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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에 도전해온 '포돌이', 이번 목표는 '안철수'

초반선전 허준영, 조직표몰이 기대…'원칙정치' 통할지 관심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4.08 07: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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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장모님께서 제 직업을 부인하신다면 이 결혼 무르겠습니다."

24일 치러지는 재·보선에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를 노리는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는 경찰청장, 코레일 사장 등을 지낸 이력의 소유자다. 대개는 이 정도로 그를 기억하고,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경찰청장 시절 내부 평이 좋았다든지, 청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정치권 진출을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는 정도의 기억이 추가된다. 더러 풍채좋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위트있다는 평도 더해진다.

그런 그가 대선주자급 정치인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대항마로 선전하고 있다. KBS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3일 발표 결과를 보면, 안 후보의 지지율은 44.5%, 허 후보는 24.5%였다. 이에 조금 앞선 JTBC-리얼미터 조사(3월26일 실시)에서는 안 후보(38.8%)가 허 후보(32.8%)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안풍'을 막는 게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던 당초 분석들을 깨는 이 같은 선전을 펼치는 그에게 새누리당의 조직력까지 더해져 뒷심이 발휘되면 막판 추격전을 기대해 볼 만 하다는 전망이 덧씌워지고 있다.

'안철수 프레임'을 깨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허 후보에게 '프레임에 대한 도전'은 낯선 개념이 아니다. 그의 지난날은 '프레임'에 끼워맞춰지는 것을 거부해 온 '강골' 기질로 대변된다. 위에 소개된, '경찰 사위'가 싫다면 결혼을 무르자는 외람되지만 강경한 발언을 빙모에게 한 것은 1980년 외교관으로 입문(외무고시 14회)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던 그가 몇 해 후 경찰 간부로 전직하면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지금은 세간의 인식이 좀 달라졌을지 모르나, 당시에만 해도 외교관이 경찰(고위직이라고 해도)보다 좋다는 평이 컸다. 장모로서는 외교관이던 사위가 경찰 제복을 입게 된 걸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웠던 듯 지인의 질문에 "요새는 내무부(현재의 안전행정부. 경찰은 옛 내무부를 상위조직으로 뒀음)에 있다"고 얼버무렸다고 한다. 

경찰직은 자긍심과 사명감 없이는 수행하기 힘든 직업이니 가족들부터 내 선택을 성원해 달라는 강경책을 꺼내며 시작된 프레임 깨기는 이후로도 계속돼 그의 공직 생활 대부분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된다.

남대문서장 시절 "정치인 프레임에 이번 사건 끼워맞추지 말라"

1997년 남대문경찰서장으로 일하던 허 후보는 그해 9월29일 구 한나라당(현재의 새누리당)이 연 집회에 괴한이 난입해 당직자 등을 폭행한 사건으로 '야당 탄압 프레임'에 시달리게 된다.

야당을 탄압한 정치적 사건의 배후를 수사기관이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지의 문제'로 당시 한나라당이 몰아붙이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 후보는 10월 국회 행자위에 증인으로 출석해 "배후가 있다고 미리 그림을 그리고 사건을 보면 그런 의문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경찰이) 차분히 수사하고 있다"며 '프레임 그리기'에 강하게 반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청와대 치안비서관·서울경찰청장 등을 두루 거쳐 경찰청장으로 발탁됐다.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가 노원병 지역구를 돌며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허준영 후보 선거캠프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가 노원병 지역구를 돌며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허준영 후보 선거캠프
경찰청장 재직 시절에는 '수사권 독립'을 주장하며 수사의 최고 주재자 역할을 해 오고 있는 검찰에 도전했다. 경찰과 검찰간의 대등협력관계라는 새 프레임을 그리고 싶었던 그의 꿈은 그러나 실현되지는 못했다(지금도 검·경은 상명하복관계).

그를 경찰청장 임기를 모두 채우지 못하게 하고 물러나게 한 건, 다름아닌 그를 발탁했던 참여정부의 사실상의 압박 때문이었다는 평가다. 농민들이 시위 도중 경찰 진압에 다쳐 결국 사망하는 일이 생기면서 정치권에서는 경찰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청장을 바꾸자는)이 팽배했다. 이런 당시 여권 기류에 경찰 조직 보호를 위해 맞서던 중 결국 자신이 책임지고 옷을 벗기로 결정했다.

