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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연구법으로 노동과 사회를 쓰다' 국회의원보좌관.학술가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中진출…어떤 집에 살아야 행복할까 출간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4.11 14: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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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이렇게 어렵고 방대한) 자료를 요청하시면 저희가 컴퓨터로 4시간은 돌려야 자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독재정권 시절, 학자를 꿈꾸던 한 대학원생이 고뇌 끝에 '창자를 끊는 것 같은 고통으로' 학업을 접고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여러 국가기관들로부터 어려운 자료를 요청하는 사람, 아무도 여태껏 만들거나 관심갖지 않았으나 국민생활 발전에 정말 필요한 자료를 찾아다니는 사냥꾼으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그리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경제와 사회 전반에 관한 고치를 짓고 비단실을 뽑아내듯 의미있는 저작들을 쏟아내는 프로 저술가가 됐다.

△부동산 계급사회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수도권 편) 등 저서와 △나는 어떤 집에 살아야 행복할까 △후퇴하는 민주주의 △리얼진보 같은 굵직한 공저를 써낸 손낙구씨의 이야기다. 이번 3월 하순 책을 펴낸(나는 어떤 집에 살아야 행복할까) 그를 만나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쉽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그의 저작 이력을 들어봤다.  

뒤늦게 '몸'이 기억한 연구자의 길

이번 책을 낸 이후 가까운 시기에는 다른 일을 벌일 여력이 없다고 한다. 그는 늘 바쁜 삶 때문에 아직 박사 과정 수료자다. 이제 논문을 준비, 심사를 통과하면 어엿한 박사가 되는데, 그간 집필해 온 책들에 열광해 온 독자들은 그를 사회학 연구자나 경제학도 출신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의 전공은 의외로 역사학이다.

1981년 대학에 입학한 그는 석사 과정을 다니던 중 정권에 항거하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을 갖고 있었다. 공부에 매진하는 학생 본연의 자세로 대학을 다니던 이들은 늘 '지식인의 의무'를 위해 거리로 나서는 많은 이들을 보면서 '부채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던 암울한 때다. 그도 결국 고민 끝에 노동운동에 참여했다.

그래서 그를 오랜 시간 노동운동을 해오던 이로, 특히 민주노총 대변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가 연구, 그것도 본래 가던 길과는 전혀 다른 사회와 경제(부동산 문제 포함)쪽으로 길을 잡은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국회에 들어가 의원 보좌관 생활을 하던 그는 제17대 국회를 마치면서 그간 펴냈던 보고서들을 책으로 묶자는 제안을 받게 돼 저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손낙구씨는 건국대에서 사학을 공부했다. 학부와 석사, 박사과정을 모두 한 곳에서 했다. 현재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 조국희 기자  
손낙구씨는 건국대에서 사학을 공부했다. 학부와 석사, 박사과정을 모두 한 곳에서 했다. 현재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 조국희 기자

다만 국회의 허다한 의원실들이 매일같이 쏟아내는 수많은 보고서와 보도자료 사이에서 의미있는 자료는 그다지 많지 않음을 감안하면 손질해 책으로 엮을 정도의 질을 담보하는 조사 성과들을 만들어 낸 배경과 이유가 남다를 법 하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이었던 것 같다. (노동운동을 하고 민주노총 등에서 활동하면서) 정책을 다루는 일 쪽으로 관심이 갔던 것 같다. (의원실에 근무하면서 피감기관들의 문제를) 파고들어 글을 완성하는 일도 좋았다"고 자료 연구에 빠져든 게기를 회고한다.

그는 "원래 옛날 하고 싶었던 일을 '몸'이 기억한 것 같다"며 웃었다. 늦게까지 자료를 파고 책을 읽고 행간의 의미를 궁리하는 일로 아침을 맞는 생활에도 체력이 받쳐주는 신기한 상황에 이만한 설명이 없을 것 같다.

