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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안철수, '강호동 화법' 배웠으면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3.10 1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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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재석아, 이거 내가 받아도 되나?"

2008년 연말, 연예인 강호동씨는 '2008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의 영예를 차지하면서 이런 수상 소감을 남겼다. MC계를 대표하는 쌍두마차 중 다른 한 축으로 선의의 경쟁을 펼쳐 온 코미디언 유재석씨에게 이 같이 말했다.

이 발언의 묘미는 탈락한 경쟁자를 배려하는 동시에 본인이 수상 자격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도 않았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최근 노원병 지역구 출마 논란을 보며 몇 년 전 나온 이 소감이 생각났다.

이 지역구는 원래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금배지를 단 곳이었지만, 엑스파일 사건으로 노 공동대표가 낙마해 무주공산이 됐다. 이를 놓고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 관심을 보인다고 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진보정의당에서는 안 전 원장이 기자들에게 출마 의사를 밝히기 불과 얼마 전에 전화를 걸어 '모양새'만 갖추려 했다며 불만이다. 밖에 알려진대로 '양해'를 구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급기야 10일 진보정의당에서는 이 지역에 후보를 내보내겠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통합당 쪽에서도 일부 이견이 있지만 안 전 원장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당의 거물급 인사인 이용섭 의원은 10일 노원병 논란과 관련, 기자들에게 "안철수 전 교수가 지금처럼 일방적 행보를 한다면 민주당이 후보를 내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 공당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안 전 원장에 대한 정치적 기대감은 대선 출마 포기 이후에도 여전히 높다. 한국갤럽이 8일 발표한 3월 1주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명 '안철수 신당'이 창당할 경우 23%의 지지율을 기록해 민주당의 11%를 두 배 이상 앞설 것으로 조사됐다. 민주당 지지자의 38%, 무당파의 30%를 흡수해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럼에도 동시에 이 여론조사 결과는 안 전 원장의 노원병 출마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이 40%를 기록해 긍정적 의견 38%에 비해 조금 높았다고 밝혔다.

왜 이렇게 "노원병은 아니올시다"라는 경고음이 나올까. 이 의원은 일방적 행보에 원인이 있다는 식으로 점잖게 이야기했지만, 이건 안 전 원장이 정치적 수를 기본적으로 잘못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라는 게 원래 일방적 행보, 자기 욕심에 따른 행동이 전혀 없는 사람들, 상황 진행에 의해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일방적 행보를 하는 데도 레토릭(수사적 표현, 언어적 꾸밈새)는 있어야 한다. 더 부연하자면 그 레토릭은 레토릭으로만 끝나서는 안 되고(이런 경우는 정치가 아니라 정치공학적 움직임에 불과한 저급한 행동임) 레토릭 뒤에 진정성이 느껴져야 한다. 즉 마음을 전할 필요가 있다.

안 전 원장 진영에서는 양해를 구한 걸로 생각했겠지만 상대방(노원병 의석을 이번에 잃은 진보정의당)은 이게 뭐냐, 모양새 갖추기냐며 불만이고, 제 1 야당인 민주당으로서도 소통 안 되는 정치인이라며 비판에 열을 올린다면 안 전 원장의 정치적 자산이자 아이콘인 '새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무색하다.

양해를 구하는 전화 같은 걸 일명 지역구 연고권자(?)에게 안 해도 좋다. 대선 주자로 뛰어 보니, 실제 정치를 못 해 본 한계가 너무 절박해서 이번엔 어떻게든 국회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가감없이 드러내도 좋다. 더 적나라하게 이번에 금배지 한 번 달지 않으면 신당이고 뭐고 없겠으니, 나도 좀 살자고 읍소 내지 떼를 써도 좋을 것이다. 다만, 그런 발언에서 '새 정치를 정말 잘 하고 싶고, 잘 할 테니' 이번에는 내가 한 번 해도 되냐는 마음만 느껴지면 설사 일말의 거친 점이 있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되돌려, 다시 한 번 저 2008년 수상 소감을 보라. 안 전 원장의 행보보다 소박하지만 상대방을, 경쟁자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그런데 안 전 원장의 행보에는 실크 같은 부드러운 흐름(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있을지 몰라도 그런 뭔가가 부족하다. 삼베천 같이 거칠어도 좋으니 저런 점을 잘 생각해 봤으면 한다. 왜 안 전 원장에게 신당 창당을 요구하는 여론이 많고, 정치적 지지가 높음에도 이번 출마 추진은 아니라고들 이중적인 소리들을 할지,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치인으로서 대성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 거친 진행을 하면서도 남들에게 '힐링' 느낌을 준다는 세간의 호평이 있는 '무릎팍 도사'를 참고해 '강호동식 화법'을 배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