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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탐방 19] 아시아 최대 독립예술제 주인공…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올해 벌써 16번째 축제… 세계 최고축제 꿈꾸는 이들의 '특별한 사회공헌 스토리'

이보배 기자 기자  2013.03.25 18: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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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역동하는 젊음, 창조적 활동. 본지 기획 열아홉번째 사회적기업 '서울 프린지네트워크(오성화 대표, 이하 프린지)'의 첫 느낌이다. 프린지는 매년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에서 '프린지 페스티벌'을 진행한다. 올해로 16번째를 맞는 프린지 페스티벌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독립예술제로 유명하다. 무대에 설 기회가 적은 예술인들에게는 공연의 자리를 제공하고, 시민들에게는 다양한 문화예술적 볼거리를 제공한다. 대한민국 독립예술계는 물론 아시아, 나아가 세계 최고의 독립예술제를 꿈꾸는 프린지를 만나봤다.

꽃샘추위가 매섭던 지난 22일 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다. 느닷없이 찾아온 추위에 발을 동동 굴러가며 찾아간 프린지는 운동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경기장 4층에 위치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하얀 머리카락이 매력적인 오성화 프린지 대표가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울했던 그 시절 '창작가 목소리 띄울 공간 만들자' 출발점 

오 대표에 따르면 프린지는 1998년도에 활동을 시작했다. 예술가들이 독립예술제라는 축제를 만들었고, 독립예술제의 사무국이 바로 프린지의 뿌리다. 2002년 서울 프린지네트워크로 명칭을 바꾸고 매년 진행하는 축제는 프린지 페스티벌이라고 명명했다. 

프린지가 처음 활동할 무렵은 IMF로 인해 나라 전체의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었고, 문화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대중문화는 꾸준히 성장했지만 상업적 흐름이 너무 강해졌다. 반대로 예술계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기존 분위기를 이어갔다.

젊은 창작자와 정해진 틀과는 다른 활동을 원하는 예술가들이 많았지만 이를 인정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이로 인해 젊은 창작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사라졌다.

   
"미미 시스터즈 기억나?" 2011년 프린지 페스티벌 오프닝 당시 장기하와 얼굴들로 이름을 알린 미미 시스터즈가 행진하고 있다. ⓒ 프린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프린지의 활동이다. 사회적 분위기와 예술적 고민, 대중의 선택이라는 삼박자가 어우러질 수 있는 현장과 판을 만들려 한 것이다.

오 대표는 "예술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예술가로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독립예술가의 존재를 존중하고 그들 역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고, 시민들과 호흡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예술가뿐 아니라 시민 역시 내면의 감성을 창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프린지의 활동은 벌써 16해째를 맞았다. 강산이 열 번 넘게 변하는 동안 프린지는 축제의 명칭을 바꿨고, 그러는 동안 '독립예술의 터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프린지의 핵심사업은 앞서 말한 것처럼 '프린지 페스티벌'이다. 매년 여름 홍대 인근에서 진행되는 축제는 20일 안팎으로 진행되고 15만명에서 18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제법 큰 규모의 유명한 행사다.

음악, 연극, 퍼포먼스,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거리와 실내에서 쉴 새 없이 진행된다. 예술을 사랑하고 열정과 끼는 충분하지만 공연의 기회가 없어서 자신의 예술성을 대중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젊은 예술가들이 공연의 주축이 된다. 예술의 다양성과 공평한 기회를 받지 못했던 예술가들의 참여가 대부분인 만큼 "심사를 하지 않는다"는 게 프린지 페스티벌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와 관련 오 대표는 "심사를 하는 순간 무대에 설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되는데 사람의 감성을 흔들 수 있는 예술이라는 분야에서는 심사가 필요하지 않다"며 "작품 의미나 평가는 관객이 판단하는 것이며 하나의 예술을 사회적 지위 혹은 경력이 풍부한 다른 예술가가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예술 자체가 사회공헌" 오성화 프린지 대표는 예술 자체가 사회공헌활동이라고 밝히며, 사회적기업이 목적이 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김태형 기자

다만 프린지는 페스티벌에 공연자가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페스티벌의 주제와 진행 방향에 동의하는 공연자만을 무대에 올리고, 부득이하게 작품 한 편 당 공연은 3회 정도로 제한을 두고 있다.

프린지의 두 번째 활동으로 '예술공작소'를 들 수 있다. 예술공작소는 예술창작과 교류의 과정이 벌어지는 일상 공간으로 교육, 토론, 공유를 바탕으로 한 상시적인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독립예술을 지원하고, 예술가 중심의 매개공간으로 가꿔나가고 있다.

이어 페스티벌에 참가한 예술가들이 향후에도 좋은 공연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국내외 여러 축제에 다리를 놔주기도 하고,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제작, 진행하기도 한다. 또 국내 유일의 독립예술 축제를 진행하다보니 국내에는 비교·성장할 단체가 없어 자연스럽게 국내에서 외국으로 눈을 돌렸다. 국내 문화예술단체와의 교류는 물론 해외창작교류워크숍을 통해 국가의 경계를 넘은 예술가 간 메소드를 나누고 있다.

◆예술 그 자체가 '사회공헌 활동'

그렇다면 사회적기업으로써의 프린지는 어떤 모습일까. 오 대표는 프린지의 활동이 10년이 넘어가면서 건강한 수익을 냄과 동시에 사업을 지속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운을 뗐다.