연구방법 배운 적 없어 "파고 또 파고 검증하고 또 한다"

"역사 공부를 할 때는 원래 우리 사학이 '실증사학'이다 보니 자료를 찾고 또 찾는 게 당연하다. 그때부터 습관이 됐다"고 설명하지만, 통계나 자료분석 같은 사회과학적 공부가 필요한 부동산, 경제와 사회 영역을 캐는 현재의 역할을 생각하면 막연히 학부·대학원 때 배운 걸 접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비법은 '끊임없는 검증과 재검증'에 있다. "원래 독학으로 배웠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은 문제가 많다 보니 검증을 하고 또 해서 철저하게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기자들이 특종인 것 같으나 뭔가 미심쩍은 일에 '크로스 체크'를 진행하는 것과 같은 방법론을 스스로 터득해 검증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의 책들의 힘은 자료에서 나온다. "자료를 찾는 데 국회가 많은 도움이 된다. 방대한 장서를 갖춘 공간이다. 그리고 의원실에 근무하면 자료요청권이 있어서 이를 활용해 자료를 얻어내기도 했다. 자료에 미비한 부분은 이 통계에 나타나지 않은 원자료도 달라고 해 추적해 나가는 방식으로 자료를 모으고 구성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동굴, 비닐하우스 그리고 움막 등 열악한 공간에 사는 인구를 '기타 (주거지)'로 뭉뚱그려 몇 명이라고 발표한 자료만 있다면 이 자료를 만든 기관에 전화를 걸어 기타의 항목에 같이 들어가는 개념이 어떤 것들이 있고, 그 세부항목별로 몇 명인지를 재차 묻는다. 

세부항목까지 조사했다 나중에 합친 게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모호하게 조사된 경우에는 이런 자료를 나중에라도 조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국민생활 발전에 꼭 필요한 일, 도와달라" 간곡한 요청

하지만 행정기관 혹은 연구기관들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있는 자료도 없다고 시치미 떼기도 하고, 부실한 자료를 양만 방대하게 보내기도 한다. 이런 '자료 숨바꼭질'에 대해 그는 "뭔가 알고 하는,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면 답을 잘 챙겨준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프로세스로 자료를 모은 게 있을 것 같다고 방법론까지 알려주면, 정성껏 자료를 챙겨줄 수밖에 없다"는 비법을 공개하면서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또 자료가 더 이상 없다며 난색을 표하는 곳 중에 일부에는 "국민생활 발전에 꼭 필요한 자료인데, 자료가 더 없는가? 여기까지나마 연구한 이도 당신밖에 없다. 추가로 몇 가지 더 자료를 추적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가장 고마운 자료공급처 중 하나는 바로 통계청. 한 번은 "이런 어렵고 아무도 구하려 시도를 안 했던 자료를 만들어 내려면 (원자료: Raw Data를 가지고) 꼬박 4시간은 컴퓨터를 돌려야 한다"는 항의 아닌 항의를 받기도 했지만, 늘 다양한 자료와 추가로 만들어 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234개 시·군·구 자료만 있어? 3573개 읍·면·동 자료까지 추출하자  

   손낙구씨의 저서 '부동산 계급사회'가 중국에서도 발간돼 눈길을 끈다. = 조국희 기자  
손낙구씨의 저서 '부동산 계급사회'가 중국에서도 발간돼 눈길을 끈다. = 조국희 기자
이렇게 다양한 방법과 노동집약적 연구 열정, 그리고 주변의 도움에 힘입어 그는 다들 막연히 "그냥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던 추측들을 실제 연구 성과로 '구성·입증'해 내는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나 '부동산 계급사회'를 보면 강남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관을 갖고 있는지, 서울 한복판이자 금융 중심지인 명동 그리고 회현동 일원에 쪽방 생활을 하는 불우한 이들이 얼마나 사는지를 손살피 살피듯 짚어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저서들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자료로 '점철'돼 있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 그래서 쉽게 읽어내려가지만 바로 뒤돌아 서면 잊혀지는 킬링타임용 소설만큼은 아니어도 나름의 인정을 받고 있다.

버블 일어난 중국도 그의 책 관심…번역판 나와 

심지어 중국에서도 그의 책이 번역돼 나올 정도다. 중국 역시 부동산 버블을 한 지렛대로 삼아 현재의 고도 성장을 만들어 왔는데 이제 위기감이 중국 내부에서 일고 있고, 여기에 대한 해법 중 하나로 우리의 연구 결과가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지난 연말에 중국에서 '부동산 계급사회'가 출간됐다"는 그는 이제 곧 논문이 통과돼 박사가 되면 '사학'에서의 연구자로서도 독립적인 첫발을 내딛게 된다. 뒤늦게 학위 과정을 다시 밟아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그간 해오던 노동과 경제 연구 틀이 있어서인지, 우리나라 기업과 노조의 기원 같은 하이브리드한 주제에 눈길이 가더라고 고백한다. 이제 아마추어 학자이자 프로 저술가인 그가 독학으로 배운 경제와 부동산학, 사회연구을 역사적 관점에서 꿰려고 한다. 어떤 성과가 더 나올지 주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