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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장국영, 그가 떠난 자리에 사랑은 남았다

전지현 기자 기자  2013.04.08 18: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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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지현 기자  
= 전지현 기자
[프라임경제] 2003년 4월1일. 10년 전 이날, 홍콩 국민배우 장국영의 자살 소식은 만우절이었기에 거짓말처럼 전해졌습니다. 올해로 벌써 10년이 됐죠. 지난 4일 방문한 홍콩 침사추이역 근처 바닷가 보행도로. 홍콩이 배출한 스타들의 손도장이 곳곳에 기념처럼 새겨진 이곳 스타의 거리 바닥 한켠에는 애틋한 기운이 전해져 숙연해 지는 곳이 있었습니다.

기쁨이 가득한 거리에 그를 향한 팬들의 사랑이 남겨진 사진 속 모습을 통해 장국영을 한 번 더 기억하는 계기를 맛봤습니다.

그는 1956년 홍콩의 부유한 양복재단사 집안의 10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어려서 부모가 이혼하고 부모 중 누구도 가정을 돌보지 않아 풍요 속의 빈곤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죠.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영국 리즈대학 섬유관리학과로 유학을 떠났지만 졸업을 하지 못한 채,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습니다.

이후 무명생활을 하던 중 1986년, 오우삼 감독의 영화 ‘영웅본색’의 주인공으로 발탁되며 빛을 발합니다. 홍콩 느와르가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영웅본색은 국내 청소년들이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다니는 유행을 불러일으킬 정도가 됐던 거죠. 그 영화 속, 전화 부스에서 죽음을 맞으며 아내에게 갓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던 장국영은 선 고운 외모와 선한 눈망울로 여심을 흔들기도 했습니다.

장국영은 천녀유혼, 아비정전, 부에노스 아이레스 등의 영화를 통해 훌륭한 연기력을 보이며 80년대를 풍미합니다. 멜로 연기의 대명사가 되며 그는 국내 한 초콜릿 TV-CF에 모델로 등장합니다. 국내 팬들은 아름다운 영상미에 더해진 그의 목소리에 흠뻑 빠져 뜻도 모르는 가사의 노래를 따라 불렀던 시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던 그는 1990년 도쿄가요제 참가했을 당시 천안문사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은퇴를 선언해야 했습니다. 당시는 10대 소녀팬들이 그의 은퇴로 인해 자살소동을 일으킬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릴 때였습니다.

은퇴 선언보다 더 충격적인 소식은 10여년 뒤에 또 전해집니다. 바로 장국영이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4층 객실에서 투신자살했다는 소식이었죠. 그의 자살은 '동성애를 둘러싼 삼각관계의 고통', '우울증' 등이 원인인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성적소수자였기 때문에 우울증으로 고생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가 된 셈이죠.

장국영의 유산은 약 460억원. 그의 오랜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당학덕이 물려받으며 팬들은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자살이 아닌 타살의혹들을 지금껏 제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망자는 말없이 떠났고, 이제는 추억이 되어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올해는 10주년을 맞아 그를 향한 추모 열기가 더욱 뜨겁다고 하더군요. 한국 영상자료원은 지난 6일 그의 추모 특별상영회를 진행했는가 하면 중화권의 한 채널에서는 4월을 '장국영 추모의 달'로 정해 그의 영화를 특별 편성한다고 합니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세상에서 존재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10년이 지난 오늘도 그의 기념석엔 헌화 행렬이  이어지는 것을 보니, 아마도 장국영은 먼 세상에서도 팬들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해 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