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병자호란 무렵에 판서 벼슬을 지낸 심집이라는 이가 있었다. 도승지와 예조와 형조의 높은 자리를 역임한 뒤 1629년 오늘날의 법무부장관격인 형조판서가 되었다. 1636년 시작된 병자호란 때 그의 '거짓말 못 하는 성격' 때문에 국가의 위기가 증폭되는 일이 생겼다.
화친을 교섭하려는 조선에 청나라에서는 "왕자와 대신(여기서 대신은 판서급을 넘는 즉 재상급)을 보내라"고 했는데, 조선에서는 진짜 왕자와 대신을 보내기 싫어하며 거짓 왕자와 대신을 세우기로 했다. 종친인 능봉수를 능봉군으로 올리고, 심집에게 대신 행세를 하게 했다.
그런데, 청나라 장수 마부대가 진위 여부를 묻자 심집은 "나는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다. 나는 사실 대신이 아니고 옆 사람도 왕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격노한 청은 이들을 돌려보내며 "이제는 왕자도 안 되고, 세자를 보내야 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다 못해 오랑캐 앞에서도 나는 거짓을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라며 융통성 없이 군 데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대체로 비판 여론이 거센 듯 하다.
그런데 심집 같은 태도를 가지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은 수준 떨어지는 공무원들의 관행이 있다고 해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골프장에 예약을 하거나 골프가방에 이름을 표시할 때, 자기 본명 대신 가짜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를 필드명 줄여 '필명'이라고까지 한다는 후문이다.
12일 대구지방경찰청이 '접대성 골프'를 친 대구광역시 관내 어느 경찰서장을 문책, 대기발령을 했다고 하는데, 비단 접대성 문제 뿐만 아니라 안보비상시국에 이 같은 행동을 한 괘씸죄까지 추가돼 그야말로 곧이곧대로 처분을 받은 듯 하다. 그런데 그야말로 이런 징계가 무서워서인지, 암행 감찰 등을 피하기 위해 필명을 쓰는 요령이 생긴 듯 하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필명 뒤에 숨어 문제가 되지 않았을 따름이지, 저 경찰서장 같은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잠복해 있다는 것 아닐까?
심집의 융통성이 없는 발언 태도가 차라리 미덕으로까지 생각되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