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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혁 노동환경硏소장 "감정노동자, 시민들이 도와야"

사회적 성숙만이 감정노동·비정규직 사각지대 해법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3.25 09: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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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최근 감정노동의 그늘, 감정노동자의 고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응대해야 하는 직업, 자신의 감정과 무관하게 행동해야 하는 사람들을 '감정노동직' 또는 '감정노동자'라고 한다. 이 같은 직업은 점차 확대되고 종사자도 늘고 있지만 사회적 제도나 회사의 처우는 충분하지 않다. 이 영역 근로자 중 많은 수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유다.
 
임상혁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아직 발전하지 않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보는 전문가다. 임 소장이 일하고 있는 연구소의 모체인 녹색병원 자체가 원래 직업병인 원진레이온 피해자들의 보상금으로 설립된 공익적 기구인 만큼 아직 아무도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노동계의 음지'인 감정노동자, 비정규직들의 노동환경과 건강 영역에 더 큰 사명감을 갖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돌아온 임 소장을 인터뷰해, 노동계의 최신 현안인 감정노동자 문제에 대한 의견을 간략히 들어봤다.

-감정노동에 대한 관심이 근래 늘고 있지만 체계적 연구나 대책 마련 등은 아직 요원하다고 할 수 있다. 왜 아직 전인미답 상황인가?

▲감정노동(에 대한 대책 연구)이라고 하는 게 왜 전인미답 상태냐면, 외국에서는 감정노동을 '사람을 상대하는 노동'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외국과 달리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다.

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노조가 강한 곳부터 연구 등이 발전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은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않은 경우가 (감정노동자들이 속한 직군, 직장에) 많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감정노동 종사자들인 백화점 판매점원 문제는 어떻게 보나?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1987년 한양대 의대 본과 2학년이 되면서 '노동과 건강 연구회'에 참여한 이후 관련 영역에서 활동해 왔다. = 김태형 기자

▲백화점 직원들 같은 경우 대부분 비정규직이라는 문제와 복잡한 구조, 즉 백화점과 매장의 관계 등이 겹쳐 있다.

대부분 여성이지 않나? 그런데 이들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이 없다. 해결하려고 하면 더 나쁜 상황에 내몰리는 경우도 있다. 강압적으로, 문제해결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권위를 가지고 누른다든지.

또 고객과 백화점 점원이 싸웠다고 생각해 보자. 우선 자기가 일하는 매장의 점주에게까지 압박이 간다. '문 닫고 싶냐'는 식으로, 그러니 (점원이 아무리 정당하다고 해도, 고객이 부당하고 억지를 써도) 고객과 맞설 수 없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 감정노동자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돼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도를 갖춘다는 건 좋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제도를 만들어도 안 지켜지는 데 있다. 제도를 잘 돼 있어도 준수가 안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시민들이 움직여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연구소(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마트 계산직원(캐셔)들이나 편의점 직원들에게 의자를 놓아주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모든 시민단체들이 참여하고 인권위원회도 참여했다. 어디 건방지게 앉아서 돈을 받느냐는 식으로 생각하는 시민들도 없지 않았지만 시민들의 성원이 컸기에 결국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사회적 성숙'이라는 걸 생각해 본다. 사회적으로 서로 도우면 (노동자들이 병이나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문제가 생겨날 수 없는 구조가 될 수 있다.

-감정노동과 관련해서 갖고 있는 목표가 있다면?

▲감정노동과 관련해서 책을 펴내고 싶다. 노동자들은 (이 문제에 끈질기게 개선 요구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고, 기업들은 '생각을 안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서비스업종 기업들은 감정노동 종사자들 문제를 제기하거나 이러저러한 개편을 해 달라고 하면 '반대한다', '못 해주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어, 그게 무엇인가?'라는 반문이 돌아온다. 문제에 대한 존재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나 할까.

-일본 자료를 연구하는 것으로 안다. 일본 의료계와 교류도 활발히 하는 것으로 아는데, 외국의 노동환경과 건강연구는 어느 정도 진척돼 있으며 또 이런 자료를 받아들이는 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구체적으로 소개해 달라.

▲일본어는 학생 때(한양대 의대 출신) 공부를 하긴 했는데 순전히 시험 통과가 목적이었고, 나중에 (자료를 보고 교류를 할 정도의) 공부는 규치적으로 시간을 내서 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루에 30분씩이라도 꾸준히 해야 한다.  
   
임 소장은 원진레이온 피해자들을 만난 이후 편안한 의사의 삶 대신 직업병 전문가로서의 외길을 걸어왔다. = 김태형 기자

근래 (안식년으로) 시가의과대학(滋賀醫科大學)에 다녀왔다.

일본의 경우 우리와 법제도가 비슷해서 그렇고, 이 영역에서 많이 도움이 되는 건 유럽 자료들이다. 유럽은 이미 이 영역이'안전 보건'이라는 개념으로 확립돼 있다. 미국 쪽은 오히려 이쪽이 잘 발전이 안 돼 있다.

-직업환경의학에 투신해서 지금까지 느껴온 점, 그간의 길을 되돌아 볼 때 소감을 정리해 준다면?

▲노동과 건강, 이건 모든 사람이 연결된 것이다. 예를 들어 작업장 내 유해물질이 있고 여기서 물건을 생각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보건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문제다. 또 소비자 문제로도 볼 수 있다.그러니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시스템적으로 직업과 관련한 각종 문제를 푸는 걸 고민하기 시작할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