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 기자 기자 2013.03.11 13:40:59
[프라임경제] #. 수많은 동물들이 모여 사는 아프리카 사바나. 평화로운 초원에 특별한 일이 생겼다. 기린 중에서도 가장 멋진 '미야'가 출산을 한 것이다. 하지만 아기기린 '지피'는 목이 짧은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장애기린 출산소식에 한바탕 소란스러워진 사바나 초원. 동물들의 기쁨은 탄식으로 바뀌었고, 주인공 '지피'는 주변서 놀림감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초원에 밀렵꾼이 등장했다. 뜻하지 않는 손님에 아수라장이 된 사바나. 몸집이 작은 지피는 재빠르게 위기를 모면했고, 다른 동물들도 구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뮤지컬 '목 짧은 기린 지피(원작자 고정욱)'는 사회적 이슈인 '왕따'를 동물세계에 빗대며 아이들에게 올바른 '다름'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아무리 목이 짧은 기린이라도 호피무늬 얼룩말일지라도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나름의 역할과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뮤지컬이란 장르를 통해 아이들에게 희망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뮤지컬창작터 하늘에(이하 하늘에).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위치한 하늘에 연습실을 급습해 평소 그들이 갖고 있는 소신과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아이들과 눈높이 맞추는 바로 그 자리 '기적이 일어나는 곳'
"꿈이 없는 나로서는 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최○○)"
"문경수 교수님은 나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도) 잘 다니고 교수자리까지 간 게 참 존경스럽다. 나도 이제 교수님처럼 꿈을 향해 노력해 내 미래를 빛내고 싶다.(지○○)"
"(상황극 때) 많은 걸 느꼈다. 꼭, 여주(등장인물)가 나인 듯 했다. 상황은 달랐어도 하는 말투, 행동이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가슴이 찡했다, 눈물도 났고. '이제 잘해야 할 텐데'라는 생각도 있었다.(남○○)"
선생은 물론 부모조차 두 손 들게 했던 학교 부적응 학생들이 써낸 소감문이다.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순한 양'으로 돌변한 까닭은 뭘까. 다름 아닌 '눈높이교육'에서 비롯됐다.
학교 부적응 학생들이 ㈔뮤지컬창작터 하늘에 교육치료를 받은 뒤 낸 감상문. = 김태형 기자 |
하늘에 단원들은 아이들에게 받아달라고 떼를 쓰지도,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짜여진 프로그램을 소화하며 아이들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와주길 기다렸다.
"아이들이 고개를 들고 반응을 보일 때 쯤 교복 입은 배우들이 학교를 무대로 한 10분짜리 드라마를 선보여요. 자기들 얘기를 하니까 신기한 거죠. 그러고 나면 서로 신체를 부딪칠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을 해요. 그런 다음에 학생과 배우들이 한 조가 되어 여기에 온 이유를 뮤지컬 소재로 써서 한편씩 만들어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뮤지컬은 그날 바로 무대에 올려진다. 이번엔 학생들이 배우로 나선다. 늘 때리기만 했던 아이는 맞는 역할을, 환경 탓만 했던 아이는 오뚝이처럼 이겨내는 역할을 상황에 따라 맡게 되는 식이다.
이런 판단은 그대로 적중했다. 아이들이 공연을 통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다.
◆'만족도 만점' 뮤지컬, 예산 부족 때문에…
인천시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해피스쿨 프로그램 가운데 뮤지컬 롤플레잉 만족도는 평균 98~99점 사이로 거의 만점에 가깝다. 하지만 1년 간 강연회수는 고작 20회에 불과하다. 예산 때문이다.
"무료는 아니지만 거의 무료나 다름없어요. 교육청 예산이 있기 때문에 강사비가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사실 강사비가 굉장히 낮아요."
물론, 하늘에 극단이 강연하는 날이면 인천시 교육청으로선 예산이 빠듯할 수밖에 없다. 1인 강사료만 줘도 되는 일을 6~8명씩 되는 각 단원들에게 주려면 어느 한 부분에서 메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극단 측 입장도 일리는 있다.
