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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열린 소통 '담합' 일단락은 한전 '판정승'

전선업체 네 곳 136억 배상해야…해묵은 악습으로 다시 이슈 부상

정금철 기자 기자  2013.02.27 13: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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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재작년 말 국내 전선업체 34곳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11년간 입찰 담합을 벌이다가 당국에 적발되는 소동이 있었다. 만성 적자에 허덕이던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전기료 인상을 추진하는 와중에 터진 일이라 더욱 볼썽사나운 모양새가 연출됐다.

당시 오랜 기간 전선업계의 악습이던 담합이 서슴없이 자행된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 큰 화제가 됐고 이슈가 완전히 희석될 즈음인 15개월 후 전선업체 담합과 관련한 공시가 나와 다시금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전선업체들의 담합으로 한전이 제기했던 소송에서 거액의 배상금을 한전에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 특수전선 독점생산 4곳, 거액 벌금 철퇴

가온전선(000500)은 27일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LS, 대한전선, 가온전선, 삼성전자와 연대해 한전에 136억591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고 공시했다.

2009년 11월 한전은 임종욱 대한전선 대표와  구자엽 가온전선 대표, 구자홍 LS 대표,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을 상대로 해당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말 국내 34개 전선업체와 전선조합이 11년간 담합을 벌인 사실이 적발돼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던데 이어 가온전선과 LS, 대한전선, 삼성전자가 한전에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와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 네이버 블로그 이미지 캡처
특수전선을 독점으로 생산하는 이들 업체의 담합으로 정상 입찰가보다 비싼 금액에 '광섬유 복합 가공지선(OPGW)' 등을 구입, 큰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한 한전은 모두 41건의 불법행위 책임을 물어 소송을 냈다. OPGW는 벼락으로부터의 송전선 보호를 위한 금속선인 가공지선에 광섬유를 내장, 광다중신호 전송기능까지 가능한 보호용 통신케이블이다.

결국 지난 2009년 11월14일 접수된 이 사건은 3년이 훌쩍 지난 21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로 마무리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최승록 부장판사)는 "공동으로 전선 생산과 거래를 제한, 가격을 결정하고 이를 유지하는 등 경쟁을 부당 제한한 업체들은 한전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 사유를 밝혔다.

이어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각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으므로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기각한다"고 결정했다.
 
재판부가 기각한 나머지 청구는 2007~2009년 체결한 계약 6건에 대한 것이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OPGW 물량 배정 등과 관련, 1999년부터 2006년까지의 계약 체결 건 17건을 적발했으나 재판부는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이후의 청구에 대해서는 업체들의 손을 들었다.

◆악행으로 쌓은 정(情), 업계 잠잠하지만 불씨는 잔존

이번 공시가 다시 세간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대기업이 엮인 독점생산자들의 담합이라는 이슈도 있지만 관행처럼 굳어진 업계 악습을 다시 상기하게 됐다는데 진정한 이유가 있다.

이날 공정위에 따르면 전선업계는 2009년 한전의 피뢰침 겸용 통신선 입찰과정에서의 담합으로 66억원의 과징금을, 2011년 유통 대리점 판매가격 담합, KT 통신선 입찰 담합, 건설사 및 한전 전력선 입찰 담합으로 95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특히 2011년에는 11월에는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1년간 국내 34개 전선업체와 업계 협의체인 전선조합이 담합을 벌인 사실이 들통 났다. 한전이 발주한 전력선 구매입찰에서 11개 품목 전력선 물량 배분 및 낙찰가격 담합행위가 공정위에 덜미를 잡혔고 32개사에 과징금 386억1600만원이 부과됐다.
 
과징금은 LS(006260) 126억원을 비롯해 △가온전선 65억7700만원 △대한전선(001440) 32억7900만원 △일진홀딩스(015860) 36억7400만원 △넥상스코리아 14억2400만원 △대원전선(006340) 13억5900만원 △JS전선(005560) 10억3200만원 등이다.

또한 담합을 주도한 LS, 가온전선, 대한전선과 전선조합 4곳은 검찰에 고발했고 사정상 납부능력이 없는 코스모링크, 넥상스대영, 모보 3개사는 과징금 면제 조치한 바 있다.

전선업계는 매년 한전의 전력선 입찰예정 물량의 수주(배정) 업체를 미리 낙점한 뒤 가담 업체들에게 배분 비율을 만큼 물량을 나누는 전형적인 방식을 사용했다. 이와 함께 업체들은 한전 입찰공고에서 낙찰 예정가격이 낮으면 입찰에 불참하거나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제시해 예정가격을 높이는 한편 입찰경쟁을 원천 봉쇄하기도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2011년 국내 전선업체 대부분이 공모한 담합에 따른 한전의 피해는 3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며 "당시 사례와 유사한 첩보가 수면 아래 존재한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어 때가 되면(정보가 입수되면) 다시 조사태세를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