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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광기의 금융시대에 맞서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복잡해진 금융상품·자극적인 투기 정보·상식을 벗어난 채권추심 등에 대항

이종희 기자 기자  2013.03.05 17: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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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광기의 시대죠. 투기는 사람들의 광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이성적 교육만으로는 제어가 불가능해요. 오히려 광기의 틈에 끼지 못한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역할을 해 왔지요"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겸 (사)희망살림 상임이사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재무상담 및 재무설계 활동을 시작하며 위상을 쌓아온 제윤경 대표는 빚 권하는 사회에 맞서 사람들에게 갈 길을 제시하는 등 부동산과 펀드만 하면 돈을 벌 것처럼 포장된 거품시대를 헤쳐 왔다. 하우스푸어 등 거품이 꺼지고 있는 상황에서 최일선에서 일해 온 재무설계 전문가로서의 소회를 들어봤다.

제 대표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전 금융권은 단순히 저축만 하면 돼는 시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제혜택 유무 등 다양한 조건이 등장했고, 이와 함께 금융사유도 복잡해졌다. 이로 인해 금융소비자들은 단순해 보이지 않는 금융상품 선택 앞에서 가장 중요한 저축 자체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세태에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 제 대표는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사회운동가다. 재무설계와 재무교육을 다루는 에듀머니를 이끄는 대표에 만족하지 않고 (사)희망살림 상임이사로도 일하고 있다. 또 참여연대에서는 실행위원을 맡고 있다. 제 대표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경제학 분야인 행동경제학 이념에 가장 충실하게 살고 있어 행동경제학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부유층 전유물이던 PB 개념을 서민도 누릴 수 있게 

제 대표는 "서민계층·중산층계층 중심으로 개별가정에 맞춰 정보를 제공하고자 했다"면서 재무설계 및 재무상담 업무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를 떠올렸다. 2000년대 초반, 프라이빗 뱅크(PB) 이야기가 나오면서 자산을 자문해주는 뱅커가 등장했으나 사실상 이는 부유층 전유물로 서민층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제 대표는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 재무상담을 해 주는 PB 역할을 자처했다.

제 대표는 2004년 포도에셋에서 재무설계사를 시작으로 이후 에듀머니를 세워 직접 경영자로서 나섰다. 여러 사례를 접하고 상담을 진행하며 축적한 노하우와 행동경제학·비주류 경제학 서적을 읽으며 고민한 덕분에 제 대표에게 상담과 강연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게 됐다. 특히 '부동산이 머니 게임'이라는 교육을 통해 부도덕한 금융행태를 지적하며 언젠간 돌려막기로 후속세대가 문제를 치를 것이라고 본격적인 경고를 시작했다.

이와 관련 제 대표는 "지금이야 하우스푸어, 빚 권하는 사회, 약탈적 금융이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지만 과거처럼 투기성으로 자산을 굴려야 돈을 번다는 게 상식처럼 통용되던 시절에는 적잖이 좌절하거나 안타까운 사례들도 많이 겪었다"면서 "외부의 자극적인 정보에 많이 흔들려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도 불안해하거나 반신반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 대표는 객관적 재무여건 상 전세에 살면 될 사람이 무리하게 빚을 내 아파트를 사겠다해 이유 없이 돈을 쓰면 안 된다고 반대한 적이 있다. 제 대표에 따르면 그 사람은 집을 샀고, 또 실제로 매매차익으로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한 번의 투기로 맛을 들인 이 사람은 융자를 끼는 방식으로 아파트를 여러 채 사들였고, 이후 심각한 상황에 빠져들어 다시 상담의 문을 두드렸다. 이와 관련 제 대표는 "이런 경우를 당할 때면 기운이 빠지기도 하지만 더 열심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상담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무리해서라도 투자? 객관적 사실을 외면마라

이어 제 대표는 "투기라는 것은 본인 성향의 문제가 아닌 객관적 사실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안전한 쪽을 지향하는 거다. 보수적인 성향을 권하는 거다'는 식으로 자기 성향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단기에 돈이 안 필요한 것인가'를 따지는 객관적 사실을 외면하고 나는 보수다, 적극투자형이라는 판단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설명이다.

하우스푸어를 비롯한 다중채무자 등 거대한 빚에 떠안게 되는 것은, 확실하게 고수익을 준다는 자극적인 믿음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다는 게 제 대표의 분석이다. "칼로리가 많이 들어간 음식, 설탕이 잔뜩 들어간 디저트를 맛있게 포장한 광고를 하고 난 후 다이어트 약을 권하는 모순적인 면이 재테크시장과 오버랩 된다"며 제 대표는 현재 금융회사들이 고객들을 유혹하는 패턴을 꼬집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어느 전문가도 못 해온 역할을 소화해 내고 있는 제 대표가 경제학 정공이 아니라는 데 있다(덕성여대 심리학과 출신). 그녀는 학창 시절 이른바 귀차니즘의 극치를 달리는 인물이었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덕성여대 심리학과에서 공부한 비경제학도 출신이지만 행동경제학에 대한 깊은 연구와 현장 상담 경험으로 재무설계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 이종희 기자
체계적으로 돈을 관리하는 게 일찍이 생활화된 사람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제 대표는 "오히려 저는 실패 사례에 속한다. 다만 스스로를 합리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 게 강점이다"라고 말했다. 또 체계적으로 소비관리를 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대박'을 꿈꾸는 사람도 아니었다는 것.