"마음의 문을 닫는 아이들을 움직이기 위해선 배우들이 10배는 더 움직여야 해요. 단원들이 사회적 기업 이념을 갖지 않고 있다면 하기 어려운 일이죠. 교육청은 강사료 때문에 힘들고 저희는 사실 그 돈 받아도 교통비·의상비·소품비 빼면 아무런 도움도 안 되거든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뮤지컬창작터 하늘에 연습실, 인터뷰 전부터 시작된 단원들의 연습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 김태형 기자 |
"지금 대표님과 전 사제지간이에요. 대표님께서 한세대학교 뮤지컬과 교수님이셨어요. 교수님과 요즘 문화예술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학생들을 위한 밝고 맑은 뮤지컬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얘기가 나왔죠. 너무 상업적 특성만 강하다 보니까 유익한 것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이런 생각을 하다 '우리가 한번 만들어 보자'는 의도로 극단을 설립하게 된 거죠."
취지는 좋았지만 곧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 친언니 회사 사무실 한켠을 빌려 극단을 세우긴 했지만 당장 작품을 만들 제작비도 배우도 없었다. 손에 있는 것이라곤 몇 푼 안 되는 후원금이 전부였다.
"제작비가 없어서 교수님이 성가대 지휘를 맡고 있는 주안장로교회에 손을 내밀었어요. 교회에 올리는 뮤지컬부터 시작을 한 거죠. 150여 성가대원을 연습시켜 공연을 올린 거죠. 그렇게 노하우를 쌓은 후 2008년 여름 첫 작품 '펀치펀치'를 가지고 목동방송회관에서 초연을 열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제작된 '펀치펀치'는 40회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욕심이 과했다. 음향·조명·배우 모두 최고를 고집하다 보니 장부엔 마이너스 1500만원이 찍혔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제작비로 세 작품은 너끈히 만들었을 텐데 서툴렀던 거죠. 그동안 갖고 있던 투자금, 인맥 모두 쏟아 부었더니 두 번째 공연 올리는 게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언제까지 아는 사람들한테 손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때 이사 한분이 노동부에서 지원 프로그램을 하는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면서 한번 알아보라고 하셨죠. 그게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이었어요."
◆성인극 반토막 냈더니 '대박'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 지원은 하늘에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준비시간이 턱없이 모자랐다. 지원 프로그램을 알게 된 지 3일 만에 모든 서류를 제출해야만 했다.
"목요일 사회적 기업 프로그램에 대해 듣게 됐는데 그 다음날 설명회가 있더라고요. '아, 우리가 이런 방향으로 가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마감이 바로 월요일인거예요. 주말 내내 앉아서 문서작성하고 월요일 오전 서류 떼어서 냈는데, 운 좋게 그게 된 거죠."
청소년을 위한 작품을 기획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그러다 방향틀이 바뀌었다. 아무래도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위해선 청소년보다 어린이 콘텐츠에 맞추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나숙경 ㈔뮤지컬창작터 하늘에 기획실장 = 김태형 기자 |
성인극에서 어린이극으로 전환하긴 했지만 첫 작품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초연작 '펀치펀치'가 동화에서 시작된 작품이었던 까닭이다. 하늘에는 런닝타임 1시간40분짜리 '펀치펀치'를 어린이용 '넌 특별하단다(50분)'로 수정해 공연을 올렸고, 이른바 '대박'이 났다. 지난해에는 김천국제가족연극제서 대상과 최우수연기상까지 휩쓸었다.
"사실 문화예술 쪽이 워낙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까 자립하고 수익을 내기가 참 어려워요. 자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쪽이 굉장히 아이템 좋은 사업도 아니고요. 사실 내년 6월이면 정부지원도 끊기거든요. 하늘에의 최대 숙제는 지원이 끊겨도 저희 가족들(배우·스텝) 하고 계속 이 사업을 유지해 확장해 나가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