그는 또 2007년 '사회적기업'이라는 인증제도를 알게 됐고, 주변에서 "프린지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사회적기업에서 하는 일이다"라는 평가를 해줬다고 말을 보탰다. 긍정적인 에너지 확산과 자본주의 구조나 사고방식에 대한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프린지 아니냐는 격려가 뒤를 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린지는 자만하지 않았다. 사회적기업이라는 틀이 예술단체에 확장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을 계속 한 뒤, 2009년 사회적기업 신청 등록을 했다. 이후 프린지는 1년 만인 2010년 사회적기업에 선정됐다.

사회적기업 선정 이후 프린지는 더욱 입소문을 타게 됐다. 서울시 이곳저곳에서 사업제안을 먼저 해왔다. 지난해에는 서울시가 진행하는 식목행사를 문화적 측면에서 기획하기도 했다.

기존 식목행사는 땅을 파고 삽질하는 모습을 기념촬영한 뒤 나무만 심고나면 행사가 끝이 난다. 시민들은 따분하게 공무원들이 땅 파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고, 행사에 참여한다 해도 같이 삽질(?)이나하는 게 전부다.

프린지는 제일 먼저 생각을 전환했다. 시민과 공무원 나아가 박원순 시장이 함께 할 수 있는 식목행사를 기획했다. 단상을 없애고 모종을 심은 상자텃밭으로 무대를 꾸몄다. 행사 이후 상자텃밭은 시민들에게 증정했고, 시민들에게는 행사에 참여하려는 이유를 사전에 글로 받았다.

현장은 시민들의 이야기로 꾸며졌고, 식목행사 중간 아이들은 산에 버려진 나무 조각을 가져와서 전문가들과 함께 장난감을 만들었다. 프린지의 전문분야인 공연도 이어졌다.

단순하고 딱딱한 과정으로 끝날 수 있었던 식목행사는 따뜻한 감성이 휘돌아 감는 훈훈한 어울림 마당으로 마무리됐고, 프린지에게 그날의 식목행사는 공연과 축제만 기획 하던 것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기획으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수익금 전부 축제에 모조리… 예술가들에 기회 제공

그런가 하면 오 대표는 프린지의 활동 자체가 '사회공헌'에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예술이라는 분야는 이미 사회공헌활동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방안에서 혼자만 하는 예술활동은 사회공헌이라고 할 수 없지만 밖으로 나와 관객과 호흡하고, 감성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 예술활동 안에는 이미 사회공헌이라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논리다.

여타의 다른 사회적기업과 다른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생산물을 만들어 판매하는 업종의 사회적기업에게 '사회공헌'은 사업 목적과 별개로 챙겨야 하는 하나의 숙제일 수 있다. 가령 월수입의 몇 %정도를 사회공헌활동에 사용 한다거나, 직원들이 돌아가며 봉사활동을 하는 등의 방식이다.

하지만 프린지는 다르다. 프린지 페스티벌과 독립예술을 위해 수익활동을 하고 달성한 수익금 전부를 다시 축제와 예술분야에 쏟아 붓는다. 예술의 순환을 통해 기회를 잃은 예술가들에게는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활동에 목마른 시민들에게는 여러 분야의 예술을 느껴볼 수 있도록 돕는 일 자체가 사회공헌 활동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수익이 남지 않는 축제를 왜 매년 진행하느냐고 묻지만 독립예술 활성화를 기반으로 하는 프린지 페스티벌 사업은 프린지의 고유목적사업인 동시에 프린지가 존재하고 성장하는 이유다.

   
"우리가 프린지의 주역" 최근 프린지네트워크는 올 여름 진행 예정인 제16회 프린지네트워크 준비에 한창이다. = 김태형 기자

다만 프린지도 '일자리창출'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다. 일반적으로 사회적기업에서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 예를 들어 빈곤층이나 취업이 힘든 장애인 등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프린지가 선택한 계층은 '청년'이다.

정규직으로 취업이 힘들어 여러 회사 인턴을 전전하는 청년들. 창작·예술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의 취업은 더욱 힘들다. 일반 기업에서 원하는 전공자가 부족한 이유에서다. 때문에 여러 극단을 돌며 예술활동에는 참가하지만 안정감이 없다.

이를 위해 프린지는 보이지 않는 인력끈과 예술청년들의 연결에 힘쓰고 있다. 잘하는 분야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파악해 국내외 곳곳에서 진행되는 축제와 예술행사 등에 소개하거나 추천,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사소한 노력으로 보이겠지만 노력하는 한 감동적인 순간은 찾아온다. 2003년도에 자원활동가로 만났던 예술가가 10년 뒤 미술계에서 굉장히 유명해졌다거나, 아르바이트로 잠깐 일했던 청년이 규모가 큰 기획사의 공연 기획 담당자가 돼 있다거나 하는 경우가 바로 그때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중히 여기고, 예술과 관객의 만남을 존중하는 프린지의 향후 목표는 무엇일까. 오 대표는 "월드컵경기장에 둥지를 튼 이후 이 곳에 다른 변화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졌다"며 "접근이 어려웠던 한국의 공공기관을 상징하는 사고방식에 균열을 내고 다양하게 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을 흐렸다.

   
"식목행사 기획도 우리가" 프린지네트워크는 지난해 서울시 식목행사를 직접 기획, 시민과 공무원, 서울시장이 함께하는 뜻깊은 자리를 만들었다. ⓒ 프린지

이어 "'공유의 경제'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시민이라고 해서 계속 소비하는 위치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든, 옆에 있는 사람이든 함께 이야기 하고 공유하고 나누는 활동 자체를 문화영역에서 해보고 싶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경기가 없으면 사용하지 않는 공간인 월드컵경기장을 누구나 이 공간에 와서 공간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설명이다. 문화적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경기장, 고정관념을 벗어날 수 있는 문화적 기획이 2013년 프린지가 선택한 변화의 첫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