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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공정위 출신 사외이사 선임…속내는?

전관예우 모시기 뒷말…정호열 전 공정위원장 선임 두고 방패용 '왈가왈부'

이보배 기자 기자  2013.03.07 11: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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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바야흐로 '주총의 계절'이 돌아왔다. 매년 3월에는 국내 대기업들의 주주총회가 잇따라 진행된다. 주총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3년 임기의 사외이사가 대거 선임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국내 대기업들은 사외이사로 고위 공직자 출신을 선호하고 있다. 특히 공정위, 국세청, 법조계 등 소위 권력기관 출신들이 큰 인기다.

고위 공직자 출신들은 현직에서 이미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을 검증받은 데다, 정부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연결고리로 활용(?) 가능한 이유에서다.

◆사외이사 선임…'실무형' '방패형'으로 양분

   
"공정위 출신이 뭐가 문제라고?" 3월15일 현대제철 주주총회를 통해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정호열 전 공정위원장을 두고 전관예우 '방패형' 영입이라는 뒷말이 무성하다. 사진은 현대제철 서울사무소, 정호열 전 공정위원장. ⓒ 현대제철 홈페이지, 성균관대학교 홈페이지
올해 특히 눈길을 끄는 사외이사 선임은 현대제철의 정호열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정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 출신으로 2009년부터 2010년까지 15대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냈다.

이와 관련 현대제철은 지난달 22일 공시를 통해 정호열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현대제철 사외이사로 선임, 오는 15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이 같은 안건을 확정한다고 밝혔다.

정부부처나 권력기관 고위직들의 전관예우 영입은 크게 '실무형'과 '방패형'으로 나뉜다. 원활한 업무추진을 위해 해당 업무와 관련된 실질적인 경험과 정보를 가진 고위직을 영입하는 경우가 '실무형'이고, 업종 특성상 각종 비리나 범죄, 사고 등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나 총수 일가의 문제를 관리해야 할 재벌기업들은 사정기관이나 감시기관의 구위직 출신을 들인다. 이른바 '방패형' 영입이다.

때문에 현대제철의 정 전 공정거래위원장 사외이사 선임은 '방패용'이라는 시각이 짙다. 지난해 공정위 조사에서 포스코 등 일부 철강업체들은 가격담합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 받았는데, 현대제철도 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현대제철 관계자는 "공정위원장 출신을 특별히 선임하게 된 계기는 없다"면서 "사외이사 한 분이 빠지면서 추천위원회에서 적당한 인물을 살펴보던 중 추천됐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매년 이때쯤이면 주총과 사외이사 선임이 진행되다 보니 언론에서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현대제철은 이미 서울국세청장 출신 사외이사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6년부터 전형수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사외이사로 두고 있는 것.

결국 현대제철은 공교롭게도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국세청과 공정위 출신의 사외이사를 두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세무조사와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 칼날에서 한발짝 벗어나기 위한 사전조치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올해는 경제민주화가 시대의 화두가 되면서 공정위의 역할을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됐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공정위를 적극 활용해 대기업의 부당이익 편취를 견제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현대제철은 전 전 서울국세청장이 사외이사를 중도 퇴임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최소 2년간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두 명의 전직 수장을 회사의 사외이사로 두게 된다.

현재 현대제철의 사외이사 정원은 5명이다. 정 전 공정위원장의 선임과 함께 15년간 현대제철 사외이사로 활동한 민동준 연세대 금속공학과 교수는 현대제철을 떠나게 됐고, 오정석 서울대경영대 교수와 김승도 한림대 환경생명공학과 교수, 성낙일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전히 사외이사로 활동한다.

◆기업 감시기능 제대로 수행 못하면 거수기 전락

이들 중 눈길을 끄는 사람은 또 있다. MIT 출신 오정석 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바로 그다. 2009년 현대제철 사외이사로 선임된 오 교수는 1970년 생으로 사외이사 가운데 유독 젊다. 또 오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둘째 사위로 현대제철 사외이사 선임 당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지난해 사외이사에 재선임 되면서 잡음이 일기도 했지만 오 교수는 여전히 현대제철 사외이사다. 당시 오 교수는 55%의 이사회 출석률로 가이드라인 상 이사로 선임될 수 없지만 재선임 됐다. 2008년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가 제정한 자산운용사 의결권행사 가이드라인은 '이사회나 이사회의 주요 위원회에 75% 이상 출석하지 않은 이사 선임에는 반대표를 행사하라'고 명시돼 있지만 현대제철은 재선임을 결정했다. 

사외이사제도는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경영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2000년 도입됐다. 사실상 기업 외부에서 인사를 들여 감시 활동을 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상당수 사외이사가 해당 기업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나 심도 있는 이해 없이 이사회에서 거수기 역할만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오 교수의 이사회 출석률(2011년 기준)이 언론의 뭇매를 맞아서 일까. 현대제철 사외이사의 2012년 출석률은 놀라웠다. 민동준·전형수 이사가 92%, 나머지 오정석·김승도·성낙일 이사는 100% 출석률을 보였다.

사외이사가 받는 지나친 보수도 논란거리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사외이사에게 연 8800만원을 보수고 지급했고, 현대자동차도 8000만원이 넘는 금액을 지급했다. 현대제철은 5명의 사외이사에게 1인당 평균 7700만원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높은 보수를 받으면서도 이사회에서 거수기로 전락해버린 사외이사제도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사외이사의 실질적 감사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액주주가 직접 사외이사를 선임하게 하는 제도 도입과, 사후 잘못된 의사 결정에 대해 이사회의 책임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