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동아제약, 하나금융지주 등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나타나면서 한때 이슈였던 연기금의 사회화 논의 재부각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모호한 상태로 주식시장 투자라는 점에서만 머물러 왔던 연기금의 역할론에 자리를 잡아줘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특히 국민연금이 대주주인 KB금융지주 주주총회가 다가오고 있고 앞으로도 이윤 극대화를 추구할지 사회적 역할에 초점을 둘지 방향 설정을 하지 않는 한 자의적 행사라는 논란이 더 증폭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집권 초인 지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4년경부터 논란, 2007년 대선 후 잠시 잠복…다시 부활
왜 요새 부쩍 국민연금 앞이 단골 시위장소가 되고 있을까?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가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가운데,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사회적 역할론에 따라 판단해 달라는 요구 역시 높아지고 있다. ⓒ 외환은행 노조 |
2004년 8월 심상정 의원실 주관으로 열렸던 '연기금의 주식·부동산 투자 전면 허용,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는 정책당국(당시 기획예산처)와 진보정당이던 구 민주노동당 등의 이견이 표출됐던 자리였다.
여기서 김병덕 당시 예산처 기금정책심의관은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은 현재 주식시장 상황과는 무관하게 연기금의 합리적인 운용을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제거하는 차원"이라고 주장했고, 오건호 당시 민노당 정책보좌관은 "연기금은 국민들의 여유자금이 아니기 때문에 주식투자를 확대하는 데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정권이 바뀐 뒤엔 2011년 곽승준 당시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이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통해 '거대권력이 된 대기업에 대한 제도적 견제'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이와 관련한 논의는 다시 불거졌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새 정권 출범에 발맞춰 이달 5일 김재원 의원실에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했다. 이 자리는 이번 정부가 첫번째 국정목표인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5번째 추진전략인 '원칙이 바로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 중 32번째 항목인 '기업지배구조개선' 내용에 '독립성 강화를 전제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를 명시한 점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결론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연기금의 투자는 기정사실화돼 더 이상의 투자제한론은 의미를 잃었고 의결권 강화라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는 상황으로 흘러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행사의 방향에 대해서 확실히 가닥을 잡을 필요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0% 넘는 거대한 고래…방향성 잡을 필요 대두
5일 토론회에서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국민연금의 기업투자에 대한 법적 제한은 자본시장법 173조 규정상, 국민연금의 운영규정상 10%를 넘지 않도록 돼 있지만 여러 조건을 달면 10%가 넘도록 돼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울러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년 1월 2011년 현재 5.4%인 국민연금의 주식시장 지배력이 장기적으로 10%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한 적이 있다.
문제는 이런 거대한 규모의 연기금이 의결권 강화라는 점을 향해 움직일 때 판단의 독립성 토대가 충분히 마련,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 먼저 논의돼야 한다는 데 있다.
엄규숙 경희사이버대 교수가 이미 2004년 토론회에서 "과거 기금운영위원회에서 기획예산처가 실제 필요한 주식투자보다 더 많은 투자금액을 요구해 왔던 점에 비춰볼 때 주식투자 제한 자체가 없어질 경우 정부 입김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금년 3월 토론회에서도 "한국은 국민연금의 예산편성, 운용 등에 있어 상당한 제약을 받게 돼 있다"는 점이 재언급되는 상황(이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큰 변동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네덜란드 APG 운용사(All Pensions Group)가 세계 3대 공적연금인 ABP 자금 400조원과 네덜란드 내 중소 연기금 자금 50조원을 합한 약 450조원대 자금을 운용한다. 국민연금 내 운용본부가 떨어져 나와 다른 연기금 풀 자금까지 함께 운용하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캘퍼스 역시 지배구조상 정치적 입김이나 정부의 눈치에서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위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당국의 필요(주가를 부양할 필요 대두라든지)에 따라 동원되다 보면 수익성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고 이런 문제는 특히 주가 폭락 국면에서 여러 번 지적된 바 있으므로 더 이상 비중이 커지기 전에 독립적 판단의 권한과 구조를 보장할 효용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익 보장 효율성 극대화냐, 환경과 경제 수호자냐?
이 문제가 완비된 이후에도 공감대를 형성할 대목은 또 있다.
외환은행 매각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아직 모두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금융-외환은행 주식교환 건에 연기금은 이익만을 따라 찬성 의견을 던져야 하는가, 혹은 공공적 측면에서 반대표를 행사해야 하는가? 이런 점이 바로 연기금 역할론에 대한 본질적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은 하나금융쪽에서 바라본 외환은행 야경. ⓒ 프라임경제 |
또 같은 외환은행 주주인 한국은행(6.12%)이 현행법상 일반사기업인 하나금융 주식으로 교환을 할 수 없어 매입 단가에 못 미치는 가격에 매수청구권 행사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았다는 점에서 공공적 자금간에 서로 손해를 가하는 게 온당한지에 대한 논의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현재 론스타 매각 이후 여러 논쟁이 아직도 해결이 안 된 상황에서(국제투자자소송 즉 ISD 문제까지 있다) 굳이 외환은행을 지금 상장폐지 추진 수순으로 몰아넣어야 하느냐는 이견이 유력하다.
공공적 판단이 일부라도 작용했다면 나올 수 없는 판단이 이익 극대화라는 일방통행적 사고에 의해 결정됐다는 비판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네덜란드 APG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을 투자반영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 원칙에 따라 APG는 한화와 풍산 등 우리나라의 방위산업체(무기생산업체)를 투자대상에서 제외하고, 삼성전자 측에도 메일을 보내 반도체 공장 노동자 급성 백혈병 사망 등 직업병 논란에 대한 과실을 인정하고 책임있는 행동을 보여주라고 촉구한 바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캘퍼스 역시 1987년부터 집중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기업 명단인 '포커스 리스트'를 자체 제작하는 등으로 부도덕한 기업의 행동을 규제한다. 이와 관련, '캘퍼스 효과'라고까지 용어가 확립돼 있을 정도다.
연기금의 갈 길이 어느 쪽으로 확립돼야 할지 세계적으로 여러 사례가 축적돼 있는 만큼, 이제 우리 연기금도 그 덩치에 걸맞는 역할을 어느 쪽으로 뒤따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