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이번에도 외국계은행들은 얌체 논란을 비껴가지 않았다. 6일 출시 당일 200억원이 몰리며 18년만의 화려한 부활을 이뤄낸 '재형저축' 이슈에서도 유독 외국계은행은 한 발 뺀 상태로 물러서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일 금융감독원에서 발표한 6일 기준 16개 은행의 재형저축 판매 실적을 살펴보면, 우리은행이 7만2280계좌(54억원)로 가장 높은 실적을 보였고 △국민은행 5만9370계좌(49억원) △하나은행 4만295계좌(25억원) △신한은행 4582계좌(7억원) 등이다. 하지만 △SC은행 20계좌(400만원) △씨티은행 27계좌(300만원)로 저조했다.
6일 출시된 재형저축에 뜨거운 반응이 일고 있다. 재형저축은 고금리·비과세혜택으로 서민들 목돈 마련에 도움을 주고 저축을 독려하기위함에 목적이 있으나, 유독 외국계은행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 이종희 기자 |
시중 4대 은행의 재형저축 금리는 모두 우대금리 포함 최고 4.5%선이었지만 외국계은행은 이런 상황에 각축전을 벌일 의지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SC은행은 우대금리 포함 최고 3.8%이며 씨티은행은 기준금리 3.2%에 우대금리 혜택이 전혀 없었다. 후에 논란이 일어 씨티은행은 기준금리를 3.4%로 변경하며 가입 상품 수에 따라 우대금리를 최대 0.6% 제공하기로 변경했다.
재형저축은 금융권과 소비자 모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정부가 저축을 독려하기 위해 야심차게 꺼내든 카드라는 점은 뒤로 하더라도, 소비자는 세제 혜택을 통해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금융권은 장기적으로 거래할 고객들을 확보할 계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국계은행들은 이른바 역마진 우려 때문에 이 같은 영업전에 뛰어드는 것에 부정적 판단을 했다는 후문이다. 많은 시중은행들에게도 4%대 금리를 제시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던 조건은 같다.
하지만 시중은행들 대부분은 현재 서민금융 저축상품이 없다는 점과 재형저축은 7년 이상 돈을 묶어둬 장기거래로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점에 역마진이 생기더라도 이를 감수하겠다는 '장기적 포석+공공적 목적'을 택했다.
결국 '의지'의 문제에서 외국계은행이 쉬운 길을 택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파생, 중기대출 등에서도 문제
물론 외국계은행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한국 시장에 진출했으므로 지나치게 공공적 역할론을 요구하거나 뻔히 손해를 볼 수 있는 저수익 상품 판매를 요구할 수 없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또 일반적인 영업전으로 능력을 소모할 게 아니라 선진금융기법을 한국 시장에 이식하는 역할에 더 치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재형저축 같은 상품군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이들 외국계은행이 파생상품 등 고차원 금융에서 두드러진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일례로 금감원에서 지난해 11월부터 두 달 동안 6개 은행 점포 300곳을 두고 파생상품의 일종인 주가연계신탁(ELT) 판매 실태 미스터리쇼핑을 실시한 결과, 씨티은행은 60점이 안 되는 낙제점을, SC은행은 보통등급을 받았다.
지난해 국내에 있는 외국계은행 39개 지점 당기순이익은 1조878억원으로 전년도(1조2310억원) 대비 11.6%(1432억원) 감소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외국계은행은 유가증권관련 이익은 증가했으나 유가증권 운용규모가 축소돼 이자이익이 감소되는 상황을 겪었으며 △외환·파생상품이익 또한 감소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종합해 보면, 환율과 금리 등의 상황 여건으로 부득이한 손실도 있겠지만, 파생상품을 운용하거나 판매하는 등에서 별달리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 대목이다.
◆철수 안 한다 주장하지만 '얌체' 비판 자초
더욱이 외국계은행들은 중소기업에 대출할 때 미확약부 여신약정(대출한도 중 아직 대출이 이뤄지지 않은 금액을 은행이 마음대로 축소하거나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약정. 현행법상 불법임) 논란을 낳았다. 씨티와 SC 두 곳 결국 이 문제로 최근 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전산 시스템 구축 문제 등에서도 외국계은행들은 한국에 별달리 투자를 하지 않으려 한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특히, 씨티와 SC 모두 고액배당 논란으로 매번 마찰을 빚고 있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국계은행들은 한국에 뿌리를 내리겠다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주장하지만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한국 시장 철수설이 끊이지 않는 등 비판 여론이 잠복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의 원인을 따져 보면 당장의 적은 손해 가능성도 감수하지 못하겠다는 외국계은행들의 입장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점에서 재형저축 돌풍을 외면한 외국계은행들의 최근 태도는 더 시선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