이후 코레일 사장으로 부임해 코레일 발전 기치를 들고 업무에 매진했다. 2009년 전국철도노조의 전면파업을 하루 앞두고서는 '국민 여러분! 제발 철도노조좀 말려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내는 등 강성 노조에 굴하지 않는 공기업 사장으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당시 그의 강경 대응 기조에 일부 우려와 불만도 있었지만, 그는 철도노조가 불합리하고 무리한 요구,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단협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확신 하에 강경한 개혁을 밀어붙였다.

"정당하지 않은 요구 노조와는 상대 못해" 뚝심 코레일 사장

이렇게 이례없이 강경한 코레일 사장으로 '강한 노조+낙하산 사장=어중간한 타협(이 만든 느슨한 분위기에 급여좋은 직장)'이라는 공기업의 고질병 프레임을 깨는 역할을 했던 그는 정치권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노원병 주민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허 후보는 지난 번에도 이 지역에서 도전했다 낙선한 바 있고, 이번 출사표를 던지면서는 △창동 차량기지 조기 이전과 △경전철 동북선 연장 △과학고 신설 유치 등 5대 공약을 제시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는 '안풍'은 그저 대선주자급 정치인이면서도 실상 정치 신인이라는 모호함에 다름아니다.

그런데다 막상 안풍과 정면 대결을 벌인 지금까지의 상황에 뒤쳐지고 있지만 여당 프리미엄이라는 점을 살려 막판 역전을 바랄 수 있는 격차로 집계되면서 허 후보는 안풍 잠재우기에 본격적으로 열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허 후보로서는 이렇게 조직력에 힘입은 선거를 도모해 볼 수 있다는 '현실적 문제' 외에도 지역구에 기여할 수 있는 지역일꾼에 우선권이 있다는 '나름의 원칙'에서 안 후보에게만큼은 밀릴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풍이라는 여론몰이 자체가 일종의 '중앙정치 중심의 프레임'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더 그렇다. 그런 점에서 허 후보는 4일 SBS 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을 통해 안 후보와 진보진영의 단일화 이슈와 관련해 "굳이 이기기 위해 단일화하겠다면, 김지선 진보정의당 후보 쪽으로 단일화하는 것이 맞다"고 안 후보를 겨냥했다.

오히려 어려울 수 있는 '노동운동가와의 1:1 대결'도 마다않아

이 같은 허 후보의 요구는 일종의 레토릭(정치적 수사)이 아니냐는 풀이도 나오지만, 그의 진정성과 정치관(더 나아가서 공직관)을 엿볼 수 있는 케이스라는 해석도 나온다. 즉 정치공학적으로는 (특히 낙선 가능성과 그 이후 정치적 이력 관리 면에서도) 안 후보 같은 거물을 상대하는 게 오히려 허 후보로서 유리하다.

김 후보는 이 지역구에서 금배지를 달았던 노회찬 전 의원의 배우자라는 이점(노 전 의원이 '삼성떡값 폭로 사건'으로 의원직을 잃어 이번 재보선 지역에 이 지역구가 포함됨), 그 자신이 '인천 블랙리스트 사건'이나 '부활절 새벽예배 사건' 등으로 유명한 노동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라는 배경도 갖고 있다. 

즉 코레일 경영 탄력화 드라이브를 건 인물로 기억되는 허 후보로서는 오히려 피하고 싶은 노동계 대변자와의 1:1 승부(단일화는 저쪽에 몰아주고 안 후보는 빠지라는)를 라디오 방송에서 요청한 것이나 다름없다. 오히려 힘든 싸움이 좋다는 이 같은 의식의 표출은 허 후보가 가진 '중앙정치 중심의 프레임'이나 '거물들의 정치적 논리에 따라 정치지형 자체에 변동이 오는 구조'에 도전해 보겠다는 평소 소신의 발로로 읽힌다.

이미 오래 전 경찰 제복을 벗었지만, 허 후보는 아직 경찰 조직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 임기 중도 사퇴를 거부하다 결국 밀리듯 옷을 벗은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도 보인다. 평생을 일궈온 '포돌이의 꿈'은 이뤄질 것인가. 그 동안 많은 고정관념의 프레임들을 깨 온 그의 앞에 이제 '안철수 프레임'이라는 도전 과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