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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뱀의 해', 외환은행 노조 불사의 뱀 되나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2.21 17:4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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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21일 서울 을지로에서는 길게 줄을 서 행진하는 시위대가 눈에 띄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이런 대형을 흔히 장사진(長蛇陣)이라고 표현합니다. "아이폰을 사려는 인파가 장사진을 이뤘다"거나 "조류인플루엔자 유행으로 병원에는 환자들이 장사진을 쳤다"는 게 그 예입니다. 좌우로 긴 대형은 일자진이라고 하고요. 그런데 시위대에 장사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보통 많이 모이면 구름같이 모였다는 뜻에서 운집이라고 하는데, 시위대가 아무리 불법시위가 되지 않도록 사전신고를 하고 질서를 기본적으로 유지한다고는 해도 '열과 오를 딱딱 맞춰' 행동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사진이라는 경우는 현대에는 거의 정확한 적용 사례가 없고, 그냥 길게 줄을 선 정도의 관용어구처럼 쓰는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만에 시내 한복판에 장사진이 등장한 것인데요. 21일 오후 을지로의 외환은행 본점 앞을 출발한 릴레이 연차투쟁단이 길을 건너 하나HSBC건물(여기에는 하나금융지주 간부층이 일부 입주해 있습니다.)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외환은행 노조는 과거 론스타가 하나금융으로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것을 반대한 이력이 있는데요. 이번에 다시 투쟁 국면에 돌입한 것은 외환은행 지분의 하나지주 주식교환 추진 문제 때문입니다. 소액주주 피해를 강요하는 하나지주의 주식교환이 중단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감독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21일 외환은행 노조가 하나금융에 주식교환 관련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장사진 대형으로 행진하고 있다. 외환은행 본점 길 건너편으로 하나HSBC빌딩 건물이 보인다. = 임혜현 기자

장사진 대형으로 굳이 실력 행사를 한 상황을 보고, 손자의 '손자병법'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 장사진이라는 단어가 쓰여 널리 회자되게 된 근거도 이 책이니까요. 솔연이라는 뱀은 회계이 상산에 사는데, 이 거대한 뱀은 이 놈은 머리를 치면 꼬리로, 꼬리를 치면 머리로 공격한다고 합니다. 또 허리를 치면 이번에는 머리와 꼬리가 함께 달려듭니다. 이걸 응용한 것이 병법에 장사진입니다.

그래서 2009년 김황식 당시 감사원장(훗날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가 됨)은 이런 교훈에 주목, 솔연과 장사진을 신년사에서 언급합니다. 당시 신년사는 "이 솔연의 고사는 조직에서 '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어떤 조직이든 모든 구성원들이 일체감을 갖고 서로를 지켜 준다면 아무리 어려운 위기나 상황에도 무너지지 않는 막강한 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같은 꿈을 꾸지 않는 조직이 목표를 달성하거나 성과를 올린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당부했습니다.

외환은행 노조가 이번에 은행 전체의 운명이 걸린 문제라며 이렇게 똘똘 뭉쳐 일어난 점은 상당히 의미있어 보입니다. 그런 한편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렇게 무적의 장사진을 펼 인화단결의 힘을, 그야말로 다른 고민할 일 아무 것도 없이, 영업 전선에서 100% 발휘할 수 있는 좋은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