는 것을 경계하는 좋은 사례인 것이다.

무한경쟁이 아니라 적정경쟁, 최저가가 아닌 적정가, '할 수 있으면 다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절제하는 미덕'이 있는 지혜로운 기업이 될 수는 없을까? 까치밥과 같은 작은 배려와 여유만 있어도 어쩌면 서로에게 좀 더 유익한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