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정규직 전환 붐이 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정규직 문제를 최대 해결과제로 삼겠다고 당당히 밝힌 터라 정부와 기업들이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정부 '정규직 전환 캠페인'은 주로 공공기관과 대기업에 집중돼 있는데, 대대적인 정규직 전환 총대를 먼저 멘 일부 대기업의 '한 방' 때문에 다른 기업들은 상당한 부담감을 갖게 됐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분명 환영받을 일이지만, 그 이면엔 풀어야 할 다양한 숙제도 산적해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가 정부와 기업들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새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를 최대 해결과제로 밝히면서 정부와 기업들은 '정규직 전환'에 동참하고 있지만, 이 또한 풀어야 할 부분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 SBS 방송 캡처 |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 이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희망 복주머니' 행사에서 "근로자들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받는 일이 없도록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국민을 상대로 공식 약속까지 했다.
각 기업들과 은행들은 속속 정규직 전환을 발표하고 있고, 상당수 기업들이 올해 내 실행을 목표로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행보가 기업들의 자발적 시도라기보다는 새 정부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울며 겨자 먹기 식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자리 감소 우려
한화그룹은 지난해 12월 대규모 정규직 전환으로 산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또 최근 '불법 파견'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이마트도 1만여명의 사내하도급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겠다고 밝히며 유통업계의 정규직화 확산에 불을 질렀다.
공공기관들도 정규직화 행동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2월1일부터 본청·사업소의 간접고용 청소근로자 230명을 직접고용하면서 시발탄을 쐈다. 이러한 서울시의 파격행동은 타 공공기관 내에서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공공기관 내 청소, 경비, 상담사는 외주업체 소속된 근로자들로 사용업체에겐 '간접고용' 형식으로 돼 있다.
하지만 파견근로는 유통업, 공공기관 외에도 자동차, 조선 등 다양한 산업 부문에서 통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대규모 채용은 당장 기업에겐 큰 부담이다. '정규직 전환' 운동이 국가적 캠페인처럼 진행된다면 기업 입장에선 자칫 기업 경쟁력 후퇴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낄만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입장에서도 희비가 엇갈릴 수 있는데, '일자리 감소'의 부작용을 심화시킬 구실이 될 수 있다. 가령, 비정규직 10명을 채용하고 있는 기업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시도할 경우 10명이 아닌, 이에 절반미만을 정규직으로 받아들인다면 나머지 비정규직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도급'과 '파견' 정확히 구분해야
고용노동부는 지난 2010년 근로자 300명이상 사업장 1939곳을 조사한 결과, 사업장 중 41.2%가 사내하도급을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내하도급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24.6%에 해당되는 약 32만명으로 조사됐다.
최근 불법파견 사례가 늘면서 사내하도급과 불법파견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데, 비정규직으로 인해 불거지고 있는 각종 사건․사고의 실체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우선 '사내하도급'과 '불법파견'의 정확한 구분이 필요하다.
현재 국내 사내하도급 계약은 불법 사항에 포함되지 않지만, 원청업체가 도급 인력을 파견근로자처럼 업무 관련사항을 지시한다면 불법파견에 해당된다.
최근 이마트 사건의 경우도 사내하도급과 파견근로자의 혼란으로 논란이 가중됐던 경우다. 이마트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대규모 정규직 전환을 서둘렀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기업들 추가비용 부담 커
기업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실행하려면 상당한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한화그룹은 약 60억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고, 이마트도 이번 1만여명을 정규직 전환함에 따라 급여상승, 복리후생 혜택 등을 포함해 1년간 약 600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회는 지난 2월 말 비정규직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 '기간제근로자보호법'과 '파견근로자보호법'을 통과시켜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정기·명절 상여금, 성과급, 노동조건·복리후생비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기업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른 비용부담 해소와 정부의 지원에 관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는데 근로자 입장만 바라보고 있다"며 "고용유연성과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함에 있어 신규 채용과 청년들의 일자리 축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잦은 민간위탁업체 전환, 소속감 저하
한편, 정규직 전환 열풍에 민간 위탁업체들에게도 이런 저런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민간위탁업체들 직원들의 사기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민간위탁업체의 직원들은 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저 직원 비정규직 아닌가"라는 시선을 받곤 하는데, 위탁업체 특성상 소속된 직원들이 모두 비정규직일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한 위탁업체 관계자는 "요즘 정규직 전환 소식이 들려오면서 위탁업체 소속된 정규직도 비정규직으로 단정 짓고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며 "민간위탁업체들도 잦은 외주업체를 전환하는 것보다 소속감과 안정된 고용문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민간위탁사업은 비용절감과 효율성을 목표로 꾸준히 확대됐지만 잦은 위탁업체 전환 때문에 근로자들은 소속된 업체가 매번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이런 상황은 이들에게 회사에 대한 소속감 저하시키고 전문성 숙달을 저하하는 악영향을 낳는다.
공공기관에서 10년째 근무 중인 용역업체 소속 한 경비원은 "비정규직의 무기계약 전환도 직접고용만 해당되고 간접고용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에 실망을 많이 했다"며 "근무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소속 업체만 계속 바뀌고, 개정된 법 사항이 있어도 용역 근로자들에게 해당되는지 구분하기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