그런 그녀가 어떻게 전문성을 쌓으며 주류 경제학자들이나 거기에 뿌리박은 금융회사들, 또 그 그늘에 기생하는 약탈적 사금융 등을 해부하고 비판할 수 있었을까. 위에서도 잠시 언급한 것처럼, 행동경제학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상당한 공부를 해 왔고 탄탄한 실무 경험이 점점 더해지면서 더욱 풍부한 이론과 설계 기법을 얻게 되는 선순환을 일굴 수 있었다.

또 '돈에 밝은 아이', '굿바이 신용카드' 등 다수의 책을 써 냈는데 1년에 한 권꼴로 묵직한 주제들을 다룬 책을 집필하는 원동력은 바로 직면한 문제에 대해 끝을 봐야겠다는 목표의식에 있다. 

제 대표는 "현장에 뛰어들어 자료를 얻고 문제의 속살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글쓰기를 지향한다"면서 "2013년에는 소비라는 이슈로 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금융의 비하인드 마켓을 털어보자는 것. 이와 함께 채권 양도·양수 등 현재 불법 사금융에서 약탈적인 채무 독촉을 하는 여러 근원적 제도들이 악용되는 케이스들을 국내외를 막론하고 공부해 글로 써 내겠다는 의욕도 넘쳤다.

또 '노동의 배신' 등을 집필한 미국 르포 작가 바바라 에런라이크에 대한 존경을 표하며 현장이 녹아있는 서적 집필에 관한 생각을 내비치기도 했다. 

朴정부, 청년들 경제 문제만큼은 제도적 개선 시행해야

그런가 하면 제 대표는 소비자들, 특히 젊은이들이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가계부 적는 것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이 두 가지는 챙겨야 한다는 것이 제 대표의 오랜 지론이다.

다만 현재와 같은 88만원세대의 고통은 단순히 저축을 하라거나 아껴쓰라는 말로 해결할 수 없는 제도적 문제가 깔려 있다는 게 제 대표의 생각이다. 

이와 관련 제 대표는 "이번 정부가 제도적으로 체계적인 접근을 시도해야 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청년들 경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늘(4일) 오전에도 저소득 대학생 상담을 했다. 정말 안타깝다. 자신의 학비를 감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모의 빚까지 떠안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학점 관리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니 장학금 받기도 힘들다. 그러면 또 학자금 대출에 손을 벌리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 된다"라며 이번 정부의 반값 대학등록금 등 제도적 접근을 강조했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돈에 밝은 아이'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올해도 금융의 비하인드 마켓을 직접 취재, 집필할 구상을 하고 있다. = 이종희 기자
더 큰 그림에서의 접근을 위해 제 대표는 희망살림이나 참여연대 활동도 하고 있다. 제 대표는 "에듀머니가 상담위주로 진행됐다면 희망살림은 제도개선을 위해 움직이는 단체 활동"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대표적인 시민운동단체인 참여연대에서도 일하고 있다. 이런 활동의 일환으로 뜻이 맞는 시민운동가들과 불공정한 채권추심을 제한하는 입법 추진을 한다는 계획이다.

악질적인 독촉·살인적인 고리 등도 문제지만, 이런 여러 문제는 채권이 여러 단계로 팔려 나가며 정체가 수상한 사금융으로 흘러들어간다는 데 상당 부분 원인이 있다. 채권이 여러 번 양도·양수 과정을 거치며 계속 팔리면 채무자는 결국 누가 추심하러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이다.

제 대표는 "우리나라 법률상 채권 양도·양수에 일부 대항요건이 있었는데 IMF시대에 약화됐다"면서 "전면적 양수·도 제한은 안 되겠지만 금융 채권 5년 시한을 넘기지 못하게 하는 등 최소한 상식적인 선에서 규제하고 양수·도의 횟수라도 제한해야 한다"고 현재 구상 중인 법안의 내용을 설명했다.

제 대표의 이런 구상은 불공정한 추심에 금융감독원이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대응대책을 마련하려 하고 있는 상황과 맞물리며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일부 정치권에서 제 대표 등이 펼치는 이 활동에 협력한다면 결실을 맺고 큰 효과를 이끌어 낼 시기가 무르익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공정한 추심·약탈적 금융 등 거인 같은 상대들에 맞서 합리적 소비문화, 소비자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금융토양을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해 온 제 대표의 전성기가 이제 열릴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