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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구루마, 그 흉포했던 과거

정금철 기자 기자  2013.04.10 12: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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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많이 고민했습니다. 이 사진을 인사이드컷에 사용해도 되는 건지… 무작정 사진은 찍었지만 주제를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제목을 붙이는데도 수십 번 백스페이스(Back space)와 델(Delete)키를 연사하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아름다움은 온갖 미사여구로 장식할 수 있지만 소외와 그늘을 표현할 수 있는 수식은 의외의 망설임이 따랐습니다. 아니 그전에 판단도 서지 않았습니다. 저 인물의 인생이 고달픈지 행복한지 추상적 잣대를 대는 것도 제 주제를 넘어선 것 같았습니다.
 
  사진은 신분을 밝힌 후 당사자 양해를 구하고 찍었습니다. = 정금철 기자  
사진은 신분을 밝힌 후 당사자 양해를 구하고 찍었습니다. = 정금철 기자

서울의 중심을 기치로 내건 중구(中區). 남대문로 명동지하쇼핑센터 부근에는 손으로 미는 수레 위에 몸을 얹고 구걸하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왠지 중구의 복지상황을 짚어봐야 할 것 같아 올해 사업예산서를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작년 635억4000만원보다 16.07% 늘어난 737억4000만원가량을 복지예산으로 편성, 트집을 잡기 까다로울뿐더러 화사한 봄에 색다른 읽을거리를 써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황급히 글틀을 선회했습니다.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니 나름 푹신하게 개조된 수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퀴를 달아 사람이 굴릴 수 있게 만든 수레. 흔히들 '리어카(rear car)'나 '구루마'라고 부르죠. 대충들 아시겠지만 두 단어 모두 바른 것이 아닙니다. 리어카는 '핸드 크래프트(hand craft)'가 옳은 표현이며 구루마(くるま)는 '차(車)'의 일본어 훈독입니다.

다만 과거 기록을 보면 구루마가 차로 불릴 만한 꽤나 큰 사건이 종종 발생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끔찍한 사고였던 만큼 흥미를 유발한다고까지는 말하기 껄끄럽지만 어쨌거나 요즘과는 다른 예전 모습이 무척 새롭기는 합니다. 간략히 몇 가지만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1925년 6월 평안남도 대동강 인근 항만도시 진남포 비석리에서는 4세 여아가 흙구루마에 치여 왼쪽 팔이 절단되는 사고가 있었다고 하네요. 변전소에서 놀다가 변을 당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답니다. 

1930년 12월 전남 여수에서는 흙구루마가 선로 위에 있던 것을 모르고 통행하던 기차가 탈선해 다수의 사상자를 낸 사고가 있었네요. 도로 공사장에 쓰는 흙구루마에 깔려 70세 노파가 참혹하게 돌아가신 일은 1933년 5월 용산에서 있었고 8세 소녀가 손구루마에 치어 목숨을 잃은 참사는 1935년 4월 인천에서 발생했습니다.

1937년 11월 전북 이리(현 익산)에서는 농장 앞 길가에서 놀던 유아를 구루마가 밟고 지나가 어린 삶을 끝내게 된 비극도 있었습니다.

절도사범도 있었는데요. 1937년 7월 한 대담무쌍한 절도범은 대낮에 뚝섬 제방공사장에서  '레루(레일)' 십여 개를 구루마에 대고 훔치다가 적발되기도 했답니다. 이 외에도 1930~40년 사이에는 매년 몇 건씩의 크고 작은 구루마 사고가 이어졌는데요. 구루마 관련 기사는 196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언어순화 바람이 불면서 찾기 힘들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