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주주총회 안건분석 전문기관인 ISS의 보고서 논란이 봉합될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열릴 KB금융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재선임 등 안건을 원안대로 처리하는 쪽으로 회사 관계자들이 주주들을 설득하고 있는 상황이 효과를 볼 것이라는 분석이다. ISS는 이 보고서에서 지난해 말 KB금융의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 무산이 '일부 정부 측 사외이사'들의 반대 때문이었다고 풀이하고 일부 사외이사들의 재선임을 반대할 것을 외국 기관투자가들에 권고했다.
이번 사건은 특정인들의 재선임 등 결과로만 보면 이렇게 결론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후의 파장이 어떻게 될지도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일단 관치 논란 등 논쟁거리를 공급하는 한편, 특수한 존재로 장막 뒤에서 많은 권력을 누려온 KB금융 사외이사 관련 제도에 손을 대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선을 모으는 것이다.
◆'명확함과 공격성 사이' ISS에 목표물 부각된 자체가 마이너스
일단 이번 보고서는 친정부 사외이사(어윤대 회장 의견에 반대한 사외이사)로 지목한 인물 중에는 문제가 된 ING 인수 추진 과정에서 오히려 인수 찬성표를 행사한 인물이 포함됐다거나, 또 등장 시점 등을 종합할 때 ING 문제 자체와 무관한 인물도 있는 등 일부 오류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일부 KB금융 사외이사 축출 필요성을 강조한 ISS 보고서 논란이 결국 잘 봉합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특정인들의 연임 여부 자체보다도 사외이사 관련 수술 필요성을 제시했다는 점이 두고두고 KB에게 숙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서울 명동 KB금융 본사. = 임혜현 기자 |
ISS의 경우 국제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곳인 데다, 한국 시장에서도 여러 번 의미있는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즉 외국 기관투자가들에게는 한국의 기업을 들여다 보는 유용한 유리창 중 하나로 의미가 있다.
2003년 ISS는 하나로통신 외자유치에 긍정적인 관점의 보고서를 제시했는데, 이때 외국인들이나 국내 기업계에서는 하나로통신의 외자유치에 이 같은 보고서가 나온 데 대해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및 의사결정 구조가 더욱 투명하고 선진화될 수 있는 계기로까지 확대 해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ISS는 2006년에는 KT&G와 아이칸간의 표대결 상황에서 공격적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일반 사외이사 2명에 대해 사실상 아이칸측 후보자를 지지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까지의 사정을 살피면, ISS는 한국 기업들이 의사결정의 구조를 개선하는 등의 민감한 상황에 대해 어젠다 설정을 하는 역할을 주저하지 않아 왔으며,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런 여러 항목에서의 존재감에서 볼 때 KB금융 관련자들이나 우리 당국에서 불쾌한 반응을 보인다고 해도, 또 일부 내용 오류 등 문제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제기 자체(일부 사외이사는 문제있다)는 유효하게 인식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관치 논란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개혁 기회 종종 놓쳐온 점 부각↑
또 KB 관치 논란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풀이도 나온다. 이미 이전에도 관치 문제가 실제로 거론된 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0년 정초에 이슈가 됐던 강정원 당시 국민은행장의 회장 내정자직 사퇴 상황이 좋은 예다. 당시 강 당시 행장과 일부 사외이사들이 당국의 회장 내정자 자리의 사퇴 압박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속칭 '괘씸죄' 적용을 받았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이때 흔히 나온 이야기가 '주인없는 KB' 또 '관치금융 논란'이었고 그런 점에서 KB에서 갖는 사외이사의 위상 역시 이런 문제를 키우는 한 축이 아니냐는 풀이도 일부 존재했다.
이번에 다시 ISS에 의해 관치 논란이 불거지면서, 그 동안 '누가 와도 콘트롤할 수 없는 KB 사외이사들'의 '긍정적' 면이 부각돼 온 상황은 다시 2010년과 같은 '적당히' 경영진과 결탁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관치의 '통로'가 되는 등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는 상황이 됐다. 그런 논란이 남긴 부수적이고 파생적인 숙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2010년 7월 KB금융 주주총회장 모습이다 .새로 사령탑을 맡게 된 어윤대 KB금융 회장(좌)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강정원 당시 국민은행장(우)과 악수를 하고 있다. 어 회장은 이번에 ISS 문제로 관치 논란을 빚으면서 악수를 나눴던 강 당시 행장처럼 불행한 길을 반복해 걷게 됐다. = 임혜현 기자 |
KB의 사외이사 문제는 그러면 어디서부터 꼬여온 것일까? 사외이사가 참여하는 금융지주사 회장(전에는 은행장) 선임의 역사는 지난 1997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과거에 주택은행(구 국민은행과 구 주택은행이 합쳐져 통합 국민은행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음)의 미국 증권시장 상장 관리를 위해 당시로서는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쪽으로 사외이사들의 기를 살려주는 정책이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렸고 이런 분위기를 가장 잘 챙긴 이로는 김정태 전 행장 등이 꼽힌다.
그런데 처음에는 신선했던 사외이사 구조는 이후 당국이 2008년 무렵 IMF 구제금융 신청 등 국난 극복 10주년에 즈음해 은행 지배구조 개선을 논의했다가 이 수술이 본격화되지 못했다. 이후 2010년 모범규준 마련으로 뒤늦게나마 시동이 걸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KB의 경우는 줄곧 이런 규준의 허점이 부각되는 상황, 즉 연임이 이어지는 상황 등으로(총임기 5년 룰에 의해 물갈이되는 시점은 아직 오지 않는 게 겹침) 사외이사들의 성벽이 굳건히 유지돼 왔다.
결국 KB의 사외이사 시스템은 여러 차례 많은 업적을 남긴 점, 신선한 역할 모델을 해 왔다는 명성보다도 이제 그 와중에서 낡고 통제되지 않는 권한을 많이 가진 집단이라는 한계가 더 부각되는 상황이고, 그런 분기점을 이번에 주주총회 안건 논란으로 지나쳤다고 볼 수 있다.
◆과거 KB사태 국면서 스쳐간 '공익이사' 발언, 새삼 의미심장
이번에 당국은 왜곡된 내용을 제공해 논란을 낳았다는 점에서 상황을 들여다 본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또 결국 KB의 현 경영진에 대한 공세로 흐를 여지가 높다. 실제로 KB금융의 주요 축을 형성하는 국민은행의 노조 같은 경우는 일개 임원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 이번 ISS 논란의 몸통은 어 회장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등 이런 해석과 책임 추궁을 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하지만 결국 어 회장 체제에 대한 손보기 이후에는 또다른 그림인 사외이사 관련 새 그림 그리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강 당시 행장 낙마 사태를 전후해서 당국자(권혁세 당시 금융위원회 부원장)가 (KB의) 사외이사 제도를 보완할 모델로 공익이사 제도를 언급하는 등 시사점을 던진 바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카드를 새로 취임한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 등에서 꺼내들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