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인터뷰] "감정노동은 서열노동" 김태흥 감정노동연구소 소장

'감정노동' 새로운 정의 필요, '내 감정·인성 파괴 노동' 해결하려면…

조국희 기자 기자  2013.03.27 17:37:04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여보세요 /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 오고해서 / 오랜만에 빗속을 걸으니 옛 생각도 나데." 라면시장 부동의 1위였던 삼양라면은 1989년 '우지파동' 사건으로 경영위기가 찾아오자 개그맨 이휘재 등을 광고모델로 발탁해 '현대인들의 힘든 삶 속 라면 한 그릇'이란 공감 포인트로 재기의 발판을 만들었다. 당시 인기가요였던 '그냥 걸었어'를 바탕으로 기획된 이 광고의 중심엔 김태흥 감정노동연구소 소장이 있었다. 광고대행사 부사장까지 올랐던 그가 '감정노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공공의 눈에 보이는 표정이나 몸짓을 만들어내기 위해 감정을 관리하는 일." 1983년 미국 캘리포리아 주립대 사회학과 교수인 일리 러셀 혹실드가 집필한 'The Managed Heart'에서 처음 '감정노동'이 언급됐다.

김태흥 감정노동연구소 소장은 '서비스(CS) 교육'이란 개념조차 없을 당시 대단한 '선견지명'이라고 평가했지만 30여년이 흐른 만큼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갑을 관계가 심한 편에 속하는 광고업계에서 20여년간 근무해보니 감정노동에 저절로 관심이 생겼다"며 "놀랍게도 국내에서 감정노동에 대한 연구, 조사를 전문적이 하는 곳이 없어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감정 폭탄 돌리기, 고리부터 끊어야…

   
김태흥 감정노동연구소 소장은 "갑을 관계가 심한 편에 속하는 업계에서 근무해보니 감정노동에 저절로 관심이 생겼다"며 "감정노동자에게 '방어권'과 '휴식공간 제공'이 감정노동교육과 더불어 법제화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조국희 기자
김 소장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로 감정노동이 더 극대화되면서 '본인 감정까지 자본에 예속돼 상대방의 무리한 요구에도 웃음과 친절을 팔아 내 감정과 인성이 파괴되는 노동'으로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에 더해 감정노동에 대한 일부 정의만 있을 뿐 구체적인 솔루션이 없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골자다.

김 소장은 "강의를 하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백화점의 진상 손님은 은행 직원, 은행에서 가장 진상 손님은 옆 마트 직원이다"라며 '감정 폭탄 돌리기'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수많은 고객들 중 1~2%에 속하는 속칭 '진상 손님'에게 상처 받은 노동자들을 위해 '힐링'을 주제로 각종 프로그램이 등장했지만, 문제는 모두 '힐링'에 치우쳐 있어 현장에 복귀한 뒤 또다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광고제작자였던 과거 경험을 살려 POP(point of purchase) 광고를 응용해 '감정노동 바로 그 순간(P.O.E, Point of Emotional labor)'이란 뜻으로 마인드컨트롤 능력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업무에 그 순간에 심리적 상처를 줄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노동자 권리, 교육 의무화 시급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 특성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노동 접점에 있는 직업으로 컨택센터(콜센터) '상담사'를 떠올린다.

최근에는 공공기관과 금융권 컨택센터를 중심으로 고객이 언어폭력을 가할 경우 상담사가 세 번의 경고 끝에 전화를 끊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하는 등의 노력을 보여줬지만, 홈쇼핑 컨택센터 등 대부분의 상담사는 고객이 전화를 끊을 때까지 그 폭력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유통공사에 걸려온 한 건의 민원전화에 사직을 요구했던 사건을 보면서 위탁, 파견직 등 불안한 일자리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말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꼬집었다.

김 소장은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성교육 의무화가 법으로 규정돼 국민들의 의식전환을 불러왔던 것을 예로 들어 법으로 '감정노동 교육 제도'를 만들어 감정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 고객이 맛없는 고기를 굽는다며 마트 시식코너 아주머니께 침을 뱉더라"라며 "고기를 굽던 아주머니는 그저 죄송하다고 1시간동안 사과하다 결국 무릎을 꿇은 모습까지 봤는데 이건 살인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어 "감정노동자에게 그 상황을 피할 수 있는 '방어권'과 '휴식공간 제공'이 감정노동교육과 더불어 법제화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