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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판서 심집과 '필명'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3.13 17:3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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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병자호란 무렵에 판서 벼슬을 지낸 심집이라는  이가 있었다.  도승지와  예조와 형조의 높은 자리를 역임한 뒤 1629년 오늘날의 법무부장관격인 형조판서가 되었다. 1636년 시작된 병자호란 때 그의 '거짓말 못 하는 성격' 때문에 국가의 위기가 증폭되는 일이 생겼다.

화친을 교섭하려는 조선에 청나라에서는 "왕자와 대신(여기서 대신은 판서급을 넘는 즉 재상급)을 보내라"고 했는데, 조선에서는 진짜 왕자와 대신을 보내기 싫어하며 거짓 왕자와 대신을 세우기로 했다. 종친인 능봉수를 능봉군으로 올리고, 심집에게 대신 행세를 하게 했다.

그런데, 청나라 장수 마부대가 진위 여부를 묻자 심집은 "나는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다. 나는 사실 대신이 아니고 옆 사람도 왕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격노한 청은 이들을 돌려보내며 "이제는 왕자도 안 되고, 세자를 보내야 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다 못해 오랑캐 앞에서도 나는 거짓을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라며 융통성 없이 군 데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대체로 비판 여론이 거센 듯 하다.

그런데 심집 같은 태도를 가지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은 수준 떨어지는 공무원들의 관행이 있다고 해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골프장에 예약을 하거나 골프가방에 이름을 표시할 때, 자기 본명 대신 가짜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를 필드명 줄여 '필명'이라고까지 한다는 후문이다.

12일 대구지방경찰청이 '접대성 골프'를 친 대구광역시 관내 어느 경찰서장을 문책, 대기발령을 했다고 하는데, 비단 접대성 문제 뿐만 아니라 안보비상시국에 이 같은 행동을 한 괘씸죄까지 추가돼 그야말로 곧이곧대로 처분을 받은 듯 하다. 그런데 그야말로 이런 징계가 무서워서인지, 암행 감찰 등을 피하기 위해 필명을 쓰는 요령이 생긴 듯 하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필명 뒤에 숨어 문제가 되지 않았을 따름이지, 저 경찰서장 같은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잠복해 있다는 것 아닐까?

   
 
무릇 공무원은 직무를 행하는 데 있어 위법이 없으면 누구 앞에서든 당당해야 한다. 그런데 겨우 골프를 치자고(접대성 등 문제 행각이 아니라 하더라도) 필명 운운하는 행동을 하고들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걸리는 경우 그야말로 옷을 벗을 각오를 할 부정한 접대 라운딩이면 아예 꿈도 꾸지 않을 일이어야 하고, 단순히 운동을 하고 싶은 경우라면 근래처럼 문제되는 시국에만 조금 참는 미덕을 보일 일이다. 어째서 필명을 쓰느니 하는 믿기 힘든 이야기가 나오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심집의 융통성이 없는 발언 태도가 차라리 미덕으로까지 생각되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