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SK그룹이 31일 최태원 회장의 법정구속으로 10년 만에 두 번째 '오너 공백'을 맞았다.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 SK그룹은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사령탑으로 내세워 경영 공백을 최소화한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튿날인 1일 주식시장에서 SK그룹주는 대부분 하락 중이다. '충격'까지는 아니지만 '오너리스크'가 그룹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SK케미칼(006120)과 SK이노베이션(096770) 등 주요 종목들은 실적 부진이 주가의 발목을 잡았다.
◆오너리스크에 실적부진 '악재 겹쳤다'
이날 시장에서 SK케미칼은 오전 10시53분 현재 전일대비 5%대 급락한 5만6000원대에 거래 중이며 SK이노베이션과 SK하이닉스(000660) 등도 전일대비 1~2% 안팎 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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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법정구속된 이틀날인 1일 주식시장에서 SK그룹주가 일제히 약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네이버 증시 |
여러 비용 이슈와 환율 흐름을 고려하면 선방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성수기 효과와 제품가격 강세 등 호재를 감안하면 실망스럽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신현준 동부증권 연구원은 "작년 4분기 원화강세로 인한 환율 하락과 인센티브 지급 등 영업외적 요소와 일회성 요인들 때문에 일부 시장 예상치를 밑돈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계절적 비수기인 1분기 업황은 다소 악화되겠지만 올해 태블릿PC 시장 확대와 중국 스마트폰 시장 급성장 등 모바일 메모리 수요의 강세가 점쳐지는데다 글로벌 2위그룹(2nd-tier)들의 구조조정으로 공급량이 제한되면서 수익성이 우상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정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4분기가 IT업종의 전통적인 성수기라는 점과 제품가격 강세 등을 고려하면 4분기 실적은 다소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시장 추정치에 크게 못 미친 실적을 내놓은 SK케미칼에 대해서는 증권사들이 목표주가 하향 의견을 내놨다. SK케미칼은 전일 장마감 후 공시를 통해 작년 4분기 매출액 3622억원, 영업이익 -38억원, 순이익 -35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매출액은 전년대비 9.2%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51.3% 급감해 반 토막 수준이다. 특히 그린케미칼 부문에서 매출부진과 11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는 등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 원인이었다. 여기에 100억원 규모의 충당금과 인센티브를 집행한 것도 실적 악화를 부추겼다.
우리투자증권은 1일 단기 실적 모멘텀 부재를 감안해 목표주가를 기존 8만5000원에서 7만원으로 17.6% 낮췄다. 이 증권사 이승호 연구원은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도 전년대비 각각 5.3%, 28.5%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1일 실적발표가 예정된 SK이노베이션 역시 시장은 실적부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동양증권은 회사의 4분기 예상매출액 18조900억원, 영업이익 5009억원, 지배주주 순이익 4390억원을 예상했다. 전분기 대비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각각 23%, 14% 감소한 수치다.
이 증권사 황규원 연구원은 "특히 지난해 10월 PX 정기보수로 300억~400억원 규모의 일회성 비용이 발생한 만큼 석유화학 부문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라며 "석유정제부문과 윤활유부문, 자원개발부문 등 주요 사업분야 모두 영업이익 감소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추정했다.
하이투자증권 역시 정유부문을 중심으로 영업실적이 부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증권사 이희철 연구원은 "정기보수에도 불구하고 화학부문 실적은 상대적으로 견조하지만 정제마진 약세와 재고평가손실 등 정유부문 실적이 예상을 밑돌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회장님 구속, 결정타는 아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최태원 회장의 경영 공백이 그룹주가에 결정적인 악재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눈에 안 보이는 오너리스크보다는 눈에 보이는 실적부진이 주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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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케미칼이 전일 장 마감후 공시를 통해 시장 추정치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적을 발표하자 1일 주식시장에서 장중 한 때 5%대 급락세를 보였다. ⓒ네이버 증시 |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 충격이 단기간에 거치거나 영향력이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양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건을 지켜본 시장은 일종의 학습효과를 보일 것"이라며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다는 점에서 그룹주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확실성이 해소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용기 현대증권 연구원도 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예전에도 SK그룹 뿐 아니라 삼성, 현대차, 오리온, 한화 등 재벌 기업의 오너리스크가 부각된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주가 하락분은 모두 복원됐다"고 분석했다.
전 연구원은 "최태원 회장이 구속 역시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SK그룹의 지주회사 시스템이 5년여에 걸쳐 정착됐기 때문에 오너의 부재가 기